"강등된 갑질 간부 승진시켜.." 피해자들 '황당 인사'에 분통

허단비 기자 2020. 7. 20.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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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습 폭언·갑질 광주 서구보건소장 복귀 예정
"가해자와 피해자 한 공간에 두는 2차가해" 반발
©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광주=뉴스1) 허단비 기자 = "가슴이 뛰고 몸이 얼어붙는 듯한 공포입니다. 상식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한 공간에 다시 둔다는 게 말이 되나요."

광주 서구가 상습 폭언과 갑질로 중징계를 받아 강등당한 5급 간부 A씨를 서구보건소장으로 승진 복귀시키기로 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공무원노조를 비롯해 10여 년간 A씨에게 피해를 당한 직원들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한 공간에서 마주 보게 하는 '2차 가해'라며 반발하고 있다.

20일 광주 서구와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광주지역본부 서구지부 등에 따르면 22일 공무원 정기인사에서 A씨가 서구보건소장에 복귀한다.

A씨는 4급 서기관급인 서구보건소장으로 재직 중이던 2018년 10월 갑질 파문으로 광주시 인사위원회에서 중징계인 강등 처분을 받았다.

A씨는 나이에 상관없이 직원에게 반말과 막말을 하고 기간제 근로자에게 인격 모독성 발언을 일삼았다. 면전에서 서류나 볼펜을 던지거나 물건으로 직원들의 배와 옆구리를 찌르는 등 갑질을 했다.

또 공공청사인 보건지소 교육장에서 몇 달간 친구들과 이른바 '라인댄스'를 추는 등 공공시설을 사적으로 유용했다.

구청 감사와 시 인사위에서 징계를 받고 보건소장직에서 물러난 A씨는 최근까지 다른 부서에서 업무를 맡아왔다.

하지만 22일 공무원 인사에서 A씨가 다시 보건소장으로 복귀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직원들은 '명백한 2차 가해'라며 반발했다.

서구 한 직원은 "벌써 피해 직원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며 "자신을 강등시킨 부하 직원과 다시 일하는 건데 갑질이 또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있나 싶다. 직원들이 10여년간 참다참다 용기를 내 갑질을 폭로했는데 무참히 짓밟는 것과도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직렬 특성상 대부분의 피해자가 보건소에 남아 있고 부서 이동이 어려운 곳"이라며 "갑질 소장을 다시 자리에 앉히는 것은 직원들을 '독 안에 든 쥐'로 만드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서구는 의사 면허가 필수인 보건소장 적임자가 없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A씨가 강등된 이후 보건소장 자리는 6개월 동안 공석이었다. 2019년 4월 첫 외부 공모를 거쳐 임명한 신임 보건소장은 8개월 만에 사임하고 목포의료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 1월부터 두 차례 보건소장직 공모를 진행했으나 적임자나 지원자가 없다는 게 서구의 설명이다.

서구 관계자는 "보건소장직은 의사 면허가 필수이고 잦은 인사교체로 쉽게 지원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며 "서구청에서 의사 면허를 가진 사람이 A씨뿐이라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로 보건 행정이 가장 중요해졌지만 수개월째 공공의료의 수장이 없는 셈"이라며 "직무대리 체제로는 업무의 전문성을 보장할 수 없어 인사이동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조는 이에 반박 성명을 내고 "갑질 상사를 갑질 현장에 승진 복귀시키는 상식 밖의 인사"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공무원노조 광주서구지부는 "갑질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가하려는 인사 시도를 즉각 중단하고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인사제도를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노조는 "갑질 간부가 다시 갑질의 현장으로 승진해서 복귀한다는 것은 충격적"이라며 "갑질을 행한 당사자는 갑질을 폭로한 사람에 대한 신상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기에 승진이나 근평에 있어 피해자들이 감수해야 할 불이익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전북 임실군에서 발생한 공무원 자살 사건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가해자와 피해자를 한 공간에서 다시 마주 보게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우리 사회에서는 용인할 수 없는 상황이고 상식 밖의 인사"라고 비판했다.

노조 측은 이날부터 피해자 보호와 갑질 방지를 위한 투쟁에 나선다며 서구청 앞에서 1인 피켓시위를 예고했다.

beyondb@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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