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재용 부회장을 기소하는 게 국민 경제에 좋을까

이경묵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입력 2020. 7. 21.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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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묵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재벌 총수의 기소와 구속이 해당 기업의 성과와 국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다. 구속되는 날 해당 기업 주가가 올라간 사례 혹은 구속 기간 영업 이익이 올라가고 주가가 올라간 사례를 근거로 총수 구속이 해당 기업 주주나 국민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구속되더라도 면회 오는 사람들을 통해 옥중 경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과연 그럴까?

재벌 총수 기소나 구속은 해당 기업의 단기 성과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기업 단기 성과는 대부분 과거에 만들어 놓은 해당 기업 경쟁력과 당시 시황에 의해 좌우되고, 단기 성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들은 전문경영진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당 기업의 장기 성장 가능성에는 큰 영향을 미친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았고, 기업 이론 토대를 만든 허버트 사이먼 교수는 경영자가 가진 자원 중에서 가장 희소한 자원으로 경영자의 관심(attention)을 들고 있다.

재벌 총수는 여러 곳에 관심을 기울일 수 없기 때문에 주로 그룹의 미래 명운을 좌우하는 대규모 인수·합병, 사업 포트폴리오 재구축, 대규모 신규 사업 투자, 계열사 경영진 임면에 관심을 쏟는다. 기소된 상태에서는 무죄를 받는 데 신경을 많이 쓸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복잡하고 불확실성이 높은 중대한 결정을 하기 어렵다. 구속된 상태에서는 더 어렵다. 면회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해당 업무 주관 부서가 주는 보고서를 읽고 그룹의 미래 명운을 좌우하는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다른 부서의 의견도 들어야 하고, 외부 전문가들의 의견도 들어야 하고, 경우에 따라 거래 대상 기업 최고경영자와 직접 협상하기도 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다.

SK그룹은 총수가 구속되기 이전인 2012년에 하이닉스를, 2015년 8월 석방 이후 OCI머티리얼즈, 동양매직, LG실트론, ADT캡스 등 그룹의 명운을 좌우하는 다수의 대규모 인수·합병을 했다. 하지만 2년 6개월 구속 기간에는 계열사 CEO 차원에서 결정할 수 있을 정도의 소규모 인수·합병만 할 수 있었다. 이재용 부회장이 국정 농단 사건으로 구속되기 이전에 삼성은 석유화학 관련 계열사 등을 한화와 롯데에 매각하고, 삼성전자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하만 등 대규모 인수·합병을 결정한 바 있다. 하지만 구속 이후 지금까지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이나 대규모 인수·합병, 신성장 동력 발굴을 위한 대규모 투자는 사실상 올스톱된 상태다.

이런 사례를 보면 재벌 총수의 기소나 구속은 우리나라 경제의 미래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략경영 분야 대가인 마이클 포터 교수는 '국가 경쟁우위'라는 책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과 산업을 가진 국가가 경쟁우위를 가진다고 한 바 있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재벌 기업들이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영역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구축하고, 인수·합병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 신성장 산업을 키워야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우리 경제의 경쟁력이 높아진다.

삼성 그룹과 협력 업체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수, 그들이 창출하는 부가가치, 납부하는 법인세가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크다. 지난 4월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 적립금의 5.5% 이상이 삼성 그룹 주식에 투자되어 있다. 삼성 그룹이 사업 포트폴리오 재구축, 대규모 인수·합병, 신성장 동력 발굴 등을 통해 더 크게 성장하면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고,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세수가 늘어나고, 국민의 노후 자금이 고갈될 시기도 늦출 수 있다. 검찰이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전문가들이 내린 권고에 대해 좀 더 국가경제 차원에서 고민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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