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PPT 2장으로 나랏돈 748억 따낸 '이혁진의 신공'

김기정 2020. 7. 2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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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티머스 자산운용이 2017년 6월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에 제출한 투자 상품 설명서 표지. [미래통합당 윤창현 의원실 제공]

공공기관인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전파진흥원)의 700억 원대 기금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옵티머스 자산운용이 제시한 ‘상품 설명’은 파워포인트(PPT) 문서 두 장에 불과했다.

20일 미래통합당 윤창현 의원실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옵티머스가 2017년 6월 전파진흥원에 제시한 상품설명서는 발표용인 PPT 문서 10장이었다. 이 가운데 표지와 회사 상호 및 연락처가 적힌 마지막 장, 회사 소개와 위험 고지 부분 등을 제외하면 상품 관련 내용이 실린 문서는 단 두 장 뿐이었다. 전파진흥원 기금을 유치할 당시 옵티머스 대표는 최근 정·관계 로비 의혹이 불거진 이혁진 전 대표였다.

옵티머스는 이 제안서에 펀드 모집금액은 100억원이라고 밝혔다. 투자 기간은 3개월, 목표 수익률은 2.1%로 설정했다. 또 기초투자자산은 국채와 시중 은행채 등 안전한 자산으로 구성하겠다고 했다.

전파진흥원은 옵티머스의 이런 제안을 받아들였고 실제로 2017년 6월 5일 옵티머스와 ‘레포펀드1호’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만기 3개월짜리 레포펀드 1호에 72억5000만원이 투자됐다. 전파진흥원은 또 같은 달 23일엔 5개월짜리 만기 상품인 ‘레포펀드2호’에 333억원의 기금을 투자했다. 옵티머스의 PPT 2장 분량 상품설명에 전파진흥원이 한 달 동안 405억5000만원을 쏟아부은 셈이다.

옵티머스 자산운용이 2017년 6월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에 제출한 10장짜리 상품설명서 가운데 상품설명이 담긴 부분. 나머지 부분은 표지와 회사 소개 및 투자 위험 고지 내용 등이 담겼다. [미래통합당 윤창현 의원실 제공]

전파진흥원의 옵티머스 투자는 이듬해 3월까지 이어졌다. 투자 금액은 모두 748억원 규모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는 2018년 감사에 착수해 “실적배당형 금융상품은 투자원금이 보장되지 않으므로 엄격한 제안서 평가를 통해 운용사를 선정해야 함에도 확정금리형 상품과 수익률을 단순 비교해 투자를 결정하는 특혜를 (옵티머스에)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당시 기금 투자 상황을 잘 아는 전파진흥원 관계자는 이날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옵티머스가 제시한 상품설명서가 부실했다는 것은 인정한다. 설명서 가운데 일부 석연찮은 부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다만 “상품설명서 분량과 상관없이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확인하는 부분은 수익률”이라며 “옵티머스가 제시한 수익률이 다른 회사들보다 높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전파진흥원의 투자는 옵티머스가 세를 불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라는 평가를 받는다. 중앙일보가 확인한 ‘옵티머스 펀드 잔액 변동’ 자료에 따르면 옵티머스의 잔액은 2017년 5월까지 190억원 수준이었지만, 전파진흥원의 투자가 이뤄진 다음 달엔 490억원이 됐다. 전파진흥원의 마지막 투자가 이뤄진 2018년 3월의 잔액은 1550억원으로 치솟더니, 올해 4월 말 기준으론 5500억 원대 규모가 됐다.

미래통합당에선 옵티머스가 전파진흥원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배경에 이혁진 전 대표의 여권 인맥이 동원됐을 것이란 의혹을 제기했다. 당 사모펀드 비리 방지 및 피해 구제 특별위원회 소속 윤창현 의원은 “펀드 자금을 눈덩이처럼 불리기 위해선 첫 시드머니(종잣돈)가 굉장히 중요한데, 그 역할을 전파진흥원의 기금 투자가 맡은 격이 됐다”며 “당시 소규모 회사에 불과하던 옵티머스를 선정하게 된 배경에 여권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게 아닌지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9대 총선에서 서울 서초구갑에 출마한 이혁진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가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는 모습. [뉴시스]

이 전 대표는 2012년 4월 총선에서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의 서울 서초갑 후보로 전략공천 돼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그해 12월 대통령선거(18대) 때는 문재인 당시 후보의 금융정책 특보를 맡았다. 야권에선 이 전 대표를 비롯해 옵티머스 관계자 다수가 한양대 출신인 점을 고려해 여권의 ‘한양대 인맥’이 옵티머스의 세를 불리는데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이와 관련해 이 전 대표는 “당시 내가 회사 대표였던 것은 맞지만, 전파진흥원의 기금 유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주도했다. 투자를 받았을 때 나도 놀랐다”며 “(투자 유치 다음 달인) 7월에 나는 대표직을 사임했다. 투자받은 금액이 석연찮은 곳으로 흘러 들어가 2018년 3월 22일 내가 과기부에 해당 사실을 제보했었다. 내가 투자를 유치한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했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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