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 다쳤는데..포스코 눈치보느라 하청업체들이 '산재 은폐'

송윤경 기자 입력 2020. 7. 21. 15:45 수정 2020. 7. 21.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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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일러스트 | 김상민


4년 전 포스코 포항제철의 선재공장에서 일하던 ㄱ씨는 기계를 정비하다가 추락했다. 그는 목뼈가 골절돼 두달간 병원에 입원했다. 산재 인정이 될 것으로 믿었던 ㄱ씨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불인정’ 처분을 받고 당황했다. 그는 자신이 소속된 하청업체가 근로복지공단의 질의를 받고 ‘ㄱ씨는 입원한 적이 없고 그동안 계속 출근했다’고 보고한 사실을 알게 됐다. 공단은 추가 조사 없이 사측의 일방적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사고 후유증으로 공장을 그만둔 ㄱ씨는 사측의 ‘산재 은폐’ 때문에 지금까지 모든 치료비용을 홀로 감당하고 있다.

포스코 하청업체들의 ‘산재 은폐’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국 금속노조 포항지부와 포스코의 사내하청지회는 21일 ㄹ하청업체의 산재 은폐 실태를 조사한 결과 지난 12년간 갈비뼈 골절, 베임, 협착 등 10건의 심각한 재해 사고가 있었음에도 모두 산재로 인정되지 못했다고 20일 밝혔다.

포스코의 포항·광양제철소엔 약 100곳의 1차 하청업체들이 있다. 손상용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조직부장은 “100곳 중 한 곳만 노조 차원에서 조사했는데도 이정도”라면서 “정부가 나서서 범위를 넓혀 제대로 조사할 경우 은폐 건수는 훨씬 더 많이 드러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청업체들이 재해사고가 발생해도 노동자를 설득해 아예 산재 신청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공공연한 관행이다. ㄱ씨의 사례처럼 근로복지공단에 거짓 자료를 제출하기도 한다. 산재 은폐의 큰 이유는 원청으로부터의 불이익 때문이다. 손 부장은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포스코 같은 원청과 재계약할 때 감점요인이 돼, 계약 단가가 낮아진다”면서 “하청업체들은 결국 포스코 눈치를 보느라 다친 사람을 압박해서 은폐해 버린다”고 말했다.

은폐가 만연한 까닭에 한국의 산재 통계는 왜곡돼 있다. 노동건강연대 기관지 ‘노동과 건강’에 따르면, 2017년 한국의 ‘업무상 사고 재해율’은 0.5%(산재보험 가입자 1872만5160명 중 9만4047명)다. 영국, 네덜란드, 핀란드, 독일보다 낮다. 그런데 같은 해 ‘업무상 사망 사고’ 십만인율은 4.6명(10만명당 4.6명 발생했다는 뜻)으로 OECD 28개국 가운데 1위다. 사망사고는 은폐가 상대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통계에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즉 업무상 사고 재해율은 OECD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낮은 수준인데 사망 사고 비율은 월등히 높다는 것은 ‘산재 사고’가 그만큼 통계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손상용 부장은 “계속되는 산재 은폐는 노동안전시스템을 마비시킨다. 지난 6월엔 포항제철소에서 화재사고가 있었고, 지난달엔 광양제철소에서 추락사망 사고가 있었다”면서 “고용노동부가 나서서 산재은폐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책임자를 찾아내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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