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도덕적 우위는 사라졌다, 그럼 남은 것은

CBS노컷뉴스 정영철 기자 2020. 7. 22.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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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진영, 조국·윤미향·박원순 논란으로 도덕적 자산 잃어버려
이명박은 전과 다수에도 대통령 당선..도덕성이 절대요소는 아닐수도
여권, 도적적 우위 상실했다면 실력으로라도 존재감 증명해야 할때
댐에 구멍나기 직전의 위기..현실감·창의력 있는 정책으로 현안 풀어내야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나는 평소에 진보진영이 도덕적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찬성하지 않았다. 그런 기준이 스스로를 옭아매기 때문이다. 진보적 생각을 가졌다고 꼭 더 도덕적일 필요가 있을까."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를 둘러싼 논란이 뜨거웠던 최근 여권의 한 유력인사와 스스럼없는 대화를 나누다 고백 아닌 고백을 들었다.

진보가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보수 쪽에서 씌운 프레임이란 얘기도 진작부터 없지 않았지만, 그의 말에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일단 이 인사는 더불어민주당 등 진보진영이 도덕적 우위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왔다는 점을 새삼 확인시켜줬다.

진보가 약자의 편에서 기득권의 탐욕과 불합리성을 주장해야 한다면, 비판의 대상보다는 뭔가가 나아야 한다는 당위와 필연을 우리는 자연스럽게 인정해왔고 또 그러길 바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왼쪽),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사진=윤창원 기자/박종민 기자)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진보 진영의 도덕성이 특별하지 않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려워졌다. 이번 정권 들어서 자녀 표창장 논란 등 조국 사태와 '회계불투명'과 일부 위안부 피해자를 배척한 윤미향 의원을 중심으로 한 정의기억연대 문제가 불거졌다. 두 사람을 둘러싼 논란은 재판과 수사로 현재 진행형이다.

정의와 인권의 상징처럼 보였지만 조국 전 법무장관과 윤미향 의원의 이미지는 상당히 퇴색했다.

공교롭게도 두 사건은 모두 여권이 정치적 해결보다는 '법대로'를 주장하면서 도덕이 설 자리를 잃게 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 박원순 전 시장으로 이어지는 '미투 의혹' 사건이 여권을 궁지로 몰고 있다. 상대적 약자인 여성 인권과 직결되는 문제가 진보 진영에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왼쪽부터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사진=이한형 기자/박종민 기자/연합뉴스)
안 전 지시와 박 전 시장은 대권주자로 분류됐던 인물이라 여권이 입은 내상은 더욱 컸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내년 재보궐선거에서 서울과 부산 시장 후보를 내야하느냐 마냐를 놓고 갑론을박이다. 당헌에 따르면 민주당 출신 현역이 '중대한 비위'에 연루돼 선거를 또 치르게 되면 후보를 내지 않도록 돼 있다.

물론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로 조기에 치러진 지난 대선 때 미래통합당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대선 후보를 냈다.

후보를 내느냐 마느냐는 명분과 원칙, 현실과 실리에서 한쪽을 선택하는 것이다. 집권 여당에서 대선 전초전이 될 선거에서 후보를 내지 않는 게 쉽지 않겠지만, 다시 한번 명분에서 구차해지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모든 정권이 도덕적 우위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상황을 여권 입장에서는 최악으로 볼 이유는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1964년 소요죄 (6·3 한일회담 반대 시위 주도) 같은 정치적 사건을 빼고도 건축법 위반, 노조설립 방해공작, 선거법 위반 및 범인도피죄 등 10건의 전과가 있었다.

이 때문에 지난 2007년 대선 과정에서 전과 14범이라는 소문이 나기도 했지만, '경제 대통령'을 표방한 이 전 대통령에게 국민은 표를 몰아줬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독재자로 불린 아버지의 정치적 유산을 물려받고도 대선에서 이기고 첫 여성 대통령이 됐다.

보수진영과 달리 진보진영이 도덕적 우위가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맞는 정책적 실패는 만회하기가 매우 어렵다. 여론으로부터 가중처벌을 받는다.

22번째 부동산 정책을 놓고는 집값을 잡을 의지가 없는 건지, 능력이 없는 건지 헷갈린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부동산 보완대책 추진방안 발표에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취재진의 질문을 받는 모습.(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복잡하게 이해관계가 얽힌 부동산 문제를 단칼에 해결하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국민적 관심이 뜨거운 현안들에 대해 최소한 어떤 식으로 해결하겠다는 방향성과 예측 가능성은 심어줬어야 했다.

현장을 제대로 모른 채 정책을 만들어 놓고, 문제가 생기니 우왕좌왕하고 모습은 '그동안 뭐 했나'하는 불신을 낳는다.

비단 부동산 문제뿐이겠는가. 시대적 과제인 불평등과 맞닿아 있는 교육, 지역균형 발전, 비정규직 등 숱한 문제들도 뚜렷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또 다른 여권 인사는 "지금은 진보라는 타이틀 하나만으로는 안 된다"고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통합당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을 오차범위 안에서 쫓고 있다.

새 정강 초안에 4·19 혁명, 5·18 민주화 운동 등을 계승한다는 내용을 담았고, 막말을 줄였을 뿐인데도 말이다. 통합당의 '정상화 과정'은 중도층까지 흡수하고 있다. 총선 대패 이후 상한가를 치고 있는 역설이다.

청와대와 여권이 쓸 수 있는 반전의 카드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바로 현실감 있고 창의력 있는 정책의 발굴과 실천이다. 그래야 정권을 잡은 이유를, 여권의 존재 이유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다. 더 시간을 끌면 댐에 구멍이 생길 위기다.

경제민주화를 놓고 여야가 구별되지 않았던 18대 대선을 다시 반복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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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정영철 기자] steel@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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