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의 시시각각] 또 뭐가 나올지 모른다

이정재 2020. 7. 23.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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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벨트부터 수도 이전까지
불쑥 질러놓고 아니면 말고
국정이 '아무 말 대잔치'인가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부동산 정치가 점입가경이다. 하루가 멀다고 ‘듣보잡 대책’이 쏟아진다. 세제·금융·거래 3종 규제 세트가 더 세지더니 급기야 그린벨트 해제에 행정수도 이전까지 등장했다. 오죽 다급하면 이럴까 이해 못 할 바 아니나 3년 내내 뭐하다 이제 와 이 난리를 치나 싶다. 강제로 정부발 부동산 롤러코스터에 앉혀진 국민 입장에선 정신 혼미, 복장이 터질 일이다. 매일 바뀌다시피 하는 주택 세금·제도에 세무사까지 두 손을 들었다니 일반인이야 말해 뭣하랴. 집 있는 사람은 내 집 걱정, 집 없는 사람은 내 집 마련 걱정에 모두 한숨만 쉬는 대한민국이 됐다.

더 걱정은 정부·여당의 ‘아무 말 대잔치’다. 그린벨트 논란만 봐도 그렇다. 그린벨트는 달리 정치벨트로 불린다. 인화성이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다. 군사 정부 시절엔 잘못 건드렸다 봉변을 당한 일화가 수두룩하다. 역대 국토부 장관이 후임에게 “장수하고 싶으면 절대 입에 올리지 말아야 할 첫째”로 그린벨트를 꼽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청와대가 “그린벨트 해제”를 말한 건 그만큼 “주택 공급 의지”의 진정성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과정·결과는 뭔가. 진정성은커녕 의도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다.

우선 대통령이 2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불러 “공급 확대”를 주문한 것부터 잘못됐다. 김현미가 누군가. “공급은 충분하다”고 3년 내내 말해 온 주무 장관 아닌가. 그런 장관을 불러 “공급”을 말하니 시장이 어찌 믿겠나. 이왕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방향을 바꿀 것이라면 장관부터 바꿨어야 했다. 게다가 대통령은 여권 잠룡들이 일제히 “해제 불가”를 외치자 바로 물러섰다. 야당과 보수 진영의 탈원전 폐지 요구에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 것과는 딴판이다. 게다가 아무 대안도 내놓지 않았다. 애초 진정성이 없었다는 얘기다.

아무 말 대잔치의 압권은 세종 행정수도 이전이다. 이게 어디 부동산값 잡자고 여당 원내대표가 불쑥 꺼낼 사안인가. 도끼로 모기 잡는 격이요, 국격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일이다. 다만 수도 이전은 국가 백년대계 차원에서 제대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대신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국회에서 여당 단독, 여야 합의 정도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 위헌 논란을 벗으려면 원포인트 국민투표가 가장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차기 대선과 묶어 별도의 국민투표로 결정하는 게 옳다. 사족이지만 수도 이전 땐 동시에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꼭 정리해야 한다. 의원들이 그냥 놔두고 국회 서울분원으로 쓸까 벌써 걱정이다. 그래 놓고 세종의 장·차관을 계속 서울로 불러올리면 말짱 도루묵이다. 아예 여의도 국회 땅을 팔아 새 국회와 청와대 이전 비용에 쓰는 것도 방법이다. 빈 땅은 여의도 노후 재건축 아파트와 묶어 통개발, 대한민국 금융·마이스 산업의 메카로 활용하면 좋을 것이다.

무슨 대책을 쏟아 내든 이 정부 내에서 공급 확대를 통해 강남 아파트값을 안정시킬 가능성은 제로다. 이미 늦었다. 그린벨트든 공공택지 개발이든 주택 완공까지 빨라야 4년은 걸린다. 재건축·재개발도 마찬가지다. 수도 이전은 부지하세월이다. 게다가 정부 스스로 퇴로를 막았다. 보유·거래·취득세의 징벌적 강화와 재건축·분양가 규제 등을 3년 내내 강조해 놓고 이제 와서 확 뒤집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고 더 망치지나 않았으면 한다. 당장 ‘임대차 5법’만이라도 속도 조절을 해 달라. 전·월세 폭등은 서민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한다. 강남 아파트값 폭등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집값이 뛰면 안 사면 그만이다. 전·월세는 그럴 수 없다.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 살아야 한다. 빚으로 전셋값을 올려 주려면 서민은 등골이 휘고 삶의 기반이 무너지기 일쑤다. 섣불리 책임지지 못할 법을 밀어붙였다가 가뜩이나 미친 전·월세가 또 뛰면 아무리 거대 여당이라도 국정 동력을 완전히 잃을 수 있다. 그때 가선 또 뭘 내놓을 건가. 주택거래 허가제? 아예 주택소유 허가제라도 들이밀 텐가.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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