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수배자도 받는데..노숙인들에게도 '재난지원금'을

류인하 기자 2020. 7. 23.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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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거리의 노숙인 사진. 박용하 기자(경향DB)


최근 기자에게 이런 문의전화가 온 적이 있습니다.

“제가 형사처벌을 받고 벌금을 미납하는 바람에 지명수배가 돼 있는데 저도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을 수 있을까요?”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건지 궁금했습니다. 그냥 신청하면 누구나 가구원 수에 따라 지급되는 돈이라고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 분은 “아니, 혹시 제가 재난지원금 신청을 하러 동주민센터에 갔다가 경찰한테 잡히면 어떻게 하냐고요”라고 했습니다.

문득 저도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법무부 관계자분께 전화로 문의를 했습니다. 물론 그 분도 많이 당황하셨습니다. 기자라는 사람이 무슨 이런 질문을 하냐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어진 친절한 답변.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 내부 정보는 각 구청이나 동주민센터와 공유되는 정보가 아니다. 동주민센터 재난지원금 신청·접수 담당자가 해당 지역 주민이 지명수배 대상인지 여부도 확인이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재난지원금 신청을 하고 카드 등을 수령하러 간다고 해서 거기서 경찰이 잠복했다 검거하는 일은 전혀 없다.”

그런데 범죄경력도 없고, 지명수배자도 아니지만 아직까지도 정부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수령해야 하는지 몰라서 신청을 못한 경우도 있고, 신청하면 된다는 것을 알지만 대한민국의 성인인 국민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주민등록증’이 없어 신청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바로 거리를 떠도는 노숙인들입니다.

실제 재난지원금 신청 및 지급이 한창 이뤄진 지난 5월 27일 기준 서울시내 거리 노숙인 293명 가운데 긴급재난지원금을 신청한 거리 노숙인은 105명에 불과했습니다. 35.8% 비율입니다. 즉 10명 중 6~7명은 재난지원금을 신청하지도, 받지도 못했다는 말입니다.

이는 임시주거시설에 머무는 노숙인이나 자활·재활시설 및 종합·일시시설에 머무는 노숙인 신청비율보다도 한참 낮습니다.

임시주거시설에 머무는 노숙인 262명 가운데 192명, 즉 73.3%가 재난지원금을 신청했고, 자활시설과 재활시설 거주 노숙인 역시 각각 81.9%의 비율로 재난지원금을 신청했습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임시주거시설이나 자활·재활시설에 머무는 노숙인들은 현장을 관리하고, 재활을 돕는 많은 시설 관계자로부터 신청 절차 등을 사전에 설명받기 때문에 신청률이 높을 수 있지만 서울역이나 용산역, 영등포역 등 역사 주변에 노숙하며 임시숙소 생활을 거부하는 분들은 이러한 설명조차 듣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가장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이 돌아가지 않아서는 안 되겠죠.

서울시는 서울역과 용산역, 영등포역, 시청·을지로 등 노숙인 밀집지역에 있는 3개 ‘노숙인 종합지원센터’에 전담 상담창구를 마련하고 아직까지도 지원금 신청을 하지 않은 거리 노숙인들을 상대로 신청서 작성, 동주민센터 제출방법 등 신청 전반을 돕는 업무를 시행한다고 23일 밝혔습니다. 필요할 경우 노숙인과 센터 직원이 동행해 동주민센터를 방문할 예정입니다.

또 주민등록이 말소됐거나, 신분증이 없어 신청을 하지 못했던 거리 노숙인들에게는 주민등록증 재발급도 지원합니다. 각 센터에서 증명사진 촬영과 재발급 수수료(5000원)도 지원할 계획입니다. 서울시는 지난 17일 행정안전부에 주민등록증 재발급 수수료 면제를 건의해 승인을 받았습니다. 주민등록증을 통한 본인확인이 되지 않으면 재난지원금을 수령할 수 없어 주민등록증 발급은 필수입니다.

물론 의도적으로 주민등록증을 말소한 노숙인의 경우 재난지원금 수령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상당수의 노숙인들이 빚을 지고 떠도는 채무자들이기 때문에 주민등록증 발급과 동시에 각종 빚독촉에 시달릴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시 자활정책팀 관계자는 “신용불량자인 노숙인분들에 대해서는 지원센터를 통해 상시적으로 신용회복 절차, 빚탕감 절차 등에 관한 사안을 전문기관과 연계해 상담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신청기간이 다음달 19일이면 끝나기 때문에 서울시는 최대한 많은 노숙인들이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라고도 했습니다.

복지에 사각지대는 없어야겠죠. 김선순 서울시 복지정책실장은 “정부 긴급재난지원금은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제도이지만, 거리노숙인들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신청조차 하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존재했었다”면서 “최대한 많은 거리노숙인들이 빠짐없이 긴급재난지원금을 신청해 지원받을 수 있도록 서울시가 남은 한 달 동안 신청부터 수령까지 전 과정을 집중 지원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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