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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케미칼, '흡입독성 가습기살균제' 10년 이상 은폐·조작

윤지원 기자 입력 2020. 07. 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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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초 부서 차원서 'PHMG 사용' 인지 재판서 드러나
중간거래상에 PHMG 실험 의뢰..허위 사실 확인서 요구
"안전성 우려해 실험보고서에 청정제 아닌 청정기로 고쳐"

[경향신문]

최창원 전 SK케미칼 대표이사가 지난 2019년 8월 27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참사 진상규명 청문회에서 방청석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연합뉴스

SK케미칼은 2016년 1차 가습기살균제 수사의 법망을 피했다. 흡입독성 물질을 제조·공급하긴 했지만 옥시와 홈플러스가 이 물질로 가습기살균제를 만들어 사용한 줄 몰랐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SK케미칼이 이 주장을 유지하기 위해 최소 10년간 조직적 은폐·조작 활동을 했다는 구체적 정황과 진술이 최근 공판에서 나왔다.

최기승 전 SK케미칼 스카이바이오팀 팀장 등의 지난 5월25일부터 이달 13일까지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유영근) 공판 내용을 종합하면, SK케미칼이 부서 차원에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이 ‘가습기살균제’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한 시점은 늦어도 2009년 3월이다. 최 전 팀장이 개인적으로 PHMG의 가습기살균제 활용을 인지한 것은 옥시에 이 원료가 납품되기 시작한 2000년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최 전 팀장 등은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됐다.

중간거래상 계성인더스트리는 2009년 3월 SK케미칼에 ‘홈플러스 가습기청정제’의 PHMG 함유 여부를 묻는 실험을 의뢰했다. SK케미칼 스카이바이오연구팀은 ‘청정제 샘플에 0.5%의 스카이바이오1125(PHMG)가 들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냈다. 이후 PHMG 함유가 문제 될 것을 인식한 내부 차원의 최초 조치가 나왔다. PHMG 흡입 안전성을 담보할 연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 연구팀 직원 ㄱ씨는 지난달 29일 공판에서 “(바이오팀) 주임이 ‘이거 괜찮나’ 하는 우려로 문제제기를 해서 회의가 열렸다”고 했다. 또 “연구팀이 계성에 실험결과 보고서를 보낼 때 실험 대상을 ‘청정제’가 아닌 ‘청정기’(공기청정기 필터 원료)로 고쳐서 보냈다”며 “‘우리가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지 않나’라는 차원에서 두려움 때문에 저렇게 고쳤던 것 같다”고 했다. 청정기는 PHMG가 사용돼도 인체 유해 우려가 없다.

SK케미칼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PHMG의 가습기살균제 사용을 알고서도 안전성 검증을 하거나, 가습기살균제 사용 중단을 권하지 않았다. 이후 가습기살균제 판매가 중단된 2011년까지 피해자가 계속 늘었다. 대신 SK케미칼은 ‘청정기’ 자료를 자신을 둘러싼 민형사 재판에 활용했다. 검찰은 공판에서 “청정기 때문에 SK케미칼은 2019년 2월 검찰 재수사가 개시되기까지 계속 (가습기살균제에 사용된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했다”고 했다. 이에 SK케미칼 측 피고인의 변호인은 “명칭 변경에 어떠한 관여도 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SK케미칼은 ‘청정기’ 보고서를 더 확실한 증거로 만들기 위해 증거 조작을 추가로 시도했다. 2013년 가습기살균제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계성 모 상무에게 ‘실험을 의뢰한 적이 없다’는 허위 사실확인서를 받으려 했다. ㄱ씨는 지난 13일 공판에서 “계성에 사실확인서를 받으려고 요청했으나 거부당한 기억이 있다”고 했다.

TF는 검찰 수사에 대비해 입단속을 했다. 2008~2009년 스카이바이오팀에서 일한 ㄴ씨는 지난해 검찰에서 4차례 조사를 받으면서 청정기 명칭 변경과 관련해 ‘모른다’는 초기 진술을 번복했다. 지난 5월 증인으로 출석한 ㄴ씨는 “TF에서 ‘자료가 없어 확인할 수 없는 것은 모르는 것이라고 답변하라’는 지시를 받아서 최초 조사에서는 모른다고 답했다”고 했다. 피고인 중 일부는 이 재판에서 “증인들이 검찰 압박을 받아 진술을 변경했다”고 주장했다. 최 전 팀장 등의 공판과 ‘가습기메이트’ 관련으로 별도 기소된 애경·SK케미칼 관계자들의 업무상과실치사상 공판은 10월쯤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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