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은 다 갖췄다, 21대국회 재벌개혁 입법

윤호우 선임기자 2020. 7. 25.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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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7월 1일 열린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질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20대 국회에서 재벌개혁 법안은 대부분 통과되지 못하고 자동폐기됐다. 미래통합당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의 반대가 거셌다. 21대 국회에서 재벌개혁 법안들은 재발의됐다.

재벌개혁 법안이 통과하는 길목이 되는 법사위와 정무위는 20대 국회와 비교할 때 확 달라졌다. 법사위 윤호중 위원장과 정무위 윤관석 위원장은 모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이다. 게다가 법사위는 전체 18명의 위원 중 민주당이 11명, 통합당 6명, 열린민주당 1명으로 구성돼 있다. 정무위는 전체 24명의 위원 중 민주당이 14명, 통합당 8명, 정의당 1명, 국민의당 1명이다. 두 상임위에서 민주당 소속 의원이 압도적으로 많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상임위원장을 민주당이 확보했고, 과반의 위원을 확보했지만 결국은 법안 소위원회 통과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법안 소위에서는 관례적으로 만장일치로 법안을 통과시켜왔다. 때문에 통합당이 법안 소위에서 법안을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고 이 관계자는 예측했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재선)은 초선 당시 발의했던 재벌개혁 법안을 21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했다. 이용우 민주당 의원 등을 비롯한 다른 의원들도 상법 개정안, 공정거래법 개정안, 보험업법 개정안 등 재벌개혁 법안을 발의했다. 박용진 의원은 “굳이 재벌개혁 법안이라고 명칭을 붙이지 않더라도 글로벌 스탠더드(국제적 기준)에 맞게 경제를 정상화하는 법안은 민주당이 국민에게 내건 약속”이라며 “지금 조건(21대 국회)에서 이런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한다면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입법 예고

최근 상법·공정거래법, 두 법안이 정부 안으로 입법 예고되면서 재벌개혁 법안의 통과 가능성이 점차 높아졌다. 두 법안은 20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해 임기만료로 폐기됐다가 입법예고를 거쳐 다시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법무부는 지난 6월 11일 기업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하도록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기업지배구조 개선 관련 쟁점인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하고, 감사위원을 분리선출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다중대표소송제는 자회사의 이사가 임무 해태(懈怠) 등으로 자회사에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 일정수 이상의 모회사 주주도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법무부는 이 제도가 자회사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 등 대주주의 사익추구 행위를 방지할 수 있고, 모회사 소수 주주의 경영감독권을 제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 법안과 비슷한 내용의 상법개정안은 20대 국회 초반에 김종인 당시 민주당 의원(현 통합당 비대위원장)이 발의했다. 지금 상황과 비교하면 아이러니한 상황이 됐다. 20대 국회에서 미래통합당의 전신인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반대해 이 법은 결국 폐기됐다. 2017년 11월 20일 법사위 제1법안소위 회의록을 보면 당시 김진태 한국당 의원은 “경영권 보호장치도 필요하다. 이렇게 기업들을 옥죄는, 규제하는 것만 자꾸 나오는데 그 반대 측면의 무기도 줘 가면서 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려면 경영권을 보호하는 다른 법안도 함께 통과시켜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상법 개정안은 결국 이날 마지막 처리가 유보되면서 20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법무부는 2013년 자체적으로 정부안을 내기도 했다. 참여연대는 2020년 상법 개정 정부안이 재벌개혁 측면에서 2013년 정부안보다 후퇴했다고 지적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6월 11일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 법안은 2018년 11월, 역시 정부안으로 발의된 바 있다. 2019년 3월 국회 정무위에 상정됐지만 일부 내용만 개정안 형태로 통과됐을 뿐 ‘전부 개정안’은 자동 폐기됐다. 이번에 입법예고된 개편안은 이때 법안과 거의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다. 기업의 소유·지배구조 제도를 개선하고, 사익 편취 규제를 강화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담았다고 공정거래위는 강조했다. 이 법안에서는 신규 지주회사를 대상으로 자·손자회사의 지분율 요건을 강화했다. 상장회사의 경우 20%에서 30%로, 비상장 회사의 경우 40%에서 50%로 강화했다. 참여연대는 이 조항에 대해 “기업집단에 대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재벌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 진일보한 입법”으로 평가했다.

6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재벌의 벤처기업 지배 및 총수 이익 독식 위한 정책 및 입법시도 철회’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재벌개혁과 정반대 규제 완화 기류도
전부 개정안에서는 새롭게 상호출자집단으로 지정되는 집단의 기존 순환출자에 대해 의결권 제한 규제를 신설했다. 참여연대는 순환출자 신설 조항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부칙을 통해 법 개정 후 지정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기존 순환출자에 대해서만 해당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삼성이나 현대자동차 그룹과 같이 기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중에서도 순환출자를 해소하지 못해 불안정한 기업지배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기업집단이 있다”며 “3년 유예를 두고 이를 해소하도록 하고, 해소하지 못할 때 의결권 행사를 금지하는 등의 규정 신설이 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입법예고한 상법 개정안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여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한 만큼 21대 국회에서 통과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시민단체는 물론 여당 일부에서도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용진 의원은 “정부에서 입법 예고한 상법 개정안이나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은 여러모로 (기존 발의 법안에 비해) 후퇴한 법안”이라면서 “입법 논의 과정에서 정부의 후퇴된 입장을 따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용진 의원실의 관계자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경우 전부 개정안에 빠진 개혁안을 담아 또 다른 법안의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벌개혁과는 다른 방향의 흐름도 감지되고 있다. 규제 완화라는 정반대 흐름이다. 시민단체가 우려하는 가장 대표적인 법안은 CVC(기업형 벤처캐피털) 관련 법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7월 2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CVC도 조속히 결론을 내고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자본의 벤처캐피털 참여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CVC는 공정거래법상의 금산분리 원칙에 걸려 있다. 민주당 의원들이 주로 발의한 CVC 관련 법안은 이를 예외적으로 허용하자는 것이다. 시민단체는 20대 국회에서 통과된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의 또 다른 버전으로 여기고 있다. 인터넷은행이 금산분리의 둑을 1차적으로 무너뜨린 것이라면 CVC가 2차적으로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신동화 간사는 “코로나19 사태로 정부가 투자활성화에 대해 강박 관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며 “재벌이 벤처캐피털을 이용해 외부 투자를 끌어들이고 계열사 확장 수단으로 삼게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신 간사는 “21대 국회에서는 재벌개혁과 규제 완화가 동시에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대기업이 우선 돈을 투자해야 경제가 살 수 있다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부작용이 훨씬 더 클 수도 있으므로 부작용부터 먼저 해소 또는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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