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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in제주] '한라산의 공포' 반려견이 유기견, 유기견이 들개로

백나용 입력 2020.07.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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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주인 잃거나 버려진 개·고양이 4년새 2.7배로 증가
구조되지 못한 유기동물 야생화 돼 가축·사람까지 공격

(제주=연합뉴스) 백나용 기자 = 지난 주말 제주 시내 중산간에 있는 한 골프장을 찾은 A씨는 생소한 광경을 목격했다.

주인을 애절하게 기다리는 유기견 [연합뉴스 자료사진]

개 한 마리가 골프장 내 벙커로 쪼르르 달려가 자리를 잡은 것이다.

목걸이를 착용한 것을 보니 야생 들개가 아닌 주인이 있던 개처럼 보였다.

A씨가 캐디에 "웬 개가 골프장에 들어오느냐"고 묻자 캐디는 "최근 들어 유기견이 골프장 내로 들어오는 일이 잦지만, 매번 쫓아낼 수도 없고 당장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아 일단은 그냥 두고 있다"고 답했다.

민가 주변을 돌아다니던 유기견이 이제는 중산간을 오르내리면서 등산객을 위협하고 있다.

26일 제주동물보호센터에 따르면 최근 4년간(2016∼2019년) 구조된 전체 유실·유기동물은 2016년 2천867마리(개 2천559마리·고양이 308마리), 2017년 5천585마리(개 5천68마리·고양이 517마리), 2018년 7천651마리(개 6천884마리·고양이 767마리), 2019년 7천767마리(개 7천135마리·고양이 632마리)에 이른다.

주인이 잃어버리거나 유기한 개와 고양이가 4년간 2.7배로 늘어난 것이다.

올해도 지난달까지 3천458마리(개 3천138마리·고양이 330마리)가 주인을 잃었다.

제주동물보호센터 입소한 유기견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유실·유기동물은 휴가철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동물보호센터가 구조한 유실·유기동물 7천767마리 중 28%(2천188)가 여름 휴가철(7∼9월) 발생했다.

유실·유기동물 5마리 가운데 1마리 이상이 휴가철에 주인과 이별하는 셈이다.

휴가철에 유독 이런 일이 많은 것은 주인들이 휴가지에 고의로 반려동물을 버리고 오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휴가기간 장시간 집을 비우면서 애견호텔 등에 맡길 경우 비용이 만만치 않아 내다 버리는 사례도 있고 동물병원에 아픈 동물을 맡겨놓고 찾으러 오지 않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사람이 많은 곳에 반려동물을 데리고 갔다가 실수로 잃어버리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유실되거나 유기된 동물 중 입양되거나 원주인을 찾는 경우는 10마리 중 1.4마리꼴이다.

지난해 동물보호센터가 구조한 유실·유기 동물 중 14%(1천84마리)만 분양됐다.

센터가 미처 구조하지 못한 유실·유기동물들은 야외를 떠돌다 소·닭 등 가축은 물론 사람까지 위협하는 포식자로 변모하고 있다.

송아지 위협하는 들개 (제주=연합뉴스) 지난 6월 27일 밤 제주시 한림읍 한 농가 축사에 들개가 습격해 송아지를 위협하는 장면이 폐쇄회로(CC) TV에 잡혔다. 송아지 4마리가 들개에 의해 폐사했다. 2020.6.29 [독자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유실·유기동물은 오랫동안 사람 손에서 벗어나게 되면 어느 정도 야생성을 회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야생에 적응한 유실·유기동물은 먹잇감을 구하는 과정에서 늑대처럼 공격성을 띠게 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들개가 그렇다.

제주도에 따르면 2018년 야생들개로 인한 피해는 닭 693마리, 송아지 1마리, 거위 3마리, 오리 117마리, 흑염소 3마리 등이다.

지난해에도 닭 500마리, 기러기(청둥오리) 50마리, 흑염소 5마리 등이 들개에 희생당했다.

이는 가축 피해만 집계된 것으로 노루 등 야생동물 피해는 집계되지 않은 수치다.

올해도 들개의 공격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제주시 한림읍의 한 축산 농가에 들개 6마리가 침입해 생후 3개월 된 송아지 4마리를 물어 죽이는 등 올해 들어 이날까지 닭 66마리와 송아지 9마리가 들개 공격으로 죽었다.

들개는 심지어 사람까지 위협한다.

지난해 9월 서귀포시 효돈동 주택가 마당에 침입한 들개가 집주인인 60대 여성의 팔목을 물어 상처를 입혔다.

이 여성은 인대가 보일 정도로 큰 상처를 입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또 지난달 제주시 월평동에서 조깅하던 B씨는 제주도청 홈페이지를 통해 "조깅 중 검은 털의 들개가 달려들어 물려 했다"며 "소리를 지르고 나뭇가지와 돌을 던지며 한참 실랑이했다. 가슴이 철렁했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유기동물 줄이는 방안(CG) [연합뉴스TV 제공]

상황이 이렇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뾰족한 수는 없는 상황이다.

현행 동물보호법상 유실·유기동물은 생포만 가능하다.

하지만 이미 야생에 길들어진 유실·유기동물들은 경계심이 많고 영리한 데다 민첩해 포획용 틀 등을 이용해 생포하기란 쉽지 않다.

마취총도 유효 사정거리가 짧아 실효성이 낮다.

이에 따라 동물등록 홍보를 강화하고 중성화 지원을 통해 개체 수를 관리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지만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

제주도는 2009년부터 반려동물 등록제를 도입, 과태료까지 부과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제도 활성화는 요원한 상태다.

실제 지난해 센터가 구조한 유실·유기동물 중 90% 이상은 등록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으로 태어난 강아지들이 유기되는 악순환을 막기 위해 도가 지난해부터 반려견 중성화 수술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도내 전체 개체 수를 관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도는 지난해 읍면지역 반려견 암컷 274마리에 대해 중성화 수술을 지원한 데 이어 올해 375마리에 대한 중성화 수술을 지원했다.

결국 유실·유기동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민 의식 개선이 절실하다는 주장이다.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는 "반려동물이 유실·유기동물이 되고 결국 가축에 이어 사람까지 위협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반려동물을 쉽게 버리는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서는 사실상 유실·유기동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만큼, 책임감 있는 시민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dragon.m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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