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가 토해낸 40조짜리 반도체 설계회사.. 누가 품나

김성민 기자 2020. 7. 26.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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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의 갑(甲)으로 통하는 영국 ARM 매각설 불거져
세계 최대 반도체 설계 회사 ARM. /ARM코리아 페이스북 캡처

“반도체 업계에서 ‘갑(甲) 중의 갑(甲)’으로 통하는 ARM을 누가 인수할 것인가.”

4년 전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사들인 반도체 설계 회사 ‘ARM’이 시장에 매물로 나오자 전 세계 반도체 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설계 회사인 ARM을 누가 가져가느냐에 따라 세계 스마트폰 반도체 시장의 지각변동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팹리스계의 팹리스’ 40조원짜리 ARM

1990년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설립된 ARM은 반도체의 기본 설계도를 만들어 삼성전자·퀄컴·애플 등 세계 1000여 기업에 팔고 로열티를 받는 회사다. 스마트폰의 두뇌인 모바일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에서 서버(대형컴퓨터)용 반도체, AI(인공지능) 반도체 등을 설계할 때 주로 쓰인다.

세계 스마트폰 AP의 95%가 ARM의 설계도를 활용하고 있다. 예컨대 삼성전자·퀄컴·애플은 ARM의 기본 설계도에다가 자사의 독특한 기술을 얹어 AP 칩을 최종 설계한다. ARM의 반도체 설계도가 없으면 당장 스마트폰 핵심 반도체를 개발할 때 지금보다 엄청난 시간 지체가 불가피하다. ARM을 ‘팹리스(공장 없이 반도체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계의 팹리스’라고 부르는 이유다.

작년에 ARM 설계도를 활용한 반도체의 생산 개수는 230억개다. ARM 창립 이후로 누적으론 1600억개다. 올 6월 세계 1위 수퍼컴퓨터에 등극한 일본 ‘후카쿠’에도 ARM의 설계도가 들어갔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조선DB

◇손정의 인수 후 악화한 ARM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2016년 ARM을 320억달러(약 38조원)에 인수했다. 손 회장은 당시 “바둑으로 치면 50수(手) 앞을 내다보고 인생 최대의 베팅을 했다”며 “미래 성장 가능성을 감안하면 10년 후엔 ‘싸게 샀다’고 할 것”이라고 했다.

손 회장은 ARM의 설계도가 스마트폰의 영역을 넘어, 사물인터넷(IoT)에 쓰일 것으로 봤다. 사물인터넷 환경에서는 예컨대 디지털 도어록도 인터넷과 연결돼 똑똑한 기기가 될 수 있고, 여기에도 ARM 설계도가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하지만 사물인터넷의 혁신은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다. 베팅은 결과적으로 실패다. ARM의 매출은 3년째 제자리걸음이다. 2017년 18억3100만달러(약 2조2000억원)인데 2년이 지난 2019년에도 18억9800만달러(약 2조3000억원)였다.

미래 잠재력 시장이 부상 안 하는 가운데 주력 사업군인 스마트폰 로열티가 흔들리고 있다. 스마트폰이 이전만큼 안 팔리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로 스마트폰 판매량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여기에 ARM의 최대 고객인 화웨이가 미국 제재 대상이 되면서, ARM으로선 설계도를 계속 제공하지 못할 분위기다.

여기에 최대 시장인 중국의 매출이 절반으로 줄었다. 손 회장은 2018년 중국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 등에 ARM의 중국 법인 지분 51%를 1조원도 되지 않는 금액에 팔았다. ARM 중국 법인은 매출의 20%를 차지하는데, 지분법에 따라 중국 내 매출의 절반으로 감소한 것이다. ARM 안팎에서 “손 회장의 잘못된 판단으로 중국 매출이 줄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ARM 누구 손에 넘어가나

손 회장의 소프트뱅크그룹은 최근 위워크 등 스타트업 투자 실패와 코로나 사태 여파로 경영 위기다. 50조원 규모 현금 확보가 필요한 손 회장은 ARM을 매각하거나 상장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13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이 “소프트뱅크가 ARM을 재매각하거나 상장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하자, 세계 반도체 업체는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였다. 문제는 ARM이 세계 반도체 업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워낙 세다 보니, 누구도 인수하기 쉽지 않은 딜레마다.

지난 23일(현지시각) 블룸버그는 “미국 그래픽 칩 제조업체인 엔비디아가 ARM 홀딩스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애플과 삼성전자도 인수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엔비디아나 애플이 인수할 경우 각국 정부가 인수·합병을 쉽사리 승인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ARM의 설계도가 특정 기업이나 국가의 전략적인 무기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로열티 급등 우려도 작지 않다.

여기에 인수에 필요한 엄청난 규모의 자금도 걸림돌이다. 적어도 40조원에 육박하는 금액을 제시해야 ARM을 인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출 2조원짜리 회사에 40조원을 제시할 곳은 많지 않다.

소프트뱅크 그룹도 IPO를 하는 방안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인텔의 PER(주가수익비율)이 18배 정도인데, 이걸 ARM에 적용하면 340억달러(약 41조원)의 기업가치”라고 보도했다. 벌써 일부 외신에선 ARM이 상장하면, 2025년엔 시총이 680억 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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