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감사원장, 친원전쪽 논리로 직권심리 회의 발언 70~80% 주도"

김정수 2020. 7. 2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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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감사인' 백운규 주장 들어보니
최 원장, 원자력 전문가와 인척
시민단체의 공정성 우려 뒷받침
월성1호기 감사 공정성 논란 커질 듯
백 "원전 안전 뭐가 문제냐식 질문
친원전 감사관들에 조사받는 느낌"
일부 이사 '강압 조사' 주장과 일치
최재형 감사원장이 2017년 12월2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자신의 임명동의에 관한 인사청문회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최재형 감사원장이 대통령의 대선 득표율이 낮다며 “대통령이 시킨다고 다 하느냐”는 등의 발언을 한 것은 사실이라고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6일 밝혔다. 백 전 장관은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를 결정할 당시 책임자로 피감사인이다. 하지만 전직 장관으로서 자신의 실명을 걸고 공개한 내용이라 파문이 예상된다. 최 원장이 밀어붙여온 월성 1호기 감사의 공정성도 의심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현직 감사원장이 사석도 아니고 감사위원과 감사관, 피감사인인 공무원까지 20명 가까이 참석한 직권심리를 주재하면서 이런 발언을 했으리라고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송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3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최재형 감사원장이 “‘대선에서 41%의 지지밖에 받지 못한 정부의 국정과제가 국민의 합의를 얻었다고 할 수 있겠느냐’며 월성 1호기 폐쇄 결정 등 국정과제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을 때도 이를 보도한 언론은 많지 않았다. 대정부질문에 흔히 나올 수 있는 정치 공세나 와전된 발언일 수 있다고 보고 넘어간 것이다.

하지만 4월9일 감사원에서 열린 직권심리에 출석했던 백 전 장관은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송 의원이 언급한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직권심리에서 감사원장은 회의 주재만 할 뿐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갔는데, 그날은 친원전 쪽의 일방적인 논리로 회의 발언의 70, 80%를 끌어가 놀랐다”며 “최 원장이 감사의 결과를 예단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백 전 장관의 이런 설명은 이번 감사에서 최 원장 스스로 회피 신청을 해야 한다는 반원전 쪽 시민사회단체의 요구와 맥이 닿는다. 월성 1호기 폐쇄가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최 원장이 정부 출연 연구기관에서 근무하는 원자력 전문가와 동서 사이여서 친원전 쪽 논리에 경도돼 있다며 이렇게 주장해왔다.

백 전 장관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의 타당성 감사’라는 국회의 감사 청구 취지로 봐도 감사는 조기 폐쇄 결정 과정에서 고려된 경제성, 안전성, 환경성 등을 균형 있게 검토해야 하는데, 감사원은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이 수행한 회계적 관점의 경제성 평가라는 지엽적 부분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춰 피조사자들의 진술을 문답에 거의 반영해주지 않고 있다”며 “경제성을 따지려면 2009년 한수원이 월성 1호기의 수명 연장 신청 전에 대규모 선투자를 해 경제성 평가를 왜곡한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 전 장관은 “친원전이나 탈원전이라는 것은 철학과 선택의 문제인데 감사관들이 이것을 옳고 그름의 문제로 재단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가 잘못됐다’는 결론을 정해놓고 끼워 맞추기 식으로 조사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감사관들이 에너지 전환의 필요성에 대한 설명은 들어보려고 하지도 않고, 원전이 가장 경제적인 발전원이 아닌가, 법적으로 안전하다고 원안위(원자력안전위원회)가 확인했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물을 때는 친원전 인사들이 조사하는 게 아닐까 싶었을 정도”라고 털어놨다.

조사 과정에 대한 백 전 장관의 설명은 지난달 말 조사를 받은 한수원의 일부 사외이사들의 주장과도 일치한다. 이들은 이달 초 <한겨레>에 감사원이 ‘폐쇄 결정이 부당했다’는 결론으로 몰아가기 위해 폐쇄에 찬성한 자신들을 상대로 경제성만을 기준으로 ‘예스 아니면 노’ 식으로 답변하도록 몰아가는 강압적 조사를 벌였다고 주장한 바 있다.

감사관들의 이런 편향적인 감사 태도는 최 원장이 직권심리 이후 담당 국장을 교체한 뒤 이뤄진 2차 조사 때 더욱 심했다는 것이 백 전 장관의 설명이다. 백 전 장관은 “전직 장관이지만 민간인이 된 나에 대한 감사관들의 조사 방식을 보면 이번 감사에서 현직인 공무원들이 얼마나 고초를 겪었을지 당사자들이 말을 안 해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런 방식의 감사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묵묵히 일하고 있는 수많은 공무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향후 적극 행정과 국정과제 추진에 심각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만큼 지금이라도 감사가 중립성과 신뢰성을 회복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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