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시민의 자긍심을 짓밟는 文 정부의 과세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입력 2020. 7. 27. 03:20 수정 2020. 11. 12.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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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을 내는 일은 공동체를 위한 기여이고 시민적 자부심의 원천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이 세상에서 살면서 죽음만큼이나 확실한 것이 세금이라고 말한 건 미국 건국 주역 중 하나인 벤저민 프랭클린이었다. 그가 살던 시기에 영국은 식민지 전쟁 등으로 인한 재정 부담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법률을 제정하여 식민지 미국인들에게 세금 부담을 안겼다. 영국 의회는 인지법(the Stamp Act)을 만들어 공공 서류, 신문, 잡지 등 인쇄 문서는 런던에서 만든 인지 붙은 종이만을 사용하게 했고, 타운젠드법으로는 차, 유리, 종이, 페인트 등 상품의 수입에 관세를 부과하도록 했다. 식민지의 미국인들은 이러한 조치에 항거하기 시작했고, 그때 제기된 것이 그 유명한 ‘대표 없이 과세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는 주장이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이 독립전쟁에까지 나서게 된 건 이와 같은 세금의 영향이 컸다. 세금 이슈는 사실 민주주의의 역사이고 의회 정치의 역사이기도 하다. 1215년 런던 외곽의 러니메드 평원에서 영국 존 왕이 ‘귀족들의 동의 없이 과세할 수 없다’는 규정을 담은 마그나카르타에 서명해야 했던 것도 세금과 관련이 있고, 프랑스혁명의 도화선이 된 삼부회의 소집 또한 루이 16세의 재정적 위기와 그걸 해결하기 위한 과세의 문제와 관련이 있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세금 문제가 정치적으로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가격 상승을 막기 위해 '징벌적' 수준으로 세금을 물리기로 했고, 또 세법개정안을 통해 소득세 인상 등 증세 기조로 나아가면서 이 사안을 두고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사회적으로 필요하다면 세금을 올릴 수도 있는 일이지만, 문재인 정부가 세금을 바라보는 인식에는 근본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

우선 그 절차와 관련된 것이다.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는 것이 우리나라 헌법의 조항이다. 국민의 재산에 국가가 개입하기 위해서는 국민 대표자의 논의와 동의를 구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부동산에 대한 '징벌적 세금'은 행정 조치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부동산이 갖는 재산상의 의미를 생각할 때, 각 시민의 재산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결정이 정치적 대표자의 논의와 동의 없이 국토부 장관의 공시지가 인상과 같은 행정 조치에 의해 이뤄지는 건 민주주의 작동 원리와 관련해서 볼 때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다. 영국에서 국민이 직접 선거를 통해 구성한 기구가 아니라는 이유로 상원조차 세금, 기금 등 돈과 관련된 사안을 다룰 수 없도록 규정한 것이 1911년의 일이다.

문재인 정부의 세금 정책과 관련해서 더욱 심각한 문제는 세금을 '폭탄'이나 '징벌'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세금은 시민 개인에게는 재산상의 손실이지만 국가 공동체를 유지하고 사회적 안정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말하자면, 세금은 국가 공동체를 위해 시민이 자기 재산의 일부를 희생하고 전체 사회를 위해 기여하는 것이다. 군대에 가는 것이 국가 방위를 위해 시민으로서의 책무를 다하는 것이라면, 세금을 내는 일 역시 공동체를 위한 또 다른 기여이고 시민적 자긍심의 원천이다. 그런 점에서 세금을 '때려잡기 위한' 징벌적 수단으로 바라보는 문재인 정부의 왜곡된 인식은 이러한 시민의식에 대한 모욕이기도 하다.

사실 4차 산업혁명과 함께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가 도래했다. 거기에 코로나 사태까지 겹치면서 경제적 불평등과 격차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었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국가의 역할도 중요해졌다. 전 국민에 대한 기본소득 지급 논의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재정 확대에 대한 요구가 높아진 것이다. 더욱이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고 세 차례나 추경을 편성했다면 그것을 충당할 재원 마련이 필요할 것이라는 건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얼마 전 홍남기 부총리도 세법개정안을 발표하면서 사실상의 증세를 이야기했다.

사회적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증세가 필요하다면, 그 부담을 져야 하는 이들이 받아들일 만한 합당한 명분과 정당성이 제시되고, 무엇보다 모두가 공평하게 그 책임을 나누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증세가 필요하다면 고소득층, 부동산 소유자에게만 그 책임을 ‘징벌적으로’ 안기겠다고 할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기의 역량에 맞게 그 부담을 공평하게 나누도록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세금을 바라보는 현 정부의 무지와 무능이 그 이슈에 대한 절박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 도출이 필요한 시기에 오히려 불필요한 갈등만 부추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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