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정치 읽기] 갑작스러운 개헌 제안..진짜 속내는?

2020. 7. 27.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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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 1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21대 국회 개원식에서 개원 축하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민국을 새롭게 도약시킬 2017년 체제를 구상하고 만들어야 할 때…오늘부터 개헌을 주장하는 국민과 국회의 요구를 국정 과제로 받아들이고 개헌 실무를 준비해나갈 것(이다).”

지난 2016년 10월 24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국정 연설에서 밝힌 내용이다.

개헌과 관련된 제안은 거의 모든 정권에서 있었다. 민주화 이후 거의 모든 정권이 개헌을 주장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다. 각 정권에서 개헌을 들고나온 시점을 보면 시기적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레임덕을 늦추거나 그 정도를 완화하기 위해서 개헌을 들고나오는 경우다. 또 다른 경우는 정권에 불리한 이슈 혹은 약점을 덮기 위해서다.

이명박 정권은 집권 2년 차인 2009년 광복절 기념사에서 비교적 일찍 개헌 카드를 제시했다. 이명박 정권은 집권 초기, 이른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 여파가 2년 차에도 지속됐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이명박 정권 1년 차 지지율 평균은 21%대,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2년 차 지지율 평균도 27% 정도로, 다른 정권보다 낮았다. 미국산 쇠고기 정국 돌파와 낮은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도 개헌을 언급할 수밖에 없었다.

박근혜 정권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2016년 10월 개헌을 주장한 때는 이른바 ‘최서원 게이트(최순실 게이트)’가 막 불거지고 있던 때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문제가 언론에 처음 보도되기 시작한 시점이 2016년 7월이다. 이후 정권 관련 다양한 의혹들이 제기되기 시작했는데, 이 와중에 대통령이 직접 개헌 문제를 꺼냈다는 것은 이슈를 또 다른 이슈로 덮으려는 시도로 해석해볼 수 있다.

역대 정권에서 개헌 문제가 제기된 시기적 특징을 보면 정권에 불리한 이슈가 제기됐을 때나 취약점을 보완할 필요성이 극대화됐을 때, 레임덕 강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될 때였음을 알 수 있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제헌절인 지난 7월 17일 “한 세대가 지난 현행 헌법으로는 오늘의 시대정신을 온전히 담아내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있다”며 개헌 필요성을 제시했다. 내년까지가 개헌의 적기라는 주장도 덧붙였다. 적지 않은 국민은 왜 지금 갑자기 개헌 얘기를 꺼냈는지 어리둥절할 터다. 더구나 개헌에 대한 구체적인 필요성은 언급하지 않은 채, 추상적인 당위성만을 역설했기에 궁금증은 더해진다. 개헌 얘기를 끄집어낸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라도, 개헌 제안의 배경이 될 수 있는 상황적 요인을 추측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현재 국회 의석 분포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석수는 176석이다. 여기에 이른바 범여권이라 불리는 정당들, 즉 열린민주당 3석, 시대전환 1석, 기본소득당 1석, 민주당 출신 무소속 1석 그리고 정의당 6석을 합하면 188석에 달한다. 개헌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필요한 의석은 200석이다. 이론적으로만 보면 개헌을 위한 의석수 확보는 현재로서는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미래통합당과 통합당 출신 무소속 의원 중 일부가 개헌에 찬성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때문에 어떤 방향으로 개헌을 추진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여기서 김종인 통합당 비대위원장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김종인 위원장은 7월 17일 “개헌을 하면 권력을 분점하는 측면에서 내각제 개헌을 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것이 개인적 생각”이라고 밝혔다. 내각제를 전제로 개헌을 추진한다면 찬성할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그렇다면 권력구조와 관련한 민주당 생각은 김종인 위원장 의견과 비슷할까? 아닌 것 같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권력구조는 4년 중임 대통령제다. 4년 중임 대통령제와 내각제는 방향부터가 아예 다르다. 우리 정치사를 보면 내각제를 주장하는 측은 대부분 정치구도상 열세인 쪽이었다. 현재 민주당은 중앙권력과 지방권력 그리고 입법권력 모두를 갖고 있기에 내각제를 논할 이유가 없다. 당연히 통합당이 민주당식 개헌안을 받아들일 확률은 적다. 더구나 이익공유제나 강화된 토지공개념 등을 개헌안에 담으려 할 경우, 통합당 반발이 극심할 것이 분명하다.

박병석 의장이 개헌 카드를 꺼낸 또 다른 이유로,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초기부터 개헌을 주장해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2018년 신년사에서 문 대통령은 “(국회에서의 합의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정부가 보다 일찍 개헌 준비를 자체적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런 이유에서 박 의장이 개헌 카드를 꺼냈을 수도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 또한 쉽게 수긍할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 뜻을 실현하기 위해 박 의장이 그런 말을 꺼냈다면 총선에서 압도적 다수 의석을 획득한 직후부터 여당에서 그런 얘기가 나왔어야 하는데, 지난 4·15 총선 직후 민주당 지도부는 다른 얘기를 했기 때문이다. 5월 1일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주최한 정책 세미나에 참석한 이인영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는 “개헌 추진과 관련해 우리 당, 지도부 내에서 검토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때문에 이런 추론도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그렇다면 왜 이 시점에서 박병석 의장이 개헌 주장을 꺼냈는가 더욱 궁금해진다. 일단 시기적으로 보면 지금은 문재인 대통령 집권 4년 차다. 비록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요사이 ‘급강하’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역대 정권 집권 4년 차 지지율과 비교하면 다른 정권보다 높은 지지율이다.

문제는 지금의 지지율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데 있다. 현 정권 지지율을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세력인 2030세대와 여성들이 지지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리얼미터가 7월 13~15일 전국 유권자 1510명에게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20대와 30대 그리고 여성들의 현 정권에 대한 지지가 급감했음을 알 수 있다. 지지를 거둔 대표적인 이유는 현 정권의 부동산 정책 실패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이다. 정권 입장에서 이런 상황을 방치할 수는 없다. 자칫 레임덕이 급속도로 가시화될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동산 정책 같은 문제는 당장 해결할 수 없다. 때문에 일단은 다른 이슈로 이런 문제들을 수면 아래로 가라앉힐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물론 이 역시 어디까지나 추론이다.

이유야 어떻든 지금같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개헌 얘기를 꺼내는 것은 많은 이를 어리둥절하게 만들 요소가 많다. 원래 박 의장이 개헌론자이든 아니든, 정치란 상황에 맞는 이슈를 제기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보면 분명 여러 추론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자초한 셈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69호 (2020.07.29~08.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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