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속 드러나는 탈북민 행적..첩보 입수 후 8시간 경찰은 뭐했나
경찰 '월북' 첩보 입수 후 8시간 만에 신병확보 나서
탈북자 김모(24)씨가 월북(재입북)한 날은 군당국이 밝힌 19일이 아닌 지난 18일 새벽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찰이 그의 행적을 추적한 결과 당일 오전 2시 20분쯤 인천 강화군 강화읍 한 마을 배수로 인근에서 택시를 내린 후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라진 자리에는 김씨 명의의 통장과 환전(480만원 상당) 영수증, 수경(물안경) 등이 담긴 가방만 남아 있었다.
경찰은 그가 하루 전인 17일 오후 강화군에 한 차례 더 방문한 사실도 확인했다. 월북 장소를 물색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김씨의 월북 루트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반면 이 과정의 경찰 대응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탈북민은 경찰의 관리대상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연락을 취해 이상유무를 파악해야 하는데 하물며 성폭행 피의자 신분인 김씨에게 최근 월북 전까지 경찰이 단 한 번도 전화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김씨의 ‘월북 가능성’ 첩보 접수 후 군 당국은 물론 국정원 등에 통보하지 않은 것은 물론 반나절이 지나서야 김씨에게 연락을 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 이틀간의 행적...점차 드러나는 월북 루트
경기남부경찰청은 27일 오전 출입기자단 브리핑을 통해 “지난 18일 오전 2시 20분쯤 김씨가 택시를 타고 강화군 강화읍 OO리에서 내린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당초 하루 전인 지난 17일 탈북민 지인이자 김씨의 월북 첩보를 알린 유튜버의 차량(K3)을 이용해 인천 강화군 교동면 교동도에 다녀왔다. 이후 경기 김포시 자신의 아파트 인근으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한 뒤 마사지 업소를 다녀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휴대폰 전원을 끈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실제 김씨의 휴대폰은 17일 오후 김포 자택 인근에서 기지국 기록이 사라졌다.
경찰은 그가 곧바로 택시를 타고 강화도로 이동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가 내린 장소는 앞서 다녀온교동도가 아닌 강화읍 OO리 마을 인근이었다. 월북 루트가 바뀐 것이다.
강화읍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강화읍에서 한강 하류로 접근할 수 있는 곳은 △△리와 OO리 두 곳인데 △△리의 경우 그물망이 많아 OO리가 접근성은 좋다”며 “교동도는 새벽 시간 택시를 타고 들어가려면 반드시 해병대 검문을 받아야 해 접근성이 쉬운 OO리를 선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경찰도 이날 “OO리는 군사보호구역은 맞지만 민간인 출입이 가능한 곳”이라며 “인근 배수로에서 그의 가방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가방 안에는 500만원이 인출된 김씨 명의의 통장 1개와 480만원을 달러로 바꾼 환전 영수증, 수경 등이 들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폐쇄회로(CC)TV 등을 추적, 그가 당일 OO리에 내린 후 행적이 사라졌다”며 “배수로 인근에서 가방이 발견된 것도 맞지만 그가 당일 배수로를 통해 월북했는지는 우리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군 당국과 함께 정확한 월북 루트 등을 조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씨의 범행,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경찰 대응
김씨는 월북 직전까지 불구속 입건된 상태였다. 지난달 12일 오전 1시 20분쯤 평소 알고 지내던 탈북민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다. 김씨는 같은 달 21일 불구속 상태에서 피의자 조사까지 받았다. 당시 김씨는 “술에 취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달 4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검사결과 피해자의 몸에서 김씨의 DNA가 검출됐고, 같은 달 18일 “피의자가 피해자를 죽이겠다”는 협박 제보를 받자 수사를 본격화 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19일 오전 1시 1분쯤 “달러를 바꿨다고 하네요. 어제 달러를 가지고 북한에 넘어가면 좋겠다면서 교동도를 갔었다네요”라는 ‘월북 가능성’ 제보도 받았다.
탈북민 성폭행 피의자가 ‘월북할 것 같다’는 내용의 첩보를 받은 경찰이 김씨의 신병확보를 위해 전화를 건 시점은 첩보 접수 후 8시간 만인 당일 오전 9시쯤이다. 김씨의 휴대폰은 당연히 꺼져 있는 상태였다.
경찰은 ‘월북 가능성’ 제보자를 참고인 조사한 후 다음날인 20일 오후 6시쯤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월북 첩보 접수를 받은 후 41시간 만이다. 이어 56시간여 만에 도주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법원은 당일 오후 ‘구인장’을 발부했다.
물론 이 같은 사실을 군 당국이나 국정원 등에 통보한 사실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대응의 문제점은 또 있다.
김씨는 탈북민 신변호보절차에 따라 ‘다’ 등급으로 분류된 보호대상자다. ‘다’ 급은 해당 지역 경찰서 보안과 소속 경찰관이 한 달에 한 번꼴로 전화나 대면 만남을 통해 이상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북한의 테러 대상 유무, 경중에 따라 ‘가’, ‘나’, ‘다’ 등급으로 분류되는데 태영호 국회의원 등이 ‘가’급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경찰은 이마저도 지키지 않았다. 탈북민이 성폭력 피의자 조사까지 받은 인물임에도 지난달 21일 피의자 조사후 단 한 번도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거 보안계 업무를 담당했던 한 현직 경찰은 “탈북자 관리 매뉴얼 상 월 1회만 이상 유무 등을 확인하도록 돼 있다”면서도 “하지만 당시 그가 중대 성범죄 혐의로 조사를 받던 상황이었기에 더욱 세심하게 관리하고 소재 확인을 했어야 했다”라고 꼬집었다.
이에 경찰 관계자는 “(늑장 조사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정한다”며 “좀 더 적극적으로 행적을 추적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부분은 개선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만 월북에 대한 언급은 19일 오전 1시 1분에 처음이었다”며 “날짜와 시간대로 잘라 설명하면 늑장대처처럼 보이지만 경찰은 첩보 후 절차대로 진행하고 있었다는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고 해명했다.
임명수 기자 sol@hankookilbo.com
이종구 기자 min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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