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의료진 부족한데..정부 비판했다고 해고당한 의사들
[경향신문]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에서 의료진 부족을 호소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를 비판한 의사들을 해고한 ‘간 큰’ 나라가 있다. 중미에 있는 니카라과다.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거리두기나 마스크 착용에도 미온적인 태도를 유지해온 니카라과 정부는 오히려 코로나19 확산 방지책을 요구한 의사들에 ‘해고’라는 카드를 내밀었다.
2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최근 니카라과 국립병원 등에서 일하는 의사 21명이 해고됐다. 지난달 초 니카라과 수도 마나과공립병원의 전염병 전문의 카를로스 구안이 주축이 돼 수십 명의 의사들이 코로나19 예방책을 담은 권고를 국민들에게 발표했다. 거리두기는커녕 마스크 착용에도 미온적인 정부 대처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이들은 정부에 전염병 확산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의료진엔 코로나19 감염을 대비한 보호장비를 지급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정부의 답변은 ‘해고’였다. 구안 외에도 전국 공립병원에서 일하는 21명의 의사들이 해고됐는데, 이들은 모두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는 성명에 가담한 의료진이었다. 정부는 대신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없는 듯 ‘비밀주의’를 유지하는 데 급급했다. 정부는 여전히 코로나19 환자가 3430여 명에 불과하고 사망자 수는 100여 명이라고 선전한다. 하지만 독립기구인 ‘코로나19시민조사회’에 따르면 22일 기준 코로나19 의심증상 환자는 8755명, 사망자는 2487명이다. 사망자는 공식 기록보다 23배 이상 많은 수치다. 전염병 전문의 리오네 아르구엘료는 “개인적으로 목격한 코로나19 사망자만 10명이 넘는다”면서 전국적으로 따지면 사망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미 병원 시설은 포화상태고, 코로나19로 생명을 잃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망자들은 야밤에 ‘도둑 장례’를 치르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하지만 니카라과 정부는 그동안 코로나19가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 대처했다. 학교와 일터 등도 한 번도 문을 닫은 적이 없다. 도시 봉쇄는커녕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정부 지침도 없었다.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은 3월 이후 한 달 이상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등 ‘권력의 부재’도 이어졌다. 화상으로만 모습을 드러내던 오르테가 대통령은 지난 19일 처음으로 마스크를 쓰고 공식석상에 서기도 했다. 이날 1979년 소모사 가문의 세습 독재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국경행사가 열렸는데, 30만명의 사람들이 행사장에 모일 정도로 ‘거리두기’는 안중에도 없었다.
소모사 가문의 세습 독재를 끝낸 산디니스타 민족 해방 전선 측의 오르테가 대통령이 2006년 대권을 잡았지만, 그또한 포퓰리스트로 변모했다. 대통령 연임을 금지한 헌법까지 개정하며 장기집권의 길을 닦았고, 급기야 2016년엔 아내 로사리오 무리요를 부통령 자리에 앉혔다. 오르테가 대통령과 무리요 부통령 부부와 아들들은 미국 정부의 제재 명단에도 올라 있다. 반정부 인사들에 대한 인권 탄압을 자행하고 비리를 일삼고 있어서다. 2018년 반정부 시위 과정에서 당국의 강경 진압으로 300명 이상 숨지기도 했다.
포퓰리스트 정권은 코로나19 대처에도 무능했다. 지난 5월엔 미국을 비판하는 백서를 발간하고 “미국이 팬데믹을 기회로 삼아 사람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겁을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오르테가 대통령의 의료진 탄압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2018년 부상당한 반정부 시위대를 치료한 의료진 400여 명이 해고당하기도 했다. 당시 해고됐던 의사 호세 안토니오 바스케는 “오르테가 정권은 의료진을 하얀 가운을 입은 쿠데타 음모론자로 여긴다”면서 “의사들을 해고하면서 ‘입을 열면 직장을 잃을 것’이라는 메시지로 무언의 협박을 하고 있다”라고 WSJ에 말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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