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기립표결 '거여 천하'..되레 장관이 국회서 호통 쳤다

오현석 입력 2020. 7. 29. 19:13 수정 2020. 7. 30.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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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출석해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오종택 기자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도록 갚아주겠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가 4·15 총선 직후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그의 예언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176석 거여의 완력은 거칠고 빨랐다.

더불어민주당은 29일 국회 운영위에서 '공수처 3법' 등을 처리했다. 법사위도 '2+2년 5%'라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완료했다. 전날 기재위·국토위·행안위에선 종부세법 인상 등 부동산 관련 11개 법안을 통과시켰다. 토론도 심의도 없는 '민주당 천하'였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통합당이 또다시 시간 끌기로 지연시킨다면, 민주당은 단호한 대처로 집권여당의 책임을 다할 것”이라는 말은 공수표가 아니었다. 이미 정치권에선 "법안 통과가 가장 쉬었어요, by 민주당"이란 말이 공공연하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987년 이후 국회는 다수결 원리 말고도 '정당 간 합의'라는 절충을 지향해왔는데, 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민주당이 합의제 장치를 모두 무력화하고 있다”면서 “당내 견제마저 없는 민주당의 모습은 일본 자민당의 ‘1.5당 체제’만도 못한 ‘1당 정치’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호통치고 면박 주는 국무위원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이날 주택임대차보호법과 관련해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게 두 가지 우려되는 점을 전했다. '2+2 세입자 보호’ 제도 시행 전 집주인이 미리 월세를 올릴 가능성과 4년 계약이 끝나는 시점에 전·월세 시장이 흔들릴 가능성에 대한 우려였다.

▶박 의원=“혹시 이런 두 가지 시중의 우려에 대해 검토해본 바가 있나?”
▶추 장관=“(국회에서) 대안을 논의하시면서 경과 규정을 어떻게 둘 것인지 또 존속 중인 계약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 좀 심도있게 논의해주시면 좋겠다. 제가 말씀을 드리는 것보다는 그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조속히 입법을 하지 않고 계속 미루어두는 것이 우려하시는 임대가격 인상을 촉발시키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추 장관의 첫 답변은 적잖은 논란을 일으켰다. 민주당의 한 보좌관은 “국민을 대신해 질문한 것에 ‘국회가 잘 하라’고 면박 준 셈 아니냐”며 “우리가 아무리 여당이어도, 입법부와 행정부의 견제 원리 자체가 무너진 듯했다”고 말했다.

윤한홍 통합당 의원은 이날 회의에서 “부동산 분야는 너무 어려운 분야인데, 몇 사람이 생각한 안이 있다고 해서 그걸 토론도 없이 이렇게 하는 것은 국민에게 예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28일 국회 국토교통위에 출석해 답변하고 있다. 왼쪽은 박선호 국토교통부 제1차관. 오종택 기자

전날 국토위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주택공급 방안이 언제쯤 발표되느냐”는 진성준 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대해 “일단 법안이 먼저 좀 되어야 하지 않겠냐”고 답했다. 여당 내부에서조차 “정부 측 태도가 20대 국회와 확연히 달라졌다”는 소리가 나온다.

야당을 향해서는 더 날 선 반격이 등장한다. 지난 27일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통합당 의원을 향해 “말씀드렸는데 기억을 못 하느냐”고 호통을 쳤다. 같은날 추미애 법무부 장관도 국회 법사위에서 통합당 의원에게 “소설 쓰시네”, “질문 같은 질문을 하라”고 말했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에서 “(추 장관이) 개인적인 감정을 표출했다는 느낌을 주는 건 약간 난감하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일어서면 끝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윤호중 위원장이 주택임대차보호법 추가 상정 기립투표를 진행하자 김도읍 미래통합당 간사가 항의하고 있다. [뉴스1]

이날 국회 법사위에선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기립 표결’로 상정했다. 전날 국회 기재위와 국토위에서도 ‘기립 표결’로 안건을 올렸다. 통합당 의원들이 “법안소위에서 먼저 심사해야 한다”며 이견을 표출했을 때, 민주당 소속 상임위원장이 표결에 부친 방식은 동일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법안소위에서 하루 이틀 논의하고 표결에 부쳐도 이번 국회 안에 처리할 수 있는데 너무 강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기립 표결’은 국회법에 규정된 방식이긴 하다. 전자투표가 주로 사용되는 본회의와 달리, 상임위에서는 이의 유무를 묻는 표결 방식과 손을 드는 ‘거수 표결’, 그리고 ‘기립 표결’ 등이 쓰인다.

하지만 지난 20대 국회 상임위 전체회의에서 ‘기립 표결’로 안건이 통과된 것은 4년간 4건에 불과했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준(準) 연동형 비례제’ 선거법 개정안이 지난해 8월 정치개혁특위에서 의결될 때 ‘기립 표결’로 처리됐다. 극히 드물다는 얘기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상임위는 관행상 여야 간사가 합의해서 절충안을 만들기 때문에, 극소수 의원이 반발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의 없습니까’ 묻고 넘어갔다”며 “한두 번도 아니라 모든 상임위가 약속이나 한 듯 기립표결하는 건 처음 본 풍경”이라고 말했다.


현안 질의는 나중

서영교 행정안전위원장이 2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입법 속도와 반비례해서 정부 책임자에게 현안을 묻는 시간은 대폭 축소됐다. 전날 국회 행안위에서 박재호 민주당 의원(부산)이 부산 지역 수해와 관련한 현안질의를 마치자, 민주당 소속 서영교 행정안전위원장은 “아주 긴급한 사안을 2명 정도만 현안질의 하시라. 그 외 다른 현안질의는 다시 여야가 합의해서 업무보고 형태로 하자”고 말했다. 전날 국토위에서도 국토부 등의 업무보고가 예정돼 있었지만 통합당의 불참을 이유로 전격 취소됐다.

과거엔 부처 장관이나 기관장이 국회 상임위에 출석하면 가능한 한 충분히 돌아가며 현안 질의를 하는 게 관례였다. 행안위의 한 민주당 보좌관은 “이번 상임위의 목표는 결국 법안처리였던 셈”이라면서 “이런 형태가 반복되면 행정부에 대한 견제라는 국회 본연의 기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정의당도 비판에 가세했다.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민주당발 법안 처리를 위해 상임위를 당정협의회로, 본회의를 민주당 의원총회로 만드는 행태는 민주주의를 벗어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회는 민주당이 원하는 날짜에 민주당이 원하는 법안만 처리하는 거수기가 아니다. ‘일하는 국회’가 ‘민주당만 일하는 국회’가 아니라는 사실을 민주당은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오현석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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