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 없다는 듯..서울시 '성추행 무대책'
[경향신문]
피해자 보호 등 개선안 발표 없어
구체적 내용 대신 공허한 사과만
오거돈 때와 달리 ‘소극적 대처’
정치적 무게에 눈치보기 비판도
서울시가 고 박원순 시장 성추행 의혹 이후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피해자 역시 서울시 구성원이지만 ‘조력자’도 나오지 않았다. 안희정 전 지사 성폭력 사건 이후 충남도가 침묵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자체가 단체장의 성폭력에 ‘조직적 침묵’으로 일관하며 피해자를 무력화하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조직은 피해자와 연대하기보다는 가해자 편에 섰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나 안희정 전 지사 사례도 비슷하다.
다만 부산시는 오거돈 전 시장 성추행 사건 이후 2차 가해 방지·고발에 적극 나섰다. 오 전 시장이 성추행을 인정하고 사퇴했기 때문이다. 부산시와 서울시의 사후 대처가 다른 것을 두고 부산시 정치권에서는 단체장의 정치적 무게감에 따라 ‘눈치보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민주당 부산시당의 한 관계자는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의 정치적 위상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박 전 시장에 대해 지지세력들이 아쉬움을 토로하면서 2차 가해가 발생한 반면 오 전 시장 사건에서는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29일 박 전 시장 성추행 사건이 알려진 이후 20일이 다 되도록 조직문화 개선 등 대책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외부전문가가 참여하는 대책위원회를 구성할 예정이지만 아직 구체적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최근 ‘서울시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처리 매뉴얼’을 개정했지만, 조직 수장이 성폭력을 저지른 상황에서 사후 대처만 언급하고 있다.
현재 서울시가 택한 유일한 대책은 ‘침묵’이다. 서정협 시장 권한대행은 박 전 시장 비서실장을 지냈지만, 사건에 관한 입장 표명이 한 차례도 없었다. 2차 가해 방지책은 지난 15일 사건 후 첫 입장을 발표할 때 “징계로 엄정 대응하고 부서장도 문책할 것”이라며 “전문가 자문을 거쳐 정신적 치료, 주거안전 등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아닌 “피해호소인”이라고 불러 직접 2차 가해를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 22일엔 “피해자가 일상으로 복귀하고 공직생활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은 언제라도 요청할 경우 적극 검토해 지원할 계획”이라고만 밝혔다.
2018년 3월 안 전 지사 성폭력 사건 당시 충남도의 대응도 다르지 않았다. 서울시가 현재 사건 조사는 국가인권위원회 등 외부기관에 떠넘긴 것과 마찬가지로, 충남도도 검찰 수사를 이유로 들어 조사를 하지 않았다. 지자체가 침묵을 지키는 사이 안 전 지사 측근에 의한 조직적 2차 가해는 노골적으로 진행됐다. 충남도의 한 공무원은 “사건 당시 일부 직원들은 ‘피해자가 안 전 지사와 불륜 관계였던 것 아니냐’는 식의 뒷담화를 했다”고 했다.
사후 예방 대책 발표는 사실상 없었다. 안 전 지사 성폭력 폭로 사흘 뒤 ‘충남도 성희롱(폭력) 예방 종합대책’을 발표했지만, 안 전 지사 사건을 계기로 마련한 게 아니었다. 그 이전에 다른 내부 성폭력 사건에 대한 조치였다. 오히려 충남도는 최근 박 전 시장 성추행 사건 이후 뒤늦게 충남도 성희롱·성폭력 예방 지침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
부산시는 지난 4월 오 전 시장 성추행 사건이 불거진 뒤, 2차 가해를 막기 위해 비교적 적극적으로 나섰다. 피해자 신상 공개, 피해 사실 언급 등 2차 가해가 확인될 경우 중징계하겠다고 발표했다. 경찰은 구체적 피해 사실을 언급하거나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언론보도와 인신공격성 댓글을 수사하고 있다.
오 전 시장 사퇴 직후 부산시청 내 공무원 사이에는 피해사실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소문 등 2차 가해도 우려됐으나 현재는 잠잠한 상태다. 부산시 한 직원은 “조직 내에서 가급적으로 그 직원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다. 보호해주려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부산시 역시 대책을 마련하는 데서는 길을 잃었다. 오 전 시장 사퇴 한 달 뒤 성인지력 향상 대책을 발표하면서 시장 직속 감사위원회 내에 ‘성희롱·성폭력 근절 추진단’을 신설하기로 했지만, 두 달이 지나도록 추진단 구성조차 못하고 있다. 단장으로 외부인사를 영입하려 했으나 적임자를 찾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부산시는 “9월까지는 선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건 발생 5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성희롱·성폭력 근절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허남설·권기정·권순재 기자 nshe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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