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우의 미세한 풍경]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라고 하지 말라

한현우 논설위원 2020. 7. 30.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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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따릉이는 벨을 울리지 말아야 한다. 인도(人道)는 보행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따릉이라는 이름부터 시대착오적이다. 공공 자전거 이름을 그렇게 지으니 따르릉 따르릉 하며 행인들더러 비키라고 한다. 그 이름을 따온 동요 '자전거'는 1933년 작사·작곡됐다. 당시엔 자전거가 주요 운송 수단이었다. 자동차와 우마차, 리어카와 자전거가 도로를 나란히 달렸다. 그 도로에 지게꾼이나 행인들도 지나갔다. "저기 가는 저 사람 꼬부랑 노인"이 "우물쭈물하다가는 큰일" 날까봐 자전거가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하고 경종(警鐘)을 울리던 시대였다. 이제는 자전거를 편리해서 또는 건강해지려고 탄다. 자전거 벨은 자전거 전용도로에서도 가급적 쓰지 않는 물건이다.

사실 따릉이 잘못이 아니다. 따릉이를 안전하게 탈 수 있는 곳이 인도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자전거 타기를 권하면서 자전거 문화가 엉망인 나라도 없을 것이다. 전국 자전거 인구는 1300만명에 이르고 서울시 따릉이 누적 회원 수만 170만명에 달한다. 5년 전 2000대로 시작한 따릉이는 올해 2만5000대로 12배 넘게 늘었다. 그런데 한강 자전거 길을 제외한 서울의 자전거 인프라는 여전히 형편없다.

한현우 논설위원

시내 자전거 도로는 거의 없다시피 하고 있어도 오토바이가 달리거나 불법 정차 차량으로 막혀있다. 그러니 모든 따릉이가 인도로 달린다. 인도에서 자전거를 타려면 행인들이 걸리적거리고 출퇴근 시간 도심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벨을 울린다. 좀 비키라고, 자전거 안 보이느냐고. 따릉이는 이용자를 안하무인으로 만든다.

도로교통법상 자전거는 도로 우측 가장자리로 달려야 한다. 따릉이 이용수칙에도 그렇게 돼 있다. 자전거 경력이 쌓인 사람은 도로를 요령 있게 달릴 줄 안다. 그러나 대부분의 따릉이 이용자들은 자동차와 나란히 달리는 걸 무서워한다. 도로는 위험하고 자전거 도로는 없으니 인도로 달린다. 인도에서는 자전거를 끌고 가야 한다고 도로교통법에 쓰여 있다. 그러나 끌고 갈 거면 따릉이를 빌릴 이유가 없다. 그러니 하루에도 수만 명이 범법자가 되어 자전거를 인도에서 탄다. 한마디로 탈 수 없게 해놓고 타라는 자전거가 따릉이다.

코로나 사태로 따릉이 이용자는 더 많아졌다. 올 들어 지난 4월까지 따릉이 대여 건수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57%나 폭증했다. 대중교통을 기피하려는 현상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전거는 제2의 무법 오토바이가 되고 있다. 차도도 달리고 인도도 달린다. 신호등도 안 지키고 역주행도 서슴지 않는다. 유튜브에는 고속도로를 역주행하는 자전거 영상도 있다.

자전거 타고 가던 사람이 오른팔을 직각으로 꺾어 들어 주먹을 쥐면 정지한다는 신호다. 왼팔을 뻗으면 좌회전, 오른팔을 뻗으면 우회전 신호다. 이런 자전거 수신호는 자전거끼리도 알아야 하지만, 차량 운전자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운전면허시험에 자전거 수신호 문제는 없다. 따릉이 회원 가입할 때 알려주지도 않고, 공영방송에서 캠페인도 하지 않는다. 자전거 동호회에서 안전을 위해 전파하는 게 전부다.

네덜란드는 인구보다 자전거 수가 더 많은 자전거 천국이다. 나라 전체 도로가 14만㎞인데 그 가운데 25%인 3만5000㎞가 자전거 도로다. 자전거 도로에 차량이나 보행자가 들어올 수 없고 자전거 전용 신호등이 따로 있다. 네덜란드나 일본 같은 자전거 선진국 사람들은 도심에서 자전거를 탈 때 헬멧을 잘 쓰지 않는다. 안전 불감증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자전거 도로가 잘 돼있고 자전거를 배려하는 문화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자전거 선진국이 되려면 인프라를 비롯한 자전거 문화 수준에 맞춰 공공 자전거 정책을 세워야 한다. 그런데 서울은 따릉이 수만 무작정 늘리고 있다. 이제 곧 작은 바퀴를 단 '미니 따릉이'도 나오고 이용 가능 연령도 15세 이상에서 13세 이상으로 낮춘다고 한다. 전기 따릉이도 나올 예정이다.

작년 한 해 자전거가 가해자였던 교통사고는 5633건으로 재작년보다 18% 늘었다. 올해는 더 늘 것이다. 인도에선 더 많은 따르릉 소리와 으아악 소리가 울려 퍼질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치인들은 따릉이를 들먹이며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녹색 성장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 것이다. 자전거 애호가이자 1세대 따릉이 회원이었던 나는, 머지않아 자전거 지옥이 닥칠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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