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없이 기립표결로 '뚝딱'..슈퍼여당 독주의 명암

CBS노컷뉴스 김광일 기자 입력 2020. 7. 30. 04:03 수정 2020. 7. 3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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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차법 상정 1시간 만에 법사위 통과
"이의 있습니까" 질문과 동시에 '땅땅땅'
무력한 통합당 "민주당이 다 해먹으세요"
민주당 내에서도 "조급증인가 교만인가"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21대 총선에서 확보한 180석의 압도적 우위를 이용해 쟁점 법안 처리를 화끈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야당인 미래통합당이 절차적 하자를 지적하지만 그렇다고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는 못하면서 제동을 걸기엔 역부족인 모습이다.

이에 따라 부동산 세법, 임대차법, 공수처(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 후속법안 등은 조만간 국회 문턱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책 취지가 시장에 반영되지 않을 경우 그 책임도 오롯이 져야 한다는 지적이 여권에 부담이다.

윤호중 국회 법사위원장이 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통합당 퇴장한 뒤 일사천리

"주택임대차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 수정안 대안을 의사일정으로 추가하는 것에 찬성하시는 위원님들은 기립해주시기 바랍니다. … 재석 18인 중 찬성 12인으로, 안건이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윤호중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29일 의사봉을 '땅땅땅' 두드리자, 야당 쪽에서는 고성이 터져 나왔다. 여당의 일방적인 회의 진행에 동의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분을 삭이지 못한 김도읍, 전주혜, 조수진 의원은 위원장석으로, 장제원 의원은 여당 중진 의원 쪽으로 달려가 거세게 항의했다. "민주당 다 해먹으세요(김도읍)"라거나 "이게 민주화 세력입니까(조수진)"라는 식의 비아냥도 이어졌다.

그러나 이렇게 상정된 임대차보호법이 법사위를 통과하기까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항의하던 통합당 의원들이 "들러리 설 수 없다"며 퇴장한 뒤 법안 처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윤호중 위원장은 "코로나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잠시라도 지체할 수 없는 법이 아닐 수 없다"라고 나즈막이 설명한 뒤 "이의 있냐" 물었고, 몇초 뒤 가결을 선포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등 부동산 관련 법안 심의가 진행된 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미래통합당 조수진 의원이 윤호중 법사위원장에게 항의하자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김남국 의원이 조 의원에게 항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축조심사-예산정책처 비용추계 등 일부 절차 생략

민주당이 이 법을 제출한 건 바로 하루 전, 지난 28일이었다. 의원들이 각자 냈던 여러 법을 물밑에서 하나로 조율한 뒤 '법사위' 명의로 대안 발의한 것. 통합당 위원들은 회의 당일에서야 법안 내용을 받아볼 수 있었다고 한다.

법안이 숨 가쁘게 처리되면서 몇 가지 절차는 이례적으로 '패싱' 됐다. 상임위 내 소위원회나 축조 심사(의안을 한 조항씩 낭독하면서 의결), 그리고 국회 예산정책처의 비용추계 등이 이뤄지지 않았다.

민주당은 시급성을 고려해 다수결 원칙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소위 구성의 경우 앞서 잠정적 합의가 있었는데 그걸 야당에서 걷어찼다고 간사인 백혜련 의원은 주장했다.

그러나 통합당은 '여당이 논의할 생각 자체가 없었던 것 아니냐'고 항변한다. 소위 구성을 위해 회의를 잠시 멈춰달라는 요구가 윤호중 위원장에게 여러 차례 묵살된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기자들과 만난 주호영 원내대표는 "안하무인, 국민무시, 이런 일당독재 국가가 어디 있냐. 국민 여러분이 민주당의 이 폭거, 횡포를 제발 좀 저지해 달라"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법제사법위원회 야당 간사인 미래통합당 김도읍 의원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민주당 내에서도 "조급증인가, 교만인가" 우려 목소리

항의하던 야당 위원들이 퇴장하고, 그 사이 여당 주도로 법안을 처리하는 모습은 이날 오후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공수처 후속법안을 다룰 때도 비슷하게 연출됐다. 김태년 운영위원장은 "이의 있습니까?"라고 물으면서도,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의사봉을 내리쳤다.

민주당은 전날 국토위, 기재위, 행안위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법안을 넘겼다. 앞서 3차 추가경정예산안과 인사청문 보고서를 처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음 달 4일 본회의에서도 '수적 우위'를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방적 처리 뒤에는 후유증이 남을 수 있다는 지적이 당 안팎에서 제기된다. 임대차법과 관련해서는 차후 '전세 대란' 가능성도 이런 우려를 더하는 대목이다.

당내 한 중진 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논의가 설익은 상태에서 강행할 경우 갈등이 증폭되고 위험도도 커질 수밖에 없다"라면서 "부동산 정책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조급증인지 교만인지 제어가 되지 않는다"라고 우려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2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신율 교수도 "법적인 하자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 상위의 가치인 민주주의에 상당히 훼손이 간 것"이라며 "성과가 나지 않으면 저항의 범위와 강도는 넓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모습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통합당은 안건조정위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와 같은 방안을 일각에서 고려하지만 이밖에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수도 없이 벌였던 '장외 투쟁'도 내부 반발이 만만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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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김광일 기자] ogeerap@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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