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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신청하라..삼성전자에서 찍히려면

김양진 입력 2020. 07. 30. 21:46 수정 2020. 07. 31. 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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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사업장 노동자 증언 들어보니
어깨가 빠졌는데.."누군 안 아프냐"
120kg 넘는 세탁기 조립하다 탈골
산재 호소하자 '인사고과' 들먹이고
수술한 직원엔 "출근한 것 맞느냐"
업무 특성상 근골격계 질환 다반사
산재신청 엄두 못내 보험치료 의존
공단서 '부담금 환수' 경고받기도
"병가만 썼는데도 하위고과 받아"
'연봉 등 불이익' 압박 분위기에도
회사 측 "산재신청 막은 적 없어"
삼성전자노조 조합원이 지난해 11월18일 오후 광주 광산구 하남산업단지 삼성전자 광주사업장 앞에서 선전전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노조는 이날 전국 사업장에서 선전전을 벌여 조합원 모집에 나섰다. 연합뉴스

삼성전자 광주사업장에서 14년 동안 세탁기 등을 조립하는 라인에서 일해온 ㄱ씨는 지난달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산업재해 요양신청 안내’라고 적힌 우편물을 받았다. ‘귀하는 제조 라인에서 잦은 어깨 사용으로 10년 이상 어깨 통증이 지속돼왔으며, 근골격계 질환인 회전근개증후군 등으로 병원에서 수차례 건강보험 치료를 받아왔다’며 ‘업무로 생긴 질병·부상·재해로 인한 것이라면 산재 신청을 해야 하는데, 이를 포기할 경우 건강보험 공단부담금 일체를 환수하게 된다’는 경고문이었다. 지난 23일 <한겨레>와 만난 ㄱ씨는 “처음에는 산재 신청이 가능한지도 잘 몰랐지만, 나중에 신청하려고 하니 회사 관리자들이 인사고과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ㄱ씨뿐 아니라 삼성전자 광주사업장에서는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지만 회사 쪽이 고의로 산재 신청을 가로막았다는 노동자들의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기업들이 산재 처리가 늘면 평판에 타격을 입거나 보험료 부담이 늘어나는 것 등을 꺼리기 때문에 공상 처리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 인사고과와 연계시키며 노동자들이 산재 신청을 할 수 없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왔다는 것이다.

근골격계 질환은 업무상 반복적인 동작을 취하면서, 목·어깨·허리·팔다리 등에 발병하는 경우가 많다. ㄱ씨는 2007년 9월 120㎏에 달하는 무거운 세탁기를 들어서 나사를 끼워 넣는 작업을 하다가 왼쪽 어깨가 빠졌다. 작업반장·파트장 등 회사 쪽 관리자와 노사협의회 위원을 찾아가서 업무를 바꿔달라 했지만 “누구는 안 아프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 뒤로도 통증은 가시지 않았고 2018년 1월에는 습관성 탈골을 치료하기 위한 수술까지 받았다. 지난해 11월 ㄱ씨는 다시 회사 쪽에 산재 신청이 가능한지 물었지만 담당 관리자는 “인사고과는 생각 안 하느냐”고 되물었다.

통상 기업들이 산재보다 공상 처리를 선호하는 이유는, 산재로 처리될 경우 기업이 부담해야 할 산재보험료가 늘어나는데다 기업 이미지에도 타격이 클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업무상 질병·사고로 인정받은 경우 근로복지공단의 산재보험급여를 통해 치료비·재활비 등이 지급되지만, 공상 처리를 하게 되면 일반 질병 등과 마찬가지로 건강보험급여 적용을 받는다. 유성규 노동건강연대 노무사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조사관들이 병원 의무기록 등을 통해 이를 적발하는 경우가 많은데, 추후 보험료 청구 등의 불이익이 노동자한테 돌아가 피해를 입는 일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산재를 공상으로 처리할 경우 치료를 위한 적정 수준의 보상과 요양기간을 보장받기도 어렵다. 특히 재발 가능성이 높은 근골격계 질환 등은 이후 증상 악화에 따른 수술 가능성이나 위자료 등을 고려할 때 공상 처리가 노동자에게 훨씬 손해일 수 있다.

ㄱ씨와 같은 공장에서 12년간 일한 ㄴ씨는 올해 2월 자재를 실은 수레에 허리를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다. 병원에서 추간판탈출증 진단을 받고 신경 성형 수술을 받은 ㄴ씨는 회사에 산재 신청을 내겠다고 했지만, 공장 환경안전과장이 “산재를 진행하면 미운털이 박히고 고과 평가에도 안 좋으니 하지 말라”고 했다. 석달간 병가를 낸 ㄴ씨의 복직을 앞두고 회사 파트장은 집 앞으로 찾아와, “그날 출근한 것은 맞느냐” “정말 부딪혀서 아픈 게 맞느냐” “사고가 아니라 질병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이후 ㄴ씨는 우울증 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15년간 일한 또 다른 동료 ㄷ씨도 2016년 9월 회사 식당에서 넘어져 골절 수술을 받았지만, 회사 쪽 관리자는 “산재 신청이 안 되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혹여 불이익을 당할까 봐 산재 신청도 안 했는데, 가장 낮은 고과를 받아서 진급이 미뤄졌다”며 “병가를 써서 하위 고과를 줄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고 털어놨다. 병가를 냈다가 하위 고과를 받았던 기억은 ㄱ씨와 ㄴ씨에게도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57조는 (사망 혹은 3일 이상 휴업이 필요한) 산재 발생 때 사업주가 그 사실을 은폐하지 말고 한달 이내에 고용노동부에 보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산재 신청을 못 하게 막는 것은 산재 은폐에 해당할 수 있다.

한국노총 산하 삼성전자노조의 이원일 광주공장지부장은 “생산직은 3단계 승진체계를 갖고 있는데, 최하 고과를 한번이라도 받으면 3년간 승진이 어렵다. 이로 인해 1천만원 가까운 연봉 격차가 생길 수 있어 관리자들의 말에 복종하는 분위기가 고착화돼 있다”며 “2013년부터 하나의 조립라인을 7∼8개 셀로 구분해 셀별 생산 대수 비교가 가능하도록 하고, 태그 타임(1대 생산에 걸리는 시간)을 매년 줄여가는 등으로 경쟁을 부추긴다”고 주장했다. 한창현 토마토노무법인 노무사는 “동일한 작업을 하는 생산직 노동자들에게 엄격한 인사고과를 매겨 서로 비교하려면 결국 병가 등으로 자리를 얼마나 비우는지가 중요하게 측정된다”며 “병가를 썼다는 이유로 고과 점수를 낮게 주는 것은 명백한 근로기준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노조가 지난 5월27일부터 6월6일까지 광주사업장 생산직 노동자 53명을 대상으로 벌인 건강관리 실태조사에서도 산재 신청이 어려운 정황이 그대로 드러났다. 응답자 49명이 업무와 관련해 근골격계 질환 진료나 치료를 받은 적이 있고 현재도 요양 중인 이들이 28명에 달했다. 하지만 산재 신청을 낸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산재 신청을 하지 못한 이유(중복 답변)에 대해선, 34명(64.2%)이 ‘인사상 불이익 우려’를, 11명(20.8%)은 ‘공상 처리를 원하는 상사 및 담당 부서의 회유와 압박’을 꼽았다. 또 32명(60.4%)은 ‘산재처리를 (어떻게 하는지) 잘 몰랐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광주사업장 인사·노무 담당자는 “회사가 산재 신청을 막을 이유가 없고 오히려 나중에 ‘법 위반 문제가 있으니 적극 신고하라’고 각종 교육이나 사내 공지를 통해 안내하고 있다”며 “병가를 냈다고 인사고과를 나쁘게 줬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김양진 선담은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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