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코리아] 당신이 '국뽕'에 취한 사이

최규민 경제부 차장 2020. 8. 1.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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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민 경제부 차장

22년 만에 최악이라는 경제 성적표를 두고 문재인 대통령은 "기적 같은 선방의 결과"라고 했다. 이 정부의 아전인수, 자화자찬, 내로남불을 한두 번 겪은 것은 아니지만, -3.3%라는 성장률과 역대 최고 실업률 앞에서도 '선방'을 얘기하는 걸 보면 혀를 내두르게 된다.

코로나로 몇 달간 경제가 마비된 미국이나 유럽보다 낫다고 정신승리하기에 앞서, 우리와 멀지 않은 대만으로 잠시 눈을 돌려보길 권한다. 한국과 대만은 경제 구조 면에서 쌍둥이처럼 닮은 나라다. 둘 다 제조업 강국이고,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이며,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다. 주요 수출 품목도 반도체·전자제품·정유화학 등으로 겹친다. 1990년대 후반 아시아를 휩쓴 외환 위기를 겪은 뒤 두 나라 재정 당국이 달러 비축과 재정 건전성에 사활을 걸었다는 점도 닮았다. 6월 말 현재 외환 보유액은 한국이 세계 9위, 대만이 6위다. 국가 채무 비율은 한국 38.1%, 대만 32.8%다.

여건은 비슷하지만, 요즘 경제 성적표는 꽤 차이가 난다. 한국은 2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동기 대비 2.9%나 줄었지만, 대만은 하락폭이 0.7%에 그쳤다. 무디스는 올해와 내년 한국의 성장률을 -0.5%, 2.8%로 전망한다. 대만은 0.2%, 3.7%다. 각 나라의 대표 기업이자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경쟁자인 삼성전자와 TSMC는 두 나라가 처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팬데믹 와중에 삼성전자도 나름대로 선방 중이지만, TSMC는 올 들어 대약진하며 시가총액 면에서 18년 만에 삼성전자를 추월했다. 1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코로나 이후를 대비하는 두 나라 정부의 자세는 더 대조적이다. 한국은 코로나를 명분 삼아 "지금은 전시 상황"이라고 물 쓰듯 돈을 쓰며 "다른 나라들은 우리보다 빚이 훨씬 더 많다"고 궤변을 늘어놓는다. 거대 여당을 앞세운 재정 폭주에 한국은 올해 GDP 대비 -5.8%라는 역대급 재정 적자가 예고돼 있다. 대만은 여야 관계가 한국만큼 안 좋지만, 재정에 관해선 "경기를 부양하더라도 국가 채무가 지나치게 증가하는 걸 막아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그 결과 일자리 보호와 위기 산업 지원에 적지 않은 추경을 편성하면서도 재정 적자는 -2.1%로 최소화했다.

경제뿐 아니라 방역에서도 우리 정부는 지난 6개월 내내 자화자찬을 일삼았다. 전 세계가 한국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며 'K방역'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었다. 한국과 대만은 코로나 발원인 중국과 맞닿아 있고, 사실상 섬이라는 점에서 방역 조건도 비슷하다. 지금까지 한국은 확진자 1만4305명에 사망자 301명, 대만은 확진자 467명에 사망자 7명이다. 지난 2월 코로나 첫 사망자가 나왔을 때 우리 대통령은 짜파구리를 먹으며 파안대소했다. 비슷한 시기 첫 사망자가 나온 날 대만 복지부장관은 눈물을 흘리며 철저한 방역을 다짐했다. 'T(대만식)방역' 같은 '국뽕'도 없었다. 이런 차이가 1만4305명 대 467명이라는 결과를 만들었을 것이다.

1980~1990년대 고도성장기 한국과 대만은 싱가포르·홍콩과 함께 '아시아의 4룡'으로 꼽혔다. 이 무렵 한국과 대만은 경제력이 엇비슷했지만, 외환 위기 이후 한국이 빠르게 재도약한 반면 대만은 정체되면서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20년이 흐르면서 한국은 한때 라이벌이었던 대만에 큰 관심을 두지 않게 됐고, 대만은 그런 한국을 질투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코로나 위기에 대응하는 두 나라 정부의 실력 차이를 보면, 삼성전자와 TSMC가 그러하듯 머지않아 두 나라의 처지가 뒤바뀔지 모른다는 우울한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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