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조선일보

[만물상] 물난리 앞 '파안대소'

이동훈 논설위원 입력 2020.08.01.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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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선 주자가 유력 정치인 상가에 문상을 갔다. 빈소 응접실에 둘러앉아 담소를 시작했다. 입담 좋은 정치인이 너스레를 떨자 일제히 웃음이 터져 나왔다. 몇 초가 지났을까. 얼굴이 굳은 대선 주자가 동행한 기자들을 살폈다. "혹시 사진 찍으셨나요? 웃는 사진 나가면 안 되는데…." 장례식장에서 파안대소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순간 머리를 스친 것이다. 다행히 웃는 사진은 없었고, 훗날 그 대선 주자는 대통령이 됐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캐머런 영국 총리, 덴마크 총리와 함박웃음을 지으며 셀카를 찍었다. 만델라 대통령 추모식장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정치인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단 카메라를 들이대면 반사적으로 웃음부터 짓는 모양이다. 오바마는 몇 달간 비아냥에 시달려야 했다.

▶세월호 수색 작업 중 순직한 소방관 영결식장에서 여당 최고위원이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참석한 소방대원들이 같이 찍자 하니 뿌리치지 못한 것이다. 당시 야당 민주당은 놓치지 않았다. "국민과 함께 슬퍼하기 싫다면 억지로 할 필요 없다. 다만 국민 아픔에 생채기 내는 행위는 하지 말라"고 했다. 청와대 대변인이 세월호 사고 브리핑을 하며 웃는 모습이 공개됐다. 브리핑을 하다 말이 엉키자 웃으며 '난리 났다'고 혼잣말하는 NG 장면을 편집해 한 방송이 "참사 브리핑을 하며 웃었다"고 내보낸 것이다. 왜곡이었다. 하지만 민주당은 "아이들이 절규하고 있을 시간 박근혜 청와대는 웃고 있었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당일 체육관에서 컵라면 먹은 장관은 사진이 공개돼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밥은 먹어야 했지만 해명은 통하지 않았다.

▶그제 대전에 지역구를 둔 민주당 의원이 동료 의원들과 파안대소하는 사진이 공개됐다. 모임 뒤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문제는 뒤에 놓여있던 TV가 대전 물난리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사진을 자신들이 유포해 놓고선 비판 여론이 일자 '악마의 편집, 악의적 보도'라고 했다. 즉시 사과했으면 여론도 달라졌을 것이다. 내로남불이 체질화된 사람들이 화부터 먼저 냈다.

▶재난 상황이라고 정치인이 심각한 표정만 짓고 있을 수는 없다. 밥도 먹어야 한다. 그러나 남의 문제는 맹비난하고 똑같은 행태를 한 자신은 억울하다는 내로남불은 없어야 한다. 만약 상대당 의원들이 이런 사진을 찍었으면 파안대소한 민주당 의원들은 어떤 논평을 냈겠나. 국민이 늘 지켜보고 있다 생각하면 이런 사고는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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