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품고 오지만 현실 냉정".. 김씨 월북 후 조명된 '탈북민의 삶'

안승진 2020. 8. 1. 10: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외로움과 열등감에 시달려.. "정착도우미 제도 내실화 등 시급"
28일 김씨의 가방이 발견된 것으로 추정되는 인천 강화군 강화읍 월곳리의 한 배수로 모습. 뉴시스
“남한에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이 냉정한 건 사실....”

탈북민 김모(24)씨가 월북했다는 소식이 지난달 26일 북한 보도로 전해진 다음날 한 탈북민 모자는 유튜브를 통해 “열심히 하면 (한국 사회는) 보상을 받을 수 있지만 부모도 없고 케어 해주는 사람도 없다”며 이같이 김씨의 월북을 내다봤다. 이들은 “개인적인 생각으로 어린 친구이다 보니 한국에 적응을 못한 것 같다. 방황하다가 순간적인 충동으로 북한에 넘어간 것 같다”고 안타까워 하며 “(김씨의 월북이 다른) 탈북민에게도 피해가 분명 온다. 탈북민이 사고만 치고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전하기도 했다.

‘개성아낙’으로 활동하는 탈북민 유튜버 김모(여)씨도 김씨의 월북 소식을 유튜브를 통해 전했다. 그는 지난달 26일 생방송을 통해 “(김씨는) 굉장히 착하고 어리바리한 친구였다”며 “20년 동안 (귀가 안 좋아) 듣지 못했는데, 한국에 와서 고쳤다고 좋아했었다”고 그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얼마 전 억울하게 성폭행 사건에 연루됐다고 털어놨다”며 (자신의 성폭행 혐의에 따라) 전자발찌 차는 것이 싫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그런(월북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탈북민 이철은씨도 유튜브를 통해 “김씨 주변 사람 이야기로는 (김씨가) 빚이 좀 있어 사석에서 친구들과 만나면 자꾸 북으로 가겠다는 소리를 했다고 한다”며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씨의 월북을 계기로 탈북민 월북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씨가 지난달 지인을 성폭행한 혐의로 불구속 상태에서 조사를 받아온 사실이 알려지며 이에 따른 처벌을 두려워해 월북을 선택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지만 김씨가 탈북한 이후 외로움에 시달리는 등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한 것이 주요 원인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1일 경찰 등에 따르면 국내에 입국한 탈북민은 국가정보원(국정원), 경찰청 등 관계기관의 조사를 받은 뒤 탈북민 정착지원 교육기관인 하나원에 입소해 3개월 정도 사회적응 교육을 받는다. 문화적 이질감을 해소하는 교육과 심리 안정, 진로지도 상담 등이 이뤄진다. 교육 후 5년 정도는 관할 경찰서 등 신변보호 담당관이 이들을 관리하며 초기 정착을 지원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번에 월북한 김씨도 2017년 탈북 후 관리대상 기간이었다.

월북한 탈북민 김모씨. 페이스북 캡처
하지만 탈북민들은 하나원을 수료하더라도 한국 생활에 어려움이 적지 않다고 토로한다. 탈북민 출신인 민하주 국민건강보험공단 연구원은 지난달 28일 ‘YTN 출발새아침’에서 “(하나원이)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었느냐고 말씀을 물으신다면 거의 안 됐던 것 같다”며 “저 같은 경우 공부에 대한 욕심이 컸고 나가자마자 바로 공부하려 했었는데 그것을 언제 지원을 하는지 교육체계, 대학 레벨, 인(in)서울 등 이런 것도 거의 가르쳐주신 적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회에 조금 적응하고 입학해야 하는데 한국 사회라고는 정말 하나원에서 말 그대로 폐쇄된 공간에서 교육받은 것이 전부였다”며 “그만큼 많이 힘들었다. 네이버가 가장 충실한 멘토였다”고 고백했다.

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도 탈북민들의 어려움 중 하나로 꼽힌다. 탈북민 유튜버 ‘이소율TV’는 지난 4월 월북한 탈북민에 대해 “북한에 가족을 데리러 갔거나 잡혀갔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며 “일반 탈북민이라면 (북한의 실상을 알고) 제 발로 넘어가는 사람은 적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2012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집권 후 월북한 탈북민은 29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6월 말 기준 공식 탈북민이 3만3670명가량인 것을 보면 그렇게 많은 숫자는 아니다. 문제는 탈북민 중 소재지가 파악되지 않은 불명자가 900명 가까이 된다는 점이다. 김씨처럼 정부가 소재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탈북민도 상당수가 있을 것이란 추측이 나오는 이유다.

김씨 같은 사례의 반복을 막기 위해 탈북민의 정착, 관리 시스템에 대한 개선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탈북민 출신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지난달 28일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탈북자 관리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며 “정착이 잘되면 대한민국 사람과 똑같이 (전국 각지에서) 살아가는데 이 정착을 관리하는 부서는 통일부로 중앙조직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통일부가 중앙에서 탈북민들을 개별 관리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안 소장은 “경찰은 (탈북민들의) 신변 보호만 관리를 하기 때문에 행정이나 적응 문제까지 관리할 수 없다”며 “탈북민들은 통일부에서 관리하지 말고 동사무소, 주민센터 등을 관리하는 행정안전부로 관리를 이관해 달라고 의견을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 연구원은 탈북민들의 외로움을 달래주기 위한 ‘정착도우미’ 등 제도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옛날에 힘들었던 북한 삶하고 비교가 되는 게 아니고 함께 사는 남한의 동년배들, 잘 나가는 모습 보면서 (탈북민들은) 열등감이나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자괴감이 든다”며 “(탈북민 지원프로그램 중) 정착도우미라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건 친구가 되어 주는 거다. 어려울 때, 힘들 때 내가 전화할 수 있는 신뢰관계를 형성하는 게 가장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조언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