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한 거리두기, 성폭력 위험..난민 인권이 셧다운됐다

2020. 8. 1.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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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현장
코로나 위기 속 독일의 난민

난민숙소 '라거'의 코로나19 상황
손소독제 없이 거리두기 불가능해
갑자기 격리통고 받고도 감수해야
난민여성의 녹음파일에 담긴 사연들

난민여성에 대한 폭력 통계도 없어
'너를 위해 아기를 만들어주겠다
그럼 너는 여기서 벗어날 수 있다'
협박당한 여성 증언에도 묵묵부답
코로나 이후 난민들은 라거에서 더욱 고립되고 있다. 독일 브란덴부르크주에 위치한 한 라거 모습. 국제여성공간 제공

▶ 코로나19 위기는 취약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더욱 가혹하다. 내부적으로는 밀집되고, 외부적으로는 고립된 환경에서 생활해야 하는 난민들은 코로나19 위기에 가장 취약한 집단 중 하나다. 유럽의 난민도 다르지 않다. 이들은 코로나19로 심화된 인종차별, 여성차별 문제로도 고통받고 있다. 독일 베를린에 살면서 국제 이주·난민 페미니스트 그룹 ‘국제여성공간’에서 활동하는 채혜원씨가 독일의 난민 상황을 전한다.

“저는 도베를루크키르히하인에 위치한 라거에서 지내고 있어요. 코로나19 이후 이곳은 혼돈 그 자체입니다. 코로나 음성 반응이 나왔지만 여전히 격리 중인 사람들, 새로 도착한 사람들, 코로나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두 함께 지내고 있어요. 방을 따로 쓰기도 하지만, 부엌과 화장실은 모두 공유합니다. 감염 우려가 커서 모두 걱정하며 지냅니다. 마스크는 받았지만 여전히 손소독제는 직원들이 사용하는 식당과 건물 출입구에만 있어요. 지난 4월, 한 시민단체에서 마스크, 소독제, 과일을 공급했고 한차례 더 물품을 실어왔지만 라거에서 그들의 방문을 거부했어요. 우리는 그저 창밖으로 그들이 허탈하게 돌아가는 뒷모습만 볼 수 있었습니다.”(난민 여성 J의 증언)

“저는 이틀 전, 아이젠휘텐슈타트에 위치한 라거에 도착했습니다. 현재 5명의 여성, 1명의 아이와 지내고 있는데 시설에 손소독제 등 위생용품이 없습니다. 우리는 계속 용품 제공을 요구했지만, 여전히 시설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화장실을 나올 때도 손을 소독할 수 없고 많은 이들이 함께 거주하는 곳이라 시설에서 지내는 것 자체가 불안합니다.”(난민 여성 M의 증언)

“저는 노이루핀의 라거에 머물고 있습니다. 매달 받는 난민지원금(약 100유로)을 받기 위해 관청을 찾으려고 했지만, 갑자기 사회복지사로부터 14일 격리 통보를 받았습니다. 저는 어떤 증상도 없기 때문에 격리하지 않을 것이고, 이런 상황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격리하지 않는다면 5월 지원금을 지급하지 않을 것이며, 나의 거주 허가 비자가 끝나면 연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어요. 저는 아기용품을 사기 위해 그 돈이 너무 필요하고, 추방당하고 싶지 않기에 이 부당한 조치를 받아들였습니다. 명백한 인종차별입니다. 마음이 고통스럽습니다.”(난민 여성 L의 증언)

숙박시설을 난민숙소로 제안도

코로나19로 지난 3월부터 독일에서 ‘라거’(Lager)로 불리는 난민 숙소에 방문이 금지된 뒤, 난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차단됐다. 현재 격리조치가 완화됐지만, 여전히 병원 방문 등을 제외하고는 외출이 제한되고 있다. 이에 필자가 일하는 국제 이주·난민 페미니스트 그룹 ‘국제여성공간’(International Women Space, IWS)은 난민 여성들의 목소리를 녹음파일로 모으기 시작했는데 위와 같은 호소가 이어졌다. 이들은 모두 독일 브란덴부르크주에 위치한 각기 다른 지역의 라거에서 지내고 있다. 휴대폰으로 음성파일을 녹음해 보내는 일조차 난민 여성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 라거에서 무선인터넷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아 거주자는 한달에 약 15유로를 내고 모바일 데이터를 사야 한다.

코로나 발생 이후 난민은 더욱 고립됐다. 난민은 처음 독일에 도착하면 보통 약 500여명이 함께 지내는 ‘특정접수센터’로 보내진다. 이후 난민신청서 등 여러 서류 작업을 한 뒤 거주 허가가 나면 라거로 이동하지만 체류 허가를 받지 못하면 강제추방 당한다. 라거는 공공기관 건물이나 컨테이너, 천막촌 등 형태인데 대부분 도시 외곽이나 숲 한가운데 있고 출입은 철저하게 제한된다. 이로 인해 라거 거주자가 병원, 학교 등에 접근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요즘엔 시내에서 라거까지 드물게나마 운행되던 버스 서비스마저 중단됐다. 이 때문에 아이를 키우는 난민 여성은 한 시간 넘게 유아차를 끌고 걸어 나가 아기용품을 사야 한다. 의사와 진료예약을 잡지 못해 아이가 예방접종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독일은 응급 상황을 제외하고 의사와 약속이 있어야 진료를 볼 수 있다.) 케냐 출신 난민 활동가 라벤다는 “코로나19로 이동제한조치가 시작된 지난 3월부터 다양한 코로나 예방 조치 정보가 제공됐지만 라거에서 지내는 난민은 정보 접근이 어려웠고 무엇보다 언어 제약이 컸다”며 “여성들이 보낸 녹음파일을 통해 수많은 라거에서 손소독제조차 없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베를린에서 25㎞ 떨어진 포츠담에 있는 라거로 거주 장소를 옮긴 라벤다는 세 명의 여성과 함께 지내는데, 침대 공간을 제외하면 2평 남짓 되는 작은 방에서 지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는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이 자주 공기를 환기하는 것인데, 올해 북부 독일은 쌀쌀한 여름 날씨가 이어지고 있어 영상 10도 아래로 기온이 떨어지는 아침저녁엔 창문을 계속 열어놓기도 쉽지 않다.

‘코로나 공중보건 연구 네트워크’가 지난 5월 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독일 내 난민수용시설 42곳에서 1769명이 코로나19 확진을 받았다. 활동가들은 실제 감염된 난민 수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예를 들어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한 특정접수센터에서는 거주 난민 600명 중 400명이 코로나19 양성 반응을 보였고, 바이에른주 지역방송(BR)은 바이에른 지역에서 1149명의 망명 신청자가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보도했다. 이 중 3명은 사망했다.

난민구호단체 ‘프로아질’(Pro-Asyl) 등은 밀집된 거주시설에서 위생 문제로 고통받고 있는 난민을 위해 여행 제한정책으로 비어 있는 호텔이나 호스텔 등을 난민 숙소로 활용할 것을 주장해왔다. 독일 질병관리본부에 해당하는 로베르트 코흐 연구소가 권장하는 위생 수칙을 지키고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재 난민이 지내는 집단수용시설이 아닌 개별 방이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활동가들은 난민이 코로나 관련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관련 정보를 여러 언어로 번역했으며,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난민 상황을 온·오프라인으로 알리기 시작했다. ‘국제여성공간’은 7월부터 이주·난민 여성이 겪고 있는 상황을 알리기 위해 라디오·팟캐스트 방송 ‘IWS 라디오’를 시작했다.

국제여성공간은 이주·난민 여성이 처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다. 채혜원 제공

난민시설 내 성폭력, 강제추방 위협

코로나19 이후 격리조치로 독일 내 가정폭력이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가 연이어 발표되고 있다. 라이프니츠경제조사연구소(RWI) 등이 지난 4월 18~65살인 약 3800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3.1%가 격리 기간 중 신체폭력이나 성폭력을 한번 이상 경험했다고 답했다. 격리 기간 동안 집에만 머물러야 했던 응답자 중 7.5%가 신체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고, 10.5%는 아동폭력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통계에서도 난민은 배제된다. 격리조치 이후 라거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이 어느 정도 증가했는지, 대책은 무엇인지조차 찾을 수 없다. 케냐 출신 난민활동가 제니퍼는 “독일 언론은 코로나 발생 이후 여성 폭력이 증가했음을 알리면서 격리 공간이 여성·아동에게 얼마나 위험한지 보도했지만 라거의 여성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보여주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라거에서 지내는 여성들이 격리조치 이후 겪는 성폭력에 관한 이야기는 지난 6월24일, ‘국제여성공간’ 사무실을 찾은 난민 여성들에게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최근 세차례에 걸쳐 한 남자가 새벽마다 제 방에 침입했습니다. 시설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에게 계속 도움을 요청했지만 ‘당신들은 가족처럼 지내야 한다’는 답변만 들었습니다. 보안요원에게도 말했지만 그 역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지난주엔 그 침입자가 제 방에 찾아와 ‘너를 위해 아기를 만들어주겠다. 그럼 너는 이 격리시설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괴롭혔습니다. 끔찍한 날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로부터 우리 여성을 보호하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난민이기 때문이겠지요.”(난민 여성 S의 증언)

“제가 지내는 시설은 다행히 방문을 잠글 수 있습니다(잠금장치가 없는 숙소가 흔함). 하지만 보안요원들은 모든 방문을 열 수 있는 카드를 가지고 있고 그들은 언제든 원할 때 여성들이 지내는 방에 방문합니다. 지난주 보안요원이 알몸으로 제 방에 몇 차례 들어왔고 저는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보안요원이 우리를 위협하는데 누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나요. 그래서 외국인청에 편지를 몇 차례 보냈으나 아무런 답변이 없는 상태입니다. 모든 방을 아무 때나 출입할 수 있는 환경은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도 인권이 있습니다.”(난민 여성 T의 증언)

현재 난민이 겪는 폭력에는 강제추방 위협도 포함된다. 코로나19로 항공기 운항이 대부분 중단된 지난 3월에도 강제추방은 이뤄졌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 벨레>(DW) 보도에 따르면, 지난 3월12일 이른 아침 난민 신청을 거부당한 39명의 아프간인과 독일 보안요원 94명이 탑승한 비행기가 독일을 출발해 아프간 수도인 카불에 도착했다. 지금도 망명 신청이 거부되어 독일을 떠나야 하는 2만4300명의 아프간인은 언제 추방될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 지내고 있다. 지난 6월15일부터는 격리조치 동안 중단됐던 더블린 조약에 의한 추방도 재개됐다. 난민이 가장 먼저 입국한 유럽 국가에서 망명 신청 절차를 밟도록 한 더블린 조약에 따라, 다른 유럽 국가를 거쳐 독일로 입국한 난민은 처음 도착한 국가로 강제이송될 위험에 처했다. 국제여성공간 활동가인 키야는 “코로나19 이후 실제 여러 라거에서 난민에게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내용이 담긴 서류에 서명하라는 요구가 이어졌다”며 “전세계가 팬데믹 충격에 빠져 있을 때 난민을 추방하려 했다는 점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다”고 말했다.

독일 곳곳에서 시민들이 '난민에게 국경과 호텔을 열라’는 문구를 쓴 펼침막을 내걸고 있다. 채혜원 제공

쫓겨난 지중해 난민들

전문가들은 수용시설 외에도 유럽 국경에서 난민이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으며, 코로나 위기 속에서 유럽의 난민 권리 보장은 철저히 실패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난민 800여명이 리비아에서 보트를 타고 유럽에 도착했다. 하지만 국경폐쇄 이후 지중해에서 수색·구조 업무가 중단됐고, 이탈리아는 난민이 배에서 내리는 것을 거부해 그들은 2주간 보트에 갇혀 있었다. 지중해 가운데 위치한 몰타에서는 난민의 구조 요청을 무시한 뒤 몰타 해군이 보트를 보내 난민 보트의 전기 케이블을 끊는 일까지 있었다.

난민 및 유럽정치 연구자인 알리 카인은 ‘국제법·정책 여성 전문가 네트워크’ 기고를 통해 “난민에게 국경폐쇄는 사실상 집단추방이며, 이는 망명자가 박해가 우려되는 국가로 강제송환되는 것을 금지하는 농르풀망 원칙에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유럽연합 통계기구인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2019년 유럽연합 회원국 내 망명 신청자는 67만6300명으로 전년 대비 11.2% 증가했다.

유럽은 지금도 매일 2만여명의 새로운 확진자가 나오는 가운데, 격리조치가 조금씩 완화되고 있다. 언뜻 보면 일상을 되찾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굳게 문을 걸어 잠근 일부 라거처럼, 난민 인권 보호는 셧다운됐다. 시민들은 집집마다 난민에게 국경을 열라(Open the Borders), 누구도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Leave No One Behind)고 쓴 펼침막을 내걸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이에 대해 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베를린/채혜원 국제여성공간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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