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수도 이전은 '신의 한수'일까 악수일까

윤호우 선임기자 2020. 8. 2.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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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7월 20일 국회에서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마친 후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7월 20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회의에서는 민주당에서 2주마다 실시하는 여론조사 결과가 보고됐다고 한다. 통상적인 여론을 살펴보는 이 조사에는 현안을 묻는 내용이 추가적으로 포함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날 여론조사에는 행정수도 이전이란 내용이 새롭게 들어가 있었다. 찬성이 반대보다 많았다고 한다. 민주당의 A관계자는 “이해찬 대표가 이 결과를 보고 행정수도 이전은 오래전 헌법재판소가 위헌결정을 했는데, 이런 내용을 앞으로 여론조사에 넣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날 최고위원 회의에 참석한 김태년 원내대표는 당시 이와 관련해 아무런 발언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통합당은 실익도 없는 싸움에 휘말려”
최고위원 회의가 끝나고 열린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김태년 원내대표는 행정수도 이전을 제안했다. 중앙일보는 이틀 뒤 기사에서 김 원내대표가 사전 여론조사로 찬성 여론을 확인한 후 연설문에 담았다고 보도했다. A관계자는 “김태년 원내대표가 그날 ‘비장의 한수’를 갖고 있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최고위원 회의에서 침묵했다가 곧바로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행정수도 이전을 꺼낸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김태년 원내대표의 행정수도 이전 제안은 민주당에 일단은 ‘신의 한수’가 됐다. 곧바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정부와 여당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던 시점이었다. 행정수도 이전은 부동산 파동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다. 김 원내대표는 교섭단체 연설에서 “행정수도 완성은 국토균형발전과 지역의 혁신성장을 위한 필수 전략”이라면서 “이렇게 해야 서울·수도권 과밀과 부동산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의 충청지역 일부 의원들이 이전 찬성에 손을 들었다. 정진석 의원이 대표적이다.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찬반 의견이 뒤섞이면서, 통합당은 이 사안에 관한 의견 표명을 자제해달라고 의원들에게 요청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민주당으로서는 이슈 바꿔치기 측면에서 성공했다”면서 “민주당이 수도권 과밀해소와 부동산 가격 안정 등의 명분을 확보한 반면, 통합당은 명분도 잃고 실익도 없는 싸움에 휘말린 것”이라고 말했다.

행정수도 이전 제안으로 부동산 가격 급등을 비판하던 여론은 주춤해졌다. 민주당 내부 여론조사뿐만 아니라 일반 여론조사에서도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찬성이 많았다. SBS가 여론조사기관인 입소스에 의뢰해 7월 24∼25일 조사한 여론조사(유무선 전화면접조사)를 보면 행정수도 이전에 찬성한 응답자는 48.6%였다. 반대는 40.2%였다. ‘모름/무응답’은 11.2%였다.(자세한 여론조사 결과는 중앙선거 여론조사 심의위의 인터넷 홈페이지 참조) 이 조사에서 충청권과 호남권에서는 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부산·경남(PK)에서도 찬성 여론이 많았다. 수도권에서는 오차범위 내이긴 하지만 반대 여론이 많았다.

연령별로 보면 30∼50대에서 찬성이 많았다. 여성보다 남성에서 찬성 의견이 많은 것도 눈에 띈다. 엄경영 소장은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할 당시와 비교해보면 찬성이 더 많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엄 소장은 “(그때와 비교하면) 수도권 과밀 문제가 심각해졌고, 수도를 이전하더라도 수도권의 경제에 악영향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행정수도 이전이 현 국면을 피해가기 위해 꺼낸 카드가 아니라 오랫동안 고려해왔던 카드였음을 부각시켰다. 민주당의 원내 B관계자는 “김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연설에서 행정수도 이전을 제안하기 위해 준비를 많이 한 것이 아니다”며 “평소의 신념이었던 것을 이 시점에서 화두로 던진 것”이라고 말했다. 충청권의 C의원은 “총선이 끝나고 난 뒤 의원들 사이에는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당장은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공감대가 널리 퍼져 있었다”고 말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7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행정수도 완성추진단 1차 회의에서 김두관 의원으로부터 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을 전달받고 있다./연합뉴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는 악재될 수도
김 원내대표의 행정수도 이전 제안이 절대적으로 여당에만 유리한 ‘신의 한수’가 아닐 수도 있다. 내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여당에 악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종인 통합당 비대위원장은 7월 27일 “민주당이 내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민주당 공약으로 내걸고 서울 시민의 의사를 확인해주기를 당부한다”고 말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지금은 민주당이 행정수도 이전 카드로 유리한 국면을 가져왔지만, 내년 4월 보궐선거에는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면서 “이런 점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의 공약화를 요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행정수도 이전을 놓고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의 유·불리 전망은 엇갈린다. 통합당의 D관계자는 “서울시 안에서도 주택 보유자와 미보유자의 생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내년 초가 돼야 여론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미보유자는 행정수도 이전에 찬성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엄경영 소장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에는 악재가 될 수 있지만 다른 이슈들이 많아서 승패를 결정짓는 핵심 요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홍형식 소장은 “김종인 통합당 비대위원장의 제안(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행정수도 이전을 공약화)을 민주당이 받아들인다면, 주택 보유자든 미보유자든 서울의 민심은 민주당에 불리하게 돌아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정치권 관계자나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행정수도 이전이 2022년 대선에서 민주당에 유리한 카드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민주당의 E관계자는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김태년 원내대표가 치고 나가고, 이해찬 대표가 당위성을 언급하면서 개헌 사항이라고 한 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김태년 원내지도부는 행정수도 이전을 위해 여야 합의를 통한 특별법 제정을 대안으로 언급했다. 이 관계자는 “이 대표가 2022년 대선까지 내다보는 장기적인 선거 전략을 갖고 있는데 반해, 김 원내대표는 당면한 현실의 전략에 치중했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행정수도 이전 제안은 결국 지금 국면에서는 민주당에 유리하나 내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불리한 이슈이고, 2022년 대선에서는 민주당에 유리한 이슈”라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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