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 3법, 맹점이 5개나 있네" 반격 나서는 집주인들

전슬기,전성필,이종선 2020. 8. 3.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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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스피드' 법시행.. 문제점 분석
2일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벽에 내걸린 매물 정보판이 텅 비어 있다. ‘임대차 3법’이 이달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가면서 전셋값 폭등 및 전세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김지훈 기자


올해 10월 반전세 계약 종료를 앞둔 한모(42)씨. 그는 최근 “나를 위한 법인데, 왜 더 힘든지 모르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지방에서 보증금 1억원, 월세 40만원에 살고 있는 한씨는 올 초 집주인의 위장전입 요구를 받았다. 정부가 실거주 요건을 강화하자 집주인이 자신의 가족을 동거인으로 올려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이를 거절하자 집주인은 곧바로 “계약 종료 후 나가 달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결국 새로운 집을 찾아 나선 한씨. 그러나 다른 집주인들도 똑같이 위장전입 제안을 했다. 전입신고를 안 하면 전월세 임대료를 낮춰준다는 것이다.

한씨가 난관에 빠지는 사이 ‘임대차 3법’ 국회 통과라는 희소식이 들렸다. 그는 희망을 품고 현재 집주인에게 계약 갱신을 요구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지금 임대료 수준으로 계약하느니 차라리 팔겠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집주인은 곧바로 부동산에 집을 내놨다. 계약 만료 한 달 전까지 새 집주인이 나타나면 한씨의 계약 갱신은 가능하다. 하지만 집을 산 사람이 실거주 입장을 밝히면 꼼짝없이 이사를 가야 한다. 문제는 아무리 둘러봐도 갈 곳이 없다는 점이다. 지난 주말 부동산중개소를 돌아본 한씨는 “시장 과열에 임대차 3법까지 겹치면서 전월세 가격이 배 이상 치솟았다”며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다”고 울분을 토했다.


세입자를 위한 법이 ‘세입자’를 공격하고 있다. 세입자 보호장치가 마련됐지만 막상 현장에서 권리를 행사하기 쉽지 않다. 특히 최근 시행에 들어간 임대차 3법(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등)은 임대인들이 공격적으로 법의 허점을 파고들고 있다. 한씨의 사례를 통해 법의 모호한 부분을 살펴봤다.

최근 부동산 거래에서는 한씨와 비슷하게 위장전입 요구가 늘고 있다. 정부의 실거주 요건 강화 정책 탓이다. 이에 어쩔 수 없이 집주인 요구로 전입신고를 하지 않은 세입자는 임대차 3법의 계약 갱신이 어려울 수 있다. 주택에 전입신고를 해놓은 집주인이 실거주를 주장하면서 갱신을 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를 임대차 3법의 ‘손해배상’으로 해결한다는 입장이다. 집주인이 실거주를 밝힌 후 제3자에게 임차를 하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미전입신고를 원하는 집주인은 갱신 거절 후 다음 임대차 계약에서도 비슷한 요구를 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적발의 어려움이다. 세입자가 직접 집주인의 위장전입, 제3자 임차 등을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집주인의 주민등록등본을 떼면 개인정보를 동의 없이 활용했기에 불법이다. 그렇다고 우편물 확인 등을 하면 주거침입 등 혐의로 송사에 휘말릴 수 있다.

때문에 일부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실제로 누가 사는지 매일 모니터링하겠다” “흥신소를 써야 한다”는 게시글까지 올라오고 있다. 정부도 분쟁이 커지자 임대차 정보 열람제도 등 보완책을 강구할 방침이다.

갱신 요구 시 주택 매각도 문제다. 새 집주인이 갱신 청구를 이어받으면 된다. 그러나 집을 산 사람이 실제 거주를 원할 수 있다. 계약 갱신을 요구한 세입자는 집을 비워줘야 하는 불확실성이 생긴다. 그런데 최근 부동산 시장은 전월세 매물이 실종되고, 가격도 폭등하고 있다. 자칫하면 세입자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될 수 있다.

집주인의 실거주 요건도 애매하다. 법은 갱신 거절 시 실거주 기준을 ‘임대인과 직계존속·직계비속’으로 명시하고 있다. 본인 기준 혈연으로 직접 이어지는 관계다. 다만 임대인의 배우자의 포함 여부는 법규에 들어가 있지 않다. 일부 임대인이 배우자만 세대 분리해 마치 실거주하는 것처럼 속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집주인이 임대차 계약 갱신 시점에 직접 거주를 희망한다면 아무런 제약 없이 거주할 수 있도록 했다”는 설명만 하고 있다.

전월세 전환도 논란거리다. 임대인들은 임대차 3법 시행 이후 월세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정부는 세입자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갱신되는 임대차는 전 임대차와 동일한 조건으로 다시 계약된 것으로 본다’라는 법 조항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동일한 조건’이라는 문구가 애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에 정확히 전월세 전환을 못 하게 하는 문구가 없기 때문에 유권해석에 대한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임차인 동의 없는 전월세 전환이 곤란하다고 했지, 불가능하다고 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얘기가 돌고 있다.

갱신 거절 사유를 두고 다툼도 일어나고 있다. 법은 ‘임차인의 고의 및 중대한 과실로 파손한 경우’ ‘2기의 차임액을 연체한 경우’ 등도 사유로 명시하고 있다. 그러자 현장에서는 집주인이 트집을 찾는다는 불만이 가득하다. 한 세입자는 “집주인이 방문 하나하나 열어보며 파손을 확인했다”며 “갱신 거절 사유를 찾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정부가 세입자를 위한 법을 내놓고 있지만 규제가 시장을 이기는 것은 쉽지 않다”며 “곳곳에서 구멍이 발생할 것이고 이를 정부가 메우기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결국 시장이 더 왜곡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손해배상 등의 규정은 세입자와 집주인의 사회적 갈등만 초래할 수 있다”며 “정부가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를 늘려 중재 기능을 강화하겠다지만 법적 정합성부터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전슬기 전성필 이종선 기자 sgj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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