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밭은 돌밭, 지붕도 폭삭.."이런 물난리 40년 만에 처음"

글·사진 이삭 기자 2020. 8. 3.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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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폭탄 휩쓸고 간 충주 산척면 송강리 '망연자실'
마을 따라 흐르던 하천 범람..집·도로·경작지 폐허로
"뭘 먹고 사나"..충북, 충주 등 4곳 특별재난지역 건의

[경향신문]

3일 오전 충북 충주시 산척면 송강리 광동마을 주민들이 폭우로 산사태 피해를 입은 마을 복구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3일 오전 충북 충주시 산척면. 주민들은 고무장화를 신고 토사로 뒤덮인 마을을 분주히 돌아다녔다. 주변 도로는 모두 흙으로 뒤덮였고, 바위와 나뭇가지 등도 도로변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도로 일부가 떠내려갔거나 왕복 2차선 도로가 편도 1차선으로 바뀐 곳도 있었다. 폭우로 떠내려온 돌을 치우느라 중장비도 동원됐다. 전날 충주에는 굵은 비가 쉼 없이 쏟아져 최고 341㎜가 내렸다.

천등산(해발 807m) 자락에 자리 잡은 송강리 광동마을은 산사태와 하천 범람으로 피해가 심각했다. 폭우는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이날 오전 박남순씨(72)는 마을회관 앞에서 마당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자신의 집을 하염없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날 그의 집에서 10여m 떨어진 하천이 폭우로 범람해 마당을 덮어 버렸다. 박씨는 “어제 오전 10시쯤 마당에 매달린 전깃줄이 흔들려 밖을 내다봤더니 집 앞에 있던 전신주가 물에 쓸려 내려갔고, 하천의 물이 마당까지 들어와 있었다”며 “부랴부랴 차를 타고 대피했다가 집에 돌아와보니 마당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울먹였다. 그의 집 마당이 있던 곳엔 산에서 떠밀려온 큼지막한 돌덩이들이 쌓여 있었다. 지붕은 내려앉았고, 집기류도 급류에 휩쓸려갔다. 광동마을 옆을 흐르는 작은 하천의 폭은 10여m에서 40~50m로 늘어났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작은 교량은 산에서 떠내려오는 급류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하천 옆 도로도 유실돼 끊겼다. 하천을 따라 조성된 이 마을 주민들의 밭과 논은 거대한 돌밭으로 변했다. 1300여㎡의 논은 급류에 쓸려온 돌과 모래로 허허벌판이 됐다. 폭우에 휩쓸려 드러난 땅콩 뿌리는 이곳이 땅콩 농사를 짓던 밭임을 짐작하게 했다. 김봉회 할머니(81)는 “1300여㎡의 논이 못 쓰게 됐다”며 “이제 뭘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산사태로 떠밀려온 아름드리나무와 토사는 마을 이곳저곳을 덮쳤다. 마을 곳곳에는 3m가 넘는 나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마을을 오가는 도로에도 흙이 발목 높이만큼 쌓였다. 주민 이모씨(56)는 “산이 무너지면서 집을 덮쳤다”며 “다행히 집은 무너지지 않았지만 무릎 높이까지 쌓인 토사와 나무를 치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김홍훈 이장(70)은 “산사태와 하천 범람으로 마을 주민들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며 “이런 난리는 40년 만에 처음”이라고 말했다.

인근 마을도 폭우로 밭 등이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다. 수확을 앞둔 농작물도 침수 피해를 봤다. 송강리 송강마을에 사는 성길환씨(73)는 “폭우로 흙이 산 아래로 떠밀려 내려가면서 주민들의 밭을 덮쳤다”며 “논과 밭이 허허벌판이 됐다”고 말했다. 영덕리도 산사태 등으로 마을이 흙범벅이 됐다. 도로에는 흙탕물이 흘렀다. 천등산 고구마를 생산하는 이 마을의 고구마밭은 폭우가 할퀴고 가면서 난장판이 됐다. 서정대씨(63)는 “수확을 앞둔 6000여㎡ 고구마밭이 엉망이 돼 앞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영덕리에서는 전날 출동 도중 급류에 휩쓸린 송모 소방사(29)를 찾기 위한 소방대원들의 수색활동도 이어졌다. 소방대원들은 실종 지점에서 10여㎞ 아래까지 흩어져 흙탕물로 가득 찬 하천 등을 수색했다.

충북도소방본부는 이날 오전 송 소방사를 비롯한 8명의 실종자 수색작업을 재개했다. 충북 지역에서는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이어진 폭우로 인해 4명이 숨지고 9명이 실종됐다. 충북도소방본부는 실종자를 찾기 위해 드론 등 수색장비 93대와 430명의 인력을 투입했다.

또 충북 북부에 집중된 폭우로 충주·제천·음성·단양의 도로·하천에 매설돼 있던 수도 송·배수관로 상당수가 유실되거나 파손됐다. 현재 해당 지역 8개 면 3400여가구에 수돗물 공급이 끊긴 상태다. 192가구 473명의 이재민도 발생했다. 이 중 174명은 이날 오전 귀가했고 나머지 299명은 주민센터 등 임시생활시설에 머물고 있다.

충북도는 이날 호우 피해가 큰 충주·제천·음성·단양 등 충북 4개 시·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는 안을 정부에 건의했다.

글·사진 이삭 기자 isak8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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