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태 칼럼] 검찰 개혁의 본질을 잊은 여권

2020. 8. 4.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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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을 옥죄는데 혈안이 돼 있을 뿐
정 검찰이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해선 관심 밖
총장 수사지휘권 박탈과 지위 격하 등은 정권 예속화 초래해
민주적 통제 필요하나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란 대의를 망각해서는 안 돼

‘윤석열 검찰’이 사면초가다. 여권의 검찰총장 때리기는 갈수록 더하고 법무부 장관의 총장 힘 빼기는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살아 있는 권력의 외풍에 맞서려면 검찰 조직이 혼연일체가 돼도 모자랄 판인데 내분은 오히려 심각한 양상으로 비화되고 있다. 총장과 서울중앙지검장의 한판 승부인 ‘검·언 유착 의혹’ 사건이 압수수색 과정에서 현직 검사장과 수사팀장의 폭행 시비로 번졌기 때문이다. 초유의 추태다. 여권이 조장한 검사 편 가르기의 크나큰 부작용이다.

준사법기관인 검찰의 권위는 추락할 대로 추락했다. 국민 신뢰도 땅에 떨어졌다. 이제는 같은 사건임에도 어느 검찰청으로 가면 유죄, 다른 검찰청으로 가면 무죄가 나올 판국이니 선택 가능하다면 피의자들은 검찰청을 골라서 가야 할 처지가 됐다. 이 정도면 사법 시스템 붕괴 직전의 국가라 하겠다. 그럼에도 여권은 진영 논리에 매몰돼 성에 차지 않는가 보다. 윤석열 검찰을 더욱 옥죄는데 혈안이 돼 있을 뿐 대한민국 검찰이 진정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해선 관심 밖이니 말이다. 이 모두 초심을 잃어버린 탓이다.

참여정부 이래 검찰 개혁은 시대적 과제로 대두됐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온 검찰을 견제하고 그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개혁의 초점은 ‘정치검찰’을 끊어내고 검찰의 중립성, 수사의 독립성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검찰 개혁은 점점 궤도를 이탈하고 있다. 윤석열 검찰의 자기권력화를 제어하는데 멈추지 않고, 권력 수사에 대한 보복으로 윤석열 낙마까지 겨냥하고 있으니 제대로 된 개혁이 추진될 리 만무하다. 온통 총장의 손발을 묶는데만 급급해 치졸한 형태의 개혁안이나 입법안이 분출되고 있다.

지난주 법무부 산하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가 총장의 수사지휘권 박탈을 핵심으로 한 권고안을 발표한 게 대표적이다. 자문기구에 불과한 개혁위가 국가 사법체계의 근저를 뒤흔드는 안을 스스럼없이 내놓는 걸 보면 주문상품을 생산한 듯하다. 총장의 지휘봉을 빼앗아 법무부 장관에게 바치자고 하니 말이다.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필요하다. 그러나 간과해선 안 될 것이 있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게 바로 수사의 독립성이다. 경실련이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를 줄곧 주장해온 것은 이 때문이다. 경실련은 이번 안에 대해 “개혁의 본질은 검찰이 정치적 시녀가 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고 검찰권 오남용 방지는 그다음의 과제”라고 따끔하게 질타했다. 정권의 우군인 참여연대마저도 검찰의 독립성 훼손이라고 지적할 정도다.

한마디로 이성을 잃은 여권이 정신을 차리라는 말이나 다름 없다. 그럼에도 여권의 각개전투는 곳곳에서 벌어진다. 총장 대우를 장관급에서 차관급으로 낮추고 총장의 검사 인사 의견 개진 조항을 삭제하는 검찰청법 개정안을 여당 의원이 발의하는 등 총장 격하 운동이 한창이다. 윤석열 낙마에 집착하는 여권의 소아적 행태라고 볼 수밖에 없다.

권력기관 개편안에서 공개된 검찰 개혁안도 과도한 힘 빼기로 집약된다. 검찰의 직접 수사 대상을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등 6대 범죄로 국한한 건 지난 1월 개정된 검찰청법에 따른 것이라 왈가왈부할 성질이 아니다. 대통령령에 6대 범죄에 속하는 유형을 나열한 것도 이해가 간다. 여기서 멈췄으면 딱이다. 문제는 법무부령에 수사 대상 공직자 직급과 범죄 액수 기준을 둬 수사 주체를 제한한다는 것인데 납득 불가다. 검찰의 경우 공직자는 4급 이상, 뇌물사건은 3000만원 이상만 수사하라고 한다. 하지만 수사가 하급자에서 시작해 상급자로 올라가기도 하고, 뇌물 액수가 커지기도 하는 법인데 내사 단계에서 어떻게 무 자르듯 딱 자를 수 있단 말인가. 수사 현실과 맞지 않는다. 상위법에 저촉돼 위법 요소도 있다. 알 만한 사람들이 비현실적인 규정을 만들려는 저의가 궁금할 뿐이다.

초심으로 돌아가 무엇을 위한 검찰 개혁인지 되돌아봐야 한다. 국민이 원하는 건 부정부패 척결과 범죄 없는 사회다. 공정과 정의를 구현하자는 거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를 위한 검찰 개혁의 요체는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다. 대의를 망각해선 안 된다. 한데 지금 여권은 검찰 길들이기를 통해 개악을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검찰의 정권 예속화를 부를 뿐이다.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린다면 국민의 엄중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수석논설위원 jt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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