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형 칼럼] 행정수도 국민투표 하자는 속셈

김세형 2020. 8. 4.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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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후보인 이낙연 의원이 지난 7월 31일 오전 세종시 밀마루 전망대를 방문해 세종시 건설현황에 대한 브리핑을 받고 이춘희 세종시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세형 칼럼] 행정수도 이전을 대선 때 국민투표에 부쳐보자는 이낙연 후보의 인터뷰가 부동산 가격,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하락보다 더 눈에 띄는 것 같다.

그런 차원에서 화두를 던진 김태년 원내대표는 성공한 셈이다.

한 국가의 수도는 그 나라 성공의 역사, 정체성, 민족적 자긍심, 영속성에의 약속 같은 것을 담고 있는 중차대한 사안이다.

서울을 도읍으로 정한 지 626년, 한국의 역사는 곧 서울의 역사이고, 지질히 못사는 나라에서 세계 10위권으로 도약과 한강의 기적은 동의어가 돼 있다. 2004년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특별법이 위헌이라는 논거로 든 이유도 "헌법 제정이 있기 전부터 전통적으로 존재해온 헌법적 관습, 즉 관습헌법으로 성립된 불문헌법"이라는 역사성을 들었다.

이러한 성공의 대명사, 서울을 버리고 수도 천도를 정략적으로 악용한다면 국민은 용서치 않을 것이고 전 세계도 한국의 역주행(逆走行)을 이상한 눈으로 볼 것이다.

왜 지금 청와대 국회를 아예 서울에서 세종시로 옮겨 천도를 하려 하는가?

수도권 집중, 인구 집중 같은 과밀 문제를 해결하려고?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인기가 떨어져 차기 정권을 재창출하는 데 위협을 느껴 충청 표를 걸고 넘어지면 재미를 볼 것 같아서?

수도(서울) 집중 문제라면 비단 서울만이 아니라 런던 파리 도쿄도 현대 국가들의 수도가 모두 겪는 공통 현상이다. 런던의 집값은 서울보다 2~3배 이상 비싸고, 도쿄도 1980년대부터 의회 이전에 관한 법률개정안까지 통과시켰다가 2003년에 흐지부지한 경험이 있다. 일본은 1970년대부터 올해 코로나19로 원격근무가 가능하니 수도 기능 분산은 말하지만 수도 자체를 옮기자는 주장은 한 번도 없었다.

19세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행정수도를 이전한 경우는 총 9건이었다.

행정수도를 옮긴 이유는 식민제국으로부터 국가 독립, 혹은 독립전쟁, 그리고 신생국들의 국가 기능 재배치 등 엄청난 변고에 의한 것이었다. 1800년 미국 워싱턴이 뉴욕에서 떨어져 나간 게 가장 먼저였고 그후 캐나다 오타와(1867년), 호주 캔버라(1911년), 남아공 케이프타운(1910년), 터키 앙카라(1923년), 브라질 브라질리아(1955년),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1960년), 말레이시아 푸트라자야(1981년) 등이 그런 사례들이다.

미국의 워싱턴은 독립전쟁 이후 바로 수도로 정해 미국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면서 전 세계 외교 행정의 수도로 군림한 대성공 케이스다.

호주와 브라질은 광대한 영토에 비해 독립 당시 항구에 치우친 수도와 내륙을 연결하는 거점도시로 행정도시를 했으나 썩 성공했다는 평가는 없다. 터키는 1차 대전 후 오스만트루크의 멸망으로 무려 17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스탄불의 정통성이 상실됐다며 국부로 불리는 케말 장군이 저항 거점 앙카라로 천도한 케이스다. 말레이시아 푸트라자야는 쿠알라룸푸르 인근이어서 한국의 서울로 치면 과천 정도로 옮긴것이니 수도 이전 축에 못 든다.

자세히 살펴보면 한국처럼 세계 10위권 국가가 수도권 과밀이란 이유로 수도를 천도한 경우는 하나도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1950년대 이후 제대로 된 나라치고 천도는 없다. 그만큼 수도 이전은 국가경쟁력과 국가 존망이 걸린 중대사이므로 천박하게 경거망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나마 브라질리아가 천도한 지도 벌써 70년 가까이 되며 한국처럼 세계 10위권 국가가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고 부동산 정책 실패, 차기 대선에서 재미 좀 보려고 코로나19 한가운데서 수도를 옮긴다는 난리를 치는 국가는 없다.

청와대. /사진=매경DB

이러한 행정수도의 세계사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면서 수도 서울을 세종시로 완전히 옮겨 청와대와 국회 대법원 등을 옮긴다고 칠 경우 필자에겐 두 가지 큰 의문이 떠오른다.

첫째, 빈번한 정상외교를 하는 세상에 외국 국가원수가 들락날락하는데 인천공항에서 세종시까지 이동하는 문제와 둘째, 독일처럼 통일이 어느 날 찾아왔을 때 2700만 북한 주민들에게 서울이 아닌 세종시 수도라는 존재를 인정할 것인가에 대해서다.

나는 이 두 가지 문제를 민주당과 국토교통부, 국토연구원 세 곳에 모두 문의해봤으나 한결같이 "그때 가서 보자"며 답을 못하고 얼버무렸다.

답이 아니라는 걸 본인들이 알기 때문이다.

청주공항은 영종도 공항의 대안이 아님을 스스로 인정했다. 외국 대사관은 하나도 안옮길 것이라는 말도 있었다.

세종시로 청와대 국회, 그리고 다른 행정기관이나 심지어 언론사 지사 등을 모조리 옮겨 현재 35만명의 도시가 100만명 이상으로 확대된 데 따른 비용은 100조원이 추가될 것이다.

그런데 10~20년 후 덜컥 통일이라도 되는 날이면 수도를 다시 서울로 갖고 오거나 개성으로 옮기자고 할 경우 그 비용과 혼선은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이번 행정수도 이슈는 청와대 지시로 정부나 국가연구기관 혹은 전문가의 검증을 통해 제시된 것인지 취재를 통해 확인해 봤으나 준비한 흔적이 전혀 없었다.

청와대 국토부 행복도시청 등은 금시초문이라 했고 여당이 정치적으로 몰리니 엉터리 여론조사 한 번 해보고 60% 대 40%로 우세한 것으로 나오자 청와대에 알려주고 반대가 없으니 불쑥 던진 게 전부였다.

그러나 7월 마지막 주 갤럽의 여론조사는 반대 49%, 찬성 42%로 반대가 더 높게 나왔다.

찬성은 광주·전라 67%, 대전·세종·충청의 57%보다 높은 것만 봐도 얼마나 정략적이고 차기 대선용인지 저의가 묻어난다. 서울대 이전을 묻는 설문에는 호남만 찬성(48%)이 높았을 뿐, 대전·세종·충청지역도 반대 53%로 찬성 35%보다 높았다. 청와대 이전도 38%대 48%로 반대가 높고 오로지 국회만 찬성47%, 반대 39%로 찬성률이 높았다. 싸움질하는 국회나 먼저 가라는 거다.

실제 행정수도 이전을 강행하려면 여야 합의로 특별법만 제정해도 기존 헌재의 위헌 판결을 제압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해찬 대표의 말대로 깨뜻하게 개헌을 통해 하는 게 옳다는 것이 다수설이다.

통합당은 특별법 제정에 찬성할 것 같지 않고, 개헌을 하려면 행정수도 이전 원포인트보다는 권력구조 개편, 통일 문제, 경제·노사 문제 등을 광범위하게 다루자고 한다면 백년하청이 될 수 있다.

만약 여당이 180석의 힘을 믿고 행정수도 이전 특별법을 제정하면 야당은 또 위헌제청을 할 것이고, 좌편향 6명, 보수 3명으로 구성된 헌법재판관들이 이번엔 2004년의 관습법 논리를 뒤엎을 것인지에 최종승부가 달렸다. 만약 그것을 강행하려다 민심이 이반하면 그때는 끝장이 날 것이다.

서울시 전경 /사진=연합뉴스

이런 위험을 피할 수 있는 건곤일척의 묘수는 국민투표에 회부하는 길이다.

헌법 72조는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는 외교 국방 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노무현정권 때 위헌제청을 했다가 승소를 이끌어낸 이석연 전 법제처장은 "문 대통령은 헌법72조에 의해 국민투표에 회부하는 것이 권한이자 의무"라고 힘주어 말한다. 문 대통령이 수도 이전 논쟁의 뒤에 숨어 침묵하는 것은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차기 대권주자 1순위인 이낙연 의원은 "청와대 국회가 옮기는 행정수도 이전은 기필코 이뤄내야 한다"면서도 "현실적으로 어려우면 대통령선거(2022년 3월 9일)에 국민투표에 부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이낙연, 이석연의 말대로 국민투표라면 개헌할 필요도 없이 깔끔하게 끝날 것 같은데 그게 최선일까. 아주 훌륭한 발상일까.

김황식 전 총리에게 의견을 물어봤다. 김 전 총리는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짧은 생각"이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영국의 캐머런 전 총리는 국운이 달린 브렉시트(Brexit)를 국민투표에 부칠 때 당연히 국민이 '반대'를 선택해 분란을 잠재울 수 있을 것으로 봤는데 덜컥 찬성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 그 후 영국 국론은 반동강이로 고착되고 오늘날도 앞길이 어디로 갈지 혼돈에 싸여 있지 않은가"라고 김황식 전 총리는 반문한다. 과연 명불허전의 통찰력이다.

이낙연은 국민투표 '찬성'을 기대할 것이고, 이석연은 '반대'를 기대할 것이다. 여론조사를 하면 갤럽 다르고. 리얼미터 다르고, 민주당 자체 조사가 다르다.

국가 명운이 걸린 수도 이전을 포퓰리즘에 휘둘리기 쉬운 대중의 변덕에 맡기는 것은 책임 있는 정치 지도자가 할 일은 아니다. 미국 역사에서 영원히 조롱받는 휴이 롱이나 조지 월러스 같은 삼류 포퓰리스트나 할 일이다. 위에서 행정수도 이전사(史)에서 일별했듯이 전 세계 214개국 가운데 국가 수도를 정권 표심용으로 함부로 옮긴 문명국은 없었다. 대부분 식민지 독립 후 국가를 새로 설계하면서 했을 뿐이다.

그 대신 영국 프랑스 일본도 수도 과밀, 그로 인한 부동산 급등 문제를 수도 기능 이전에 의해 풀어나갔다. 영국은 금융도시를 하나 새로 만들었고, 프랑스도 공공기관 이전을 대거 단행했다.

이러한 한계를 안고 수도권 집중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세종시에 국회 분원을 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아이디어로 떠오른다. 그것은 여야 합의가 있으면 금방 달성될 수 있겠다. 평택, 완주, 파주 같은 기업도시 건설이나 공공기관 추가 이전도 좋은 생각이다. 나주, 김천시는 공공기관 이전 성공 모델이다.

행정수도 이전을 직접 처리했던 당시 핵심 관계자는 "세종시를 (이명박정부가 한때 검토한 대로) 교육 과학 기업도시로 했더라면 지금보다 수도권 분산 효과는 훨씬 컸을 것"이라면서 "지금이라도 세종시를 그렇게 탈바꿈시키고 기존 행정부처는 다시 서울로 올려보내는 게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한다. 당시 삼성 롯데 고려대 등이 대거 이전하는 협약에 사인했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2010년 6월 29일 불발됐다고 그는 정확히 날짜까지 기억하고 있는데 당시 박근혜 당대표가 차기 대선에서 충청도 표 계산에서 재미보기 위해서였다. 노무현이 대선에서 이회창을 꺾을 때 재미 좀 봤다는 그 정치논리 말이다.

그리고 현 상황에서 망국적 편가르기 '재미귀신'이 또 찾아와 코로나19보다 더 악질적으로 대한민국 국운에 들러붙으려 한다.

행정수도 이전에 따른 세 번째 문제를 하나 더 지적하자면 엘리트 공무원들이 세종시라는 섬(Island)에 갇히면 점점 멍청이가 되고 그게 무서워 공무원들의 수준도 일류에서 이류로 전락할 거라는 우려다.

세종시 아파트 단지 모습. 지난달 20일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행정수도 이전을 제안한 이후 행정수도 이전 이슈가 16년 만에 재점화하면서 세종시의 아파트값이 치솟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행정수도를 세종으로 옮기면 북한은 겁쟁이들이 밑으로 도망갔다고 놀릴 것이고, 보수 진영에는 북한 좋으라고 좌파 정부가 그런 선택을 했다고 소설을 쓸 수도 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은 옥중 서신에서 "선진국들은 적과의 대치에서 물러나지 않을 결기를 보인다는 차원에서 적국과 가까운 도시에 수도의 진을 쳤다"고 썼다. 그런 차원에서 세종시는 결코 워싱턴이 될 수는 없다.

행정수도 이전이 정말 부동산 과열, 집권당 지지율 저하를 모면하기 위한 임시방편이 아니라면 문 대통령이 직접 전문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진지한 최종안을 도출하는 게 국가를 책임지는 자세다.

어물쩍 세종시 수도 이전을 국민투표로 떠넘기는 건 무책임한 캐머런 같은 행동이다. 진정 국가와 국민의 운명을 걱정하는 정치 리더라면 대중의 선동에 맡겨선 안 된다. 국민이 잘 모르면 설득해서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게 지도자의 자세다.

링컨, 루스벨트, 처칠은 남북전쟁, 대공황, 2차 대전에서 어떤 행동을 보였는가. 이낙연 등 대권주자들은 참조하기 당부 드린다.

[김세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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