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한겨레

[아침햇발] '패닉 바잉'과 부동산 거품

김회승 입력 2020.08.04. 20:06 수정 2020.08.0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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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승

논설위원

서울만 그런 게 아니다. 전세계 주요 도시가 집값과 임대료 급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중국 금융당국은 부동산 시장 과열을 차단하기 위해 이달 초부터 대출(정책) 자금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법인이나 브로커를 내세워 대출받은 돈으로 ‘아파트 사재기’가 판치며 베이징·상하이 등의 집값이 급등한 때문이다.

최근 영국과 스웨덴은 부동산 대출 한도를 크게 줄였고, 캐나다는 외국인의 주택 매매에 대한 세금 장벽을 높였다. 30년 장기침체 중인 일본의 집값도 들썩이고 있다. 도쿄 중심의 일부 아파트는 집값 거품이 최고조였던 1990년대 초반 수준을 회복했다는 보도도 나온다.

스위스 투자은행(UBS)이 세계 24개 도시의 ‘부동산 거품지수’를 조사한 결과, 도쿄·샌프란시스코 등 16곳은 ‘고평가’, 뮌헨·홍콩 등 7곳은 ‘고위험’으로 분류됐다. 만약 서울이 이 조사에 포함됐다면 당연히 고위험군에 올랐을 것이다. 특히 어느 대도시나 주거·교통 환경이 좋은 도심 주택 가격이 천정부지다. 우리로 치면 강남의 ‘똘똘한 한채’랄까. 미국에서는 이런 주택을 ‘성층권’이라고 부르는 신조어까지 생겼다고 한다.

주식시장 호황도 부동산 못지않다. 미국에서 바이오·아이티 종목들이 신고가를 연일 경신하듯, 우리 증시도 네이버·카카오에 동학개미들이 몰린다.

자산시장 호황에 기름을 부은 건 코로나 사태다. 역대급 초저금리 상황에서 막대한 국가 재정까지 풀리면서다. 미국은 코로나 이후 지금까지 2조4천억달러, 우리 돈으로 3천조원의 재정을 투입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태어나서 이렇게 큰돈에 사인해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의 규모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2014년까지 7년 동안 미국 중앙은행이 실시한 양적완화 규모가 모두 4조5천억달러다. 그 절반이 넘는 어마어마한 돈이 불과 반년 만에 풀린 것이다. 일본은 660조원, 독일은 410조원, 중국은 714조원을 풀었다.

그런데 정작 돈이 가야 할 실물 경기는 공급·수요 자체가 크게 줄어 좀처럼 살아날 기미가 없다. 줄줄이 발표되는 주요국의 2분기 성장률을 보면 전망은 더 비관적이다. 미국은 32.9%(연율), 독일은 10.1%, 일본은 20.1%(전망치) 역성장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아마도 코로나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는 시점이 되어야 비로소 실물도 회복세를 보이지 않을까 싶다.

금융위기 때도 세계가 막대한 유동성 파티의 ‘후과’를 걱정했다. 경기 회복으로 유동성 회수기에 접어들면 개인과 기업, 국가 모두 ‘부채의 역습’에 고통스러울 것이란 우려다. 그런데 정작 별일이 없었다. 금리도 물가도 오르지 않았다. 긴축도 없었다.

지금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통상 금리가 오르면 집값은 내린다. 하지만 코로나 상황에서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금리 정책은 손발이 묶인 상태다. 금리는 당분간 오르지 않을 것이고, 올려도 별문제 없을 것이란 인식이 시장에 팽배하다. 낙관적 학습효과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값이 올해 들어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불안 심리에 따른 ‘패닉 바잉’의 결과다. 부동산 시장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됐다. 진정되려면 두가지가 필요하다. 지금 사면 손해다, 그리고 언제든 살 수 있다. 하지만 시장은 여전히 ‘지금 사도 늦었다’는 심리가 더 우세하다. 아니, 나중에 손해를 보더라도 지금 안 사면 후회할 것 같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특히 부동산 시장은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때 잠시 급락했다 오래지 않아 브이(V)자 반등을 경험한 바 있다. 집값 조정기가 매수 기회라고 판단하는 광범위한 가수요가 시장에 포진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어제 추가적인 주택 공급 대책을 내놨고, 강화된 부동산 세법도 국회를 통과했다. 두달여 이어진 숨가쁜 ‘부동산 전쟁’에서 정부가 내놓을 대책은 거의 내놓은 셈이다. 남은 건 시장의 반응이다.

실물과 자산시장의 괴리에는 늘 거품이 똬리를 틀게 마련이다. 기업들이 문 닫을 걱정을 하고 실업률이 치솟는데, 주식과 부동산에 돈이 몰리는 건 지속가능한 경제 흐름이 아니다. 엎질러진 물은 열심히 닦아내면 된다. 하지만 계속 흘러넘치면 닦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으면, 결국 거품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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