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 대피소 된 초등교, 코로나 경보..칠판엔 "두팔 거리 유지"

신진호 2020. 8. 5.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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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신리초, 손소독제·체온계·마스크 비치
매트리스마다 2~3m 간격, 식사는 도시락
제천시 화산복지센터 매일 두차례 열 체크
주민접촉 차단 위해 개인별 텐트 지원키로

4일 오후 4시 충남 아산시 신리초등학교 체육관 2층 입구. 손 소독과 발열 체크를 한 뒤 체육관 안으로 들어가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출입이 통제됐다. 체육관으로 들어가자 왼쪽에 설치된 대형 칠판에 ‘사람 두 팔 간격 건강 거리 유지’라는 글이 크게 쓰여 있었다.

지난 3일 내린 집중호우로 하천이 범람하면서 주민들이 대피한 충남 아산시 신리초등학교 체육관. 입구에 손 소독과 발열체크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었다. 신진호 기자


지난 3일 충남 아산지역에 폭우가 내리면서 온양천이 범람하자 신동·모종동 주민들이 급히 신리초로 대피했다. 신리초는 홍수와 지진 등 각종 재난사고 때 임시 주거시설로 지정된 곳이다. 3일 오후 5시까지 60여 명 수준이던 이재민은 오후 7시가 지나서는 100여 명을 넘어섰다.

아산시는 주민들이 한꺼번에 몰리자 수해와 더불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할 것을 우려했다. 가장 먼저 주민들에게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체육관 출입을 제한하고 체육관에 머무는 시간에도 밥을 먹거나 물을 마실 때를 제외하고 마스크를 벗지 못하게 했다.

이재민들은 집이나 농경지로 오갈 때도 출입 횟수에 관계없이 매번 발열 체크를 했다. 외부에서 다른 사람과 접촉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4일 오후 4시 30분쯤 체육관 안에는 주민 5명과 아산시청 공무원·자원봉사자 10여 명이 머물고 있었다. 주민들은 아산시가 제공한 매트리스 위에서 쉬거나 대화를 나눴다. 매트리스 1개마다 1명씩 배정됐다. 매트리스 간격은 2~3m가량으로 1개의 매트리스에 2명 이상이 앉지 못하도록 했다. 주민 간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지난 3일 내린 집중호우로 하천이 범람하면서 주민들이 대피한 충남 아산시 신리초등학교 체육관. 입구에 손 소독과 체온계가 비치돼 있다. 신진호 기자


다른 대피소와 달리 신리초 체육관에는 소형 천막(텐트)이 지급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충남도와 아산시 등 방역 당국이 바짝 긴장했다. 이곳에 머무르는 주민들은 대부분 70~80대 고령자로 코로나19에 노출될 경우 감염 위험이 높아서다.

아산시는 주민들이 식사를 할 때 밀접 접촉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 모든 식사를 도시락으로 대체했다. 한 곳에 도시락을 쌓아 놓고 주민들이 줄을 서서 받지 않고 공무원들이 일일이 매트리스로 이동하며 도시락을 나눠줬다. 물도 각각 생수병을 전달하고 컵 사용도 자제할 것을 당부했다.

아산시 관계자는 “이재민 대피시설에서 코로나19 확산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방역과 함께 철저한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며 “마을회관과 경로당 등 소규모 인원이 모여 있는 곳도 담당 공무원이 수시로 확인한다”고 말했다.

지난 3일 새벽부터 4일 오후까지 내린 비로 충남에서는 620여 명(364가구)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들 대부분은 귀가했고 일부가 학교와 마을회관·경로당·숙박시설 등에 남아 있다.

4일 오전 오세현 아산시장(왼쪽)이 하천 범람으로 이재민이 대피한 충남 아산시 신리초등학교 체육관을 방문, 주민을 위로하고 있다. [사진 아산시]


4일 오후 중앙일보 취재팀이 찾은 충북 제천시 화산동행정복지센터 2·3층의 이재민 임시 대피시설도 상황은 비슷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행정복지센터 직원이 마스크 착용 여부와 체온·인적사항을 확인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7명의 주민이 바닥에 깔린 매트에 앉아 피해복구 상황에 관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모두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였다.

한 주민은 “아직 제천에선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주민들 대부분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생활하고 있다”고 전했다.

행정복지센터 2·3층에 마련된 임시 생활시설에선 37명(21가구)의 주민이 머물고 있다. 주민들은 지난 2일 오전 산곡저수지 경사면 흙이 무너지면서 급히 대피했다. 주민들은 낮에 비가 그치면 농경지나 주택 복구를 위해 외출했다가 저녁 식사시간에 맞춰 돌아왔다.

행정복지센터는 코로나19를 예방하기 위해 출입 때는 물론 매일 오전 7시, 오후 7시 두 차례 더 발열 체크를 하고 있다. 바닥 매트도 사회적 거리 두기 차원에서 2m 간격으로 깔았다. 가림막이 없어 이재민들이 불편을 겪자 제천시청에 인원수만큼 텐트를 신청했다.

지난 2일 오전 충북 제천시 산곡동 산곡저수지 경사면 둑이 무너지면서 급하게 대피한 이재민들이 생활하는 화산동행정복지센터 3층 대회의실 모습. 박진호 기자


남편 건강 문제로 40년 만에 고향에 온 오모(56·여)씨는 “지난 2일 오전 8시쯤 저수지에서 쓸려 내려온 토사가 집과 차를 덮쳐 어렵게 몸만 빠져나왔다”며 “2년 전 새로 지은 집인데 또 둑이 무너질까봐 복구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화산동행정복지센터 관계자는 “무너진 저수지 둑은 일부 복구가 됐지만, 추가 붕괴 위험이 있어 주민들에게 임시대피시설에서 생활해달라고 당부하고 있다”며 “장마가 끝난 뒤엔 저수지 물을 다 빼고 새로 준설 작업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산·제천=신진호·박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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