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상처만 남긴 한동훈 축출 작전

이가영 2020. 8. 6.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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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영 사회1팀장

‘스페인 투우사는 단 한 번에 황소의 급소를 찌르지 못하면 두 가지 부상을 입는다. 흥분한 소에 받히는 것이 첫 번째. 더 치명적인 건 두 번째다. 관중으로부터 야유를 받으면 그날로 은퇴를 해야 한다.’ (서광원, 『전략의 급소』)

한동훈 검사장(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을 잡고 싶었다면 급소를 제대로 찔렀어야 했다. 치밀한 준비로 부인할 수 없는 팩트를 찾아낸 뒤 그를 옭아맸어야 한다. 치사하기 짝이 없지만, 박근혜 정부 시절 채동욱 검찰총장에게 혼외자 문제를 들이댔던 것처럼 말이다.

5일 서울중앙지검은 채널A 전·현 기자를 강요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3월 말 MBC 보도 이후 4개월여 만이다. 그간 ‘기자와 공모한’ 당사자로 뉴스를 달궜던 한동훈의 이름은 공소장에서 빠졌다. 압수수색 육탄전 등 진기명기 여러 장면을 제공했던 ‘검언유착’은 희대의 촌극으로 막을 내리고 있다.

노트북을 열며 8/6

돌이켜 보면 ‘추미애 법무장관-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정현 중앙지검 1차장-정진웅 중앙지검 형사1부장’으로 이어지는 이 사건의 ‘지휘라인’은 한동훈을 잡기에 역부족이었다. 한동훈은 자타공인 검찰 최고 엘리트다. 임관 성적은 최상위였고, 대검 중수부-청와대-법무부를 거쳤다. 전직 대통령 2명을 구속시킨 ‘적폐 수사’,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 등을 성공하며 윤석열 검찰총장과 함께 이 정권의 기린아가 되는 듯했다. 그러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로 상황은 급반전했다.

수사팀은 ‘권력이 반대하는 수사에 앞장선’ 한동훈을 잡기 위해 ‘검언유착’ 프레임을 짰다. 그럴듯해 보였지만 그들은 간과했다. 프레임과 여론 조성에는 한동훈이 한 수 위라는 걸. 그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구속하며 ‘사법농단’을 앞세웠다. 그가 ‘적폐’와 ‘사법농단’에 칼을 휘두르자 여론은 지지했다. 하지만 현 수사팀은 프레임을 지지할 팩트도 못 찾은 데다 논리적으로도 한동훈에 밀렸다. 기자 하나 구속하면 쉬울 것 같았겠지만 한동훈은 ‘피해자’로 인식됐고, 팬클럽까지 생겼다.

스페인의 투우사는 다치거나 야유를 받으면 은퇴를 택한다. 수사팀은 몸져누운 정진웅 부장을 비롯해 여러 상처를 입었다. 입증하지 못한 ‘검언유착’은 조롱거리가 됐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국회의원들 앞에서 수차례 ‘검언유착’을 단정했던 추미애 장관부터가 자유롭지 못하다.

이번 사건은 검찰 내 기존 엘리트와 신진 세력, 권력에 아랑곳하지 않는 검찰 칼잡이들과 정권 사이의 갈등을 여실히 드러냈다. 잠복한 이 문제는 정권의 남은 2년을 위협할 것이다.

이가영 사회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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