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힉스 입자'의 뮤온 직접 붕괴 실험으로 첫 확인..한국CMS팀 큰 기여

윤신영 기자 2020. 8. 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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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MS에서 양성자 충돌에 따라 양성자 속 글루온이 충돌해 힉스 입자를 형성한 뒤 이들이 두 개의 뮤온(빨간 궤적)으로 붕괴한 기록이다. 드물게 발생해 다른 뮤온 쌍 붕괴에 묻히기 쉬운 이 과정을 3시그마의 통계적 유의성을 갖는 수준으로 측정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한국CMS 연구팀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CERN 제공

국내 연구자들이 데이터 분석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국제 실험물리학자팀이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입자 가운데 하나인 ‘힉스 입자’의 새로운 붕괴 과정을 실험으로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붕괴는 불안정한 입자가 다른 여러 입자들로 자발적으로 변하는 입자물리학 과정이다. 이번에 확인한 붕괴 과정은 힉스 입자가 붕괴해 형성한 첫 번째 입자를 직접 확인한 최초의 증거이자, 기본입자 가운데 ‘2세대’로 분류되는 입자가 힉스 입자와 상호작용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첫 번째 실험 결과라는 의미가 있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국제 실험물리학팀인 아틀라스(ATLAS)와 콤팩트뮤온솔레노이드(CMS)팀이 CERN의 대형강입자충돌기(LHC)를 이용해 수행한 입자충돌실험 데이터를 해석한 결과, 힉스 입자가 또다른 기본입자인 ‘뮤온’ 두 개로 직접 붕괴하는 현상을 확인했다고 3일 밝혔다. 이번 실험은 물리학에서 부인할 수 없는 결과로 받아들이는 통계적 단계인 ‘관측’의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증거’라고 부를 수 있는 수준에는 도달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연구 결과는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6일까지 체코 프라하에서 개최되고 있는 제40회 국제고에너지물리학콘퍼런스(ICHEP)에서 발표됐다. 

힉스 입자는 다른 기본입자가 질량을 갖게 되는 물리학적 과정인 ‘힉스 메커니즘’과 관련된 기본입자다. 힉스 메커니즘을 통해 우주라는 진공 상태의 공간은 ‘무’가 아닌 다른 상태로 변화한다. 이렇게 힉스 메커니즘에 의해 공간적 분포를 갖도록 형성된 물리량을 힉스장이라고 한다. 기본입자들은 힉스장과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질량을 갖는다. 질량의 크기는 두 입자의 상호작용 크기로 결정된다. 상호작용이 더 많은 입자가 질량이 크다.

LHC에서는 힉스 입자를 관측하기 위해 양성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한 뒤 서로 충돌시켜 힉스 입자를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힉스 입자는 빠르게 다른 입자로 붕괴하는데, LHC에서는 이렇게 붕괴해 형성된 입자들을 관측한 뒤 붕괴 과정을 역으로 추정해 힉스 입자의 질량을 추정했다. 2012년 아틀라스와 CMS 팀이 각각 힉스 입자가 붕괴해 형성된 광자 쌍을 관측해 힉스 입자의 존재와 BEH 메커니즘을 증명했고, 이론을 제안한 연구자들은 이듬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힉스 입자가 다른 입자로 붕괴하는 과정은 여러 가지가 있다. 2012년 힉스 입자를 관측할 때 사용한 한 쌍의 광자를 관측한 붕괴 과정은 여러 단계에 걸친 ‘다단계’ 붕괴 과정이었다. 한국CMS의 대표를 2016년부터 맡고 있는 양운기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힉스 입자가 바로 광자로 붕괴할 수는 없다”며 “측정할 수 없는 짧은 시간에 다른 입자와 상호작용해 이들 입자로 붕괴하고, 그 뒤 이들이 다시 광자로 붕괴한 것을 관측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톱쿼크와 반(反)톱쿼크 등 페르미온(페르미입자)와 반페르미온은 측정할 수 없는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존재하다 서로 충돌해 에너지를 남기고 사라지는 쌍소멸을 거친다. 페르미온은 입자의 양자역학적 성질 중 '스핀'이 분수를 나타내는 입자 유형이고 반페르미온은 그 반물질이다. 양 교수는 “이 짧은 시간에 힉스 입자가 이들 입자와 상호작용해 붕괴한 뒤 사라지며 광자를 발생시킨다”고 말했다. 이 과정은 비록 힉스 입자의 붕괴 산물을 직접 관측하는 과정이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실험으로 측정하기 유리해 2012년에 관측에 활용됐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2012년 힉스 입자 관측 이후 그 특성을 밝히는 과정에서 다양한 붕괴 현상을 관측했다. 사진은 아틀라스 팀이 2018년 발견한 힉스의 바닥쿼크 붕괴 예. 푸른색 원으로 표시된 부분이 바닥쿼크로 붕괴한 부분이다. 전체 과정은 '양성자 충돌' -> '힉스 및 W보존 형성' -> 힉스는 바닥쿼크로, W보존은 뮤온과 뉴트리노로 붕괴'다. - 사진 제공 CERN

2012년 관측 이후, 실험물리학자들은 다른 붕괴 경로 관측에도 도전했다. 특히 다단계를 거치지 않은, 한 번의 붕괴로 형성된 산물을 측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힉스 입자가 다른 입자로 붕괴되는 비율은 두 입자 사이의 상호작용의 크기와 관련이 있다. 질량이 커서 상호작용이 큰 입자는 붕괴 비율도 높아 관측이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다. 이 때문에 쿼크 등에 대한 관측이 먼저 시도됐다.

박인규 서울시립대 물리학과 교수는 페이스북에서 “하지만 쿼크로 붕괴할 경우 검출할 수 없는 많은 입자가 생겨나 이를 관측해 힉스 입자의 질량을 구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며 “결국 신호가 깔끔한 렙톤(경입자)으로 붕괴하는 과정을 관측해야 하는데, 렙톤 가운데 전자는 너무 가벼워 힉스 입자와 상호작용이 약하고 타우는 무겁지만 수명이 짧아 바로 붕괴하는 단점이 있다”고 말했다. 

입자물리학의 분류법에서, 렙톤 중 전자는 1세대, 타우는 3세대다. 렙톤 중 유일하게 관측 가능성이 있는 붕괴 경로는 2세대 입자인 뮤온으로 붕괴하는 경우뿐이다. 하지만 뮤온은 가벼워서 붕괴 비율이 낮다. CERN에 따르면 힉스가 뮤온 한 쌍으로 붕괴하는 확률은 5000분의 1이다. 신호가 적으면 다른 경로로 만들어진 ‘잡음’ 뮤온 쌍이 많아 검출이 어렵다. 

CMS의 뮤온 검출기 모습이다. CERN 제공

이렇게 어려운 뮤온 쌍 붕괴 과정을 측정하게 된 데에는 한국CMS 연구팀이 큰 활약을 했다. 어려워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이 붕괴 경로를 한국CMS가 2012년 초부터 연구했다. 양 교수는 “한국CMS가 개발한 새로운 도구를 활용한 덕분에 당초 예상되던 2030년보다 10년 빨리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암흑물질이 존재할 경우 뮤온과 마찬가지로 힉스 입자와 상호작용이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번에 뮤온으로의 붕괴를 성공적으로 측정할 수 있음을 보인 덕분에 암흑물질 연구 가능성도 한층 높아졌다”로 말했다. 또 표준모형의 정교함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결과라고도 평했다.

이번 결과의 통계적 유의성은 '3시그마'가 조금 넘는 수준이다. CERN에 따르면, 3시그마의 통계적 유의성을 지닌 CMS의 실험 결과가 데이터 오류일 가능성은 700분의 1 수준이다. 2시그마 수준으로 측정된 아틀라스팀의 결과가 오류일 가능성은 40분의 1수준이다. 둘을 합치면 3시그마가 조금 넘는다는 설명이다. 양 교수는 “물리학에서 부인할 수 없는 발견인 ‘관측’엔 미치지 못하지만 ‘증거’로 표현될 수 있는 결과”라며 “특히 모르던 물리 현상이 아니라 힉스 입자를 이미 발견해 질량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얻은 결과로 사실상 부인할 수 없는 확고한 결론”이라고 말했다.

[윤신영 기자 ashill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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