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차림과 전문성이 무슨 상관?"..미국 의사들이 '비키니 사진' 올리는 까닭
[경향신문]
최근 미국 여성 의사와 의과대학 학생들은 소셜미디어에서 ‘메드비키니’(#medbikini) 해시태그 운동을 벌였다. 소셜미디어에 비키니(수영복) 차림의 게시물을 연달아 올린 것이다. 이는 미국 혈관외과 학회가 발행하는 학술지(Journal of Vascular Surgery)의 ‘8월호’에 실린 한 논문에 항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논문은 혈관외과 의사들이 소셜미디어에 비전문적인 콘텐츠를 올리는 것이 환자들이 의사나 병원을 선택할 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정리했다. 2016~2018년 레지던트 의사 235명을 조사한 결과, 61명이 전문적이지 않거나 전문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는 콘텐츠를 소셜미디어에 올렸다고 논문은 밝혔다. ‘비전문적 콘텐츠’ 항목에는 음주, 소비, 정치적 발언, 욕설 등을 비롯해 ‘부적절하거나 불쾌한 복장’도 포함했다. 비키니를 입은 여성 의사의 사진이 대표적인 예로 꼽혔다.
해당 논문은 지난해 12월 온라인을 통해 발표됐으나, 이번 8월호 학술지에 실리면서 널리 알려졌다. 의사들은 수영복 차림의 콘텐츠를 소셜미디어에 올렸다는 것이 비전문적으로 보인다는 논문의 주장에 대해 “성차별적”이라고 반발했다.
‘메드비키니’ 운동이 커지자 학술지 에디터들은 지난달 25일 트위터를 통해 “의식적·무의식적 편견이 반영돼 연구 설계에 오류가 있었다”고 사과하면서 해당 논문을 철회하기로 했다. 에디터들은 사과문 끝부분에 “마지막으로 이 논문을 접하고 슬픔, 분노, 실망을 전달해준 모든 분들에게 사과드린다. 모든 건설적인 비판을 받아들이며 우리의 (논문) 검토 절차를 개선하고 학술지 편집진의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고 밝혔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지난 2일(현지시간) “여성 의사들은 ‘전문가의 정의를 누가 결정하는가’란 질문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학술지 편집진은 사과하고 논문도 철회했지만, 최근 #메드비키니 해시태그 운동은 의료계에 만연한 성차별적인 관행을 들여다보게 했다는 것이다. 레지던트 의사인 크라이슬 엔우라(26)는 “(의사 일을 하면서) 내 헤어스타일을 어떻게 해야 하냐”며 “사람들은 흰 가운을 입은 백인 남성만 전형적인 의사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테네시주 내슈빌에 있는 메해리 의과대학 4학년생인 카르멘 시몬스(27)는 이 논문을 접하고 자신이 언젠가 트위터에 올렸던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바닷가에서 친구들과 수영복을 입고 찍은 사진이었다. 시몬스는 이 논문을 보고 불쾌감을 느꼈고 비전문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걱정도 들었지만, 수영복 사진을 다시 트위터에 올렸다. 그는 “만약 내가 #메드비키니 해시태그 운동에 참여했다고 의사로 고용되지 않는다면, 어차피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의과대학협회의 재니스 오를로우스키 박사는 “수영장에 간 수백명의 남성 의사들이 사진을 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진은 논문을 위해 선택되지 않았다. 여기엔 본질적인 젠더 문제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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