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발] 검찰 중립성과 노무현의 후회 / 박용현

박용현 입력 2020. 8. 6. 16:56 수정 2020. 8. 7.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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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에 탑승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의 정치적 독립과 정치적 중립은 다른 문제였다. 검찰 자체가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으면 정치적 독립을 보장해주어도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는다.”

자서전 <운명이다>에 나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이다. 딜레마다. 민주공화국의 헌법 원리에 따라 선출되지 않은 권력은 선출된 권력이 통제해야 한다. 그러나 검찰은 준사법적 기관이라는 이유로 독립성을 보장해줘야 한다. 그런데 독립성을 보장한다고 중립성도 저절로 따라오는 건 아니다. 오히려 독립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편향되게 검찰권을 행사할 자유의 공간이 열리는 셈이다. 여기에서 검찰이 응집된 조직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움직이면 통제받지 않는 권력이 되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뒤로는 한동안 이런 딜레마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검찰이 보수정권과 결탁해 독립성과 중립성을 스스로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 들어와 다시 검찰개혁이 추진되면서 데자뷔가 펼쳐지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3일 신임 검사 신고식에서 한 ‘독재·전체주의’ 발언은 분명히 정치적 중립성의 원칙을 깬 행위다. 비록 주어를 명시하지 않은 교묘한 문장으로 빠져나갈 틈을 만들기는 했지만, 정치권이 일제히 정부·여당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하며 떠들썩한데도 윤 총장이 며칠째 침묵하는 걸 보면 의도를 지닌 발언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야당이 최근 정부·여당에 대한 정치공세용으로 사용하는 단어들이 어색한 문맥 속에 도드라지게 박혀 있는 것을 우연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 단어들에 현실정합성이 있다고 봤다면 이 또한 정치적 편향을 드러낸 것에 다름 아니다.

설령 정치적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평가가 달라지진 않는다. 검찰에 관한 유럽연합의 원칙을 정한 로마헌장을 보면 “검사는 독립적이고 중립적어야 하며 그렇게 ‘보이기 위해서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중립성과 배치되는 정치적 행위를 삼가야 한다”(6조)는 원칙이 제시돼 있다. 사법적 정의는 실현돼야 할 뿐 아니라 외관상 실현되고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게 중요하다는 오래된 법언대로다. 윤 총장의 행위는 이런 원칙을 벗어났다. 윤 총장이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조사 대상에 계속 오르는 것도 외관상의 중립성을 해친다. 스스로 원한 일은 아니라고 해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누가 검찰의 중립성을 믿을 수 있을까. 그 후과는 검찰에도, 사회 전체에도 치명적이다. 윤 총장은 지난 2월 전국 지검장 회의에서 이런 말을 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생명과도 같다. 검사가 정치적으로 편향된 것은 부패한 것과 같다.” 이 말에 윤 총장 스스로 답해야 할 때다.

검찰의 중립성을 어떻게 담보할지는 오래된 숙제다. 1997년 국회는 ‘검찰총장은 퇴임 후 2년 동안 공직에 임명되거나 정당의 당원이 될 수 없다’는 검찰청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 몇해 전 김도언 검찰총장이 퇴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여당 후보로 총선에 출마해 당선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이 조항은 당시 김기수 검찰총장의 헌법소원으로 위헌 결정을 받았다. 헌법재판소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검찰총장을 비롯한 모든 검사가 이에 대한 확고한 소신 아래 구체적 사건의 처리에 있어 공정성을 잃지 않음으로써 확보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며 제도적 장치의 의미를 소홀히 다뤘다. 하지만 검찰의 중립성을 한 인간의 선의에 맡긴다는 게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는 이후의 검찰사가 증명해준다.

윤 총장은 신임 검사 신고식에서 ‘법의 지배’를 강조했다. 법의 지배의 반대는 사람에 의한 지배다. 검찰이야말로 총장 개인의 뜻에 따라 여당 편이 되기도 하고 야당 편이 되기도 한다. 법의 지배로 중립성을 담보하려면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집중된 검찰권과 총장의 권한 분산, 민주적 통제 강화 등으로 견제와 균형을 제도화해야 한다. 이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뒤늦게 깨달았던 딜레마의 해법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를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스러웠다. 이러한 제도 개혁을 하지 않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려 한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퇴임한 후 나와 동지들이 검찰에 당한 모욕과 박해는 그런 미련한 짓을 한 대가라고 생각한다.”(<운명이다> 중에서)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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