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6개월 마다 잘려나간 손가락..학교 급식 노동자들의 절규

임연희 2020. 8. 6.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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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제주]
[앵커]

2년 전부터 제주지역 학교 급식 노동자들이 음식물쓰레기 감량기에 반복적으로 손가락이 절단되거나 골절되는 사고를 당했다는 뉴스, 앞서 전해드렸는데요.

반복된 산업재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임연희 기자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알아봤습니다.

[리포트]

[1번째 사고 피해 급식 노동자/2018년 10월 사고 : "어디 손 내밀고 가질 못하겠어요. 이렇게 날 궂은 날엔 막 손이 시려요. 막 아프고."]

["아예 고장 나버렸으면 좋겠어요. 기계 자체가. 계속 쓰고 있으니까. 트라우마가 자꾸 생각나니까. 기계 자체를 보기가 싫어요."]

["(감량기) 청소하다가 테두리를 닦는데, 순식간에 돌아가서 그게 그렇게 됐거든요. 정지 버튼을 눌렀는데 기계 자체가 자동으로 돼가지고 한순간에 그냥. 여기까지 절단하고 그냥 봉합하는 거로 해서."]

[4번째 사고 피해 급식 노동자/지난 5월 사고 : "(응급실에서) 고무장갑을 해체하니까, 거의 (손가락) 한두 개는 살이 약간 붙어있었고 두 개는 절단됐다고. 거의 살도 거의 조금 붙어있는 상태였어요."]

["처음 1주는 진짜 너무 힘들어서. 눈 감으면 몸이 너무 떨려서 잠을 못 잘 정도로."]

["검지 한 손가락만이라도 봉합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8시간이나 오랜 (첫 번째) 수술을 했습니다. (수술을) 총 4번 했어요."]

[4번째 사고 피해 급식 노동자 남편 : "우리 가정에까지 불행이 올 줄 전 몰랐죠."]

["제일 중요한 건 정신적 트라우마죠. 빨리 벗어나서 옛날처럼 평상시 생활을 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음식물쓰레기 감량기 사고 이후,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피해 학교급식 노동자들의 목소리였습니다.

문제는, 똑같은 학교 급식실 산업재해가 2년 동안 6개월 간격으로 네 차례나 반복됐다는 건데요.

수차례 반복된 산업재해, 막을 순 없었던 걸까요?

교육청이 뒤늦게 내놓은 대책이 사고 재발을 막기에 충분한지 들여다봤습니다.

이석문 제주도교육감은 잇따른 학교 급식실 노동자 사고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습니다.

네 번째 사고 뒤 40여 일만이었습니다.

이후 교육청이 추진한 대책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우선 사고가 난 해당 음식물쓰레기 감량기를 쓰는 46개 학교 급식실 노동자에게 특별안전교육을 진행했습니다.

세 차례 사고가 난 해당 음식물쓰레기 감량기종의 배출구 덮개를 고정식으로 바꾸는 등의 시스템 개선도 현재 이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일한 산업재해를 막을 근본 대책에선 비켜나 있어 보입니다.

손가락이 절단될 정도로 사고가 난 기계인데도, 안전 가이드라인을 정확히 전달받지 못하는 사례도 있기 때문입니다.

[1번째 사고 피해 급식 노동자/2018년 10월 사고 : "(감량기) 업체에서 잠깐 와서 설명을 잠깐 했어요. 섬세하게끔 그렇게 (작동법) 설명은 안 했어요. 넣을 때 버튼 누르고 해서 넣고 그렇게 간단히 하는 것만 얘기했지."]

감량기 교육을 담당하는 학교 현장은 더 우려스럽습니다.

현재 도내 170여 개 학교에서 구입한 음식물 쓰레기 감량기는 10개 기종으로, 교육청에선 감량기별 작동법 교육을 일선 학교에 맡기고 있습니다.

급식 노동자가 학교를 옮기면 새 감량기 작동법을 배워야 하는데, 일부 현장에선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감량기 작동 매뉴얼도 없는 현장도 있습니다.

[4번째 사고 피해 급식 노동자/지난 5월 사고 : "전보된 직원들한테는 바로바로 교육을 해줬으면 이런 사고가 나지 않았을 텐데."]

마지막 사고 발생 뒤 석 달째, 교육청은 여전히 제조업체들로부터 기기별 작동 매뉴얼을 수합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강식/제주도교육청 안전복지과장 : "기본적으로 감량기 매뉴얼들은 기존에 학교가 갖고 있을 것인데, (구입 후) 2, 3년 동안 시간이 흐르다 보니 매뉴얼 관리가 미흡할 수가 있습니다. 8월 말까지는 안내를 할 수 있도록."]

피해자들은 급식실 산업재해 발생 뒤 교육청의 대처도 허술했다고 지적합니다.

지난해 말, 급식 노동자의 세 손가락이 골절된 3번째 사고 땐, 교육청 산업재해 조사가 사고 발생 보름여가 지나서야 진행됐습니다.

해당 3번째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일선 학교로의 '사고 사례 전파'는 아예 없었습니다.

[이강식/제주도교육청 안전복지과장 : "(사고 사례) 안내를 하려고 해서 저희가 준비는 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코로나 상황 때문에 집합교육을 하지 못하고 해서 그 부분이 안내가 좀 안 된 상황입니다."]

당시 감량기 사고 사례만 제대로 알려졌어도, 4번째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제기되는 대목입니다.

[4번째 사고 피해 급식 노동자/지난 5월 사고 : "저는 제가 처음인 줄 알았는데. 이런 사고도 진짜 있었구나. 음식물 감량기 사고는 현장에선 진짜 듣지 못했고. 들었으면, 들었으면."]

산업재해로 입은 피해자의 피해 수준도 교육청에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도 문제입니다.

2년 전 첫 번째 사고 피해자는 당시 손가락 마디 일부가 절단됐지만, 교육청은 최근까지 베임 정도로 파악했습니다.

[1번째 사고 피해 급식 노동자/2018년 10월 사고 : "그렇게 기록된 것은 잘못된 거죠. 이건 베임 자체가 틀린 건데 왜 그렇게 올라갔는지 이해를 못 하겠네요."]

지난 5월 발생한 네 번째 사고 피해자는 오른손 4개 손가락을 잃었지만, 교육청 산업재해 현안보고서엔 '1개 절단, 3개 골절' 상해로 기록됐습니다.

[이강식/제주도교육청 안전복지과장 : "(학교) 최초 상황 보고 내용이 사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변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변화되는 환경들도 저희가 꼼꼼하게 살피면서."]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는 최근 잇따른 학교 급식 노동자 산업재해에 대해 이제는 교육청이 진정성을 갖고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김은리/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장 : "(감량기) 지침대로 교육받는 게 아니고 노동자들이 알음알음 알려주고 숙지하면서 인수인계를 받는 상황입니다. 가이드라인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 우리 노동자들을 (사고로) 내몰고 있다는 생각을 저희는 하고 있습니다."]

'더는 같은 산업재해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제주 학생 8만 명의 급식을 책임지는 학교 급식 노동자들의 절규이자 바람입니다.

["다닐 때까지만이라도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KBS 뉴스 임연희입니다.

촬영기자:조세준·강재윤·고성호/그래픽:박미나·김민수

임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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