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의 시선] 김경수는 기사회생할 수 있을까

박재현 2020. 8. 7.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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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7개월째 항소심 계속돼
무죄 선고 전망까지 나와
법을 권력자에 바쳐선 안돼
박재현 논설위원

서울과 중부지방이 물난리를 겪고 있지만 사법부 전체는 지금 휴가 기간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이번 주까지, 서울고법은 다음 주까지 대부분의 재판이 열리지 않는다. 항소심이 집중된 고법은 17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되면서 18일부터 다시 업무를 시작한다.

하지만 법조계 일부에선 17일 재판이 열리지 않는 것을 두고 군말이 나왔다. 선거법 위반 등 혐의를 받고 있는 김경수 경남도지사 때문이다. “정부가 의도적으로 재판 지연작전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헛소리로 들리겠지만 그만큼 저잣거리의 여론은 좋지 않다. 정상적인 것도 음모론적으로 보고, 정권의 좋은 의지 속에도 나쁜 의도가 숨어있지 않을까 하고 의구심을 갖는 것이 요즘 시민들의 심정이다. 차기 대선 후보군에 김 지사를 포함시키기 위해선 어떻게든 법원에서 무죄를 받아내려 한다는 정치적 논리를 떠올린 것이다.

허언증이 있는 우리의 정치계는 그렇다 쳐도, 이런 공상(空想)을 전해 듣고도 부화뇌동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법원이 더 큰 문제다. 대한민국이 아닌 ‘대한문국(大韓文國)’으로 부르며, 사법부를 법이 썩어가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사법부(死法腐)’로 한자를 바꿔 부르는 것을 법원 수뇌부들은 알고 있을까.

이미 결정을 정해놓고 여기에 법 조항을 그럴듯하게 갖다 붙이는 기교 판결이 이어지면서 ‘판단할 판(判)’과 ‘이지러질 결(缺)’을 결합해 ‘올바른 판단력이 결여된 판사의 결론을 판결’이라고 조롱하고 있는 것이 세상의 민심이다. 법과는 거리가 멀다는 의미의 법원(法遠)과 법은 이미 죽어서 관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뜻의 한자를 조합한 법관(法棺)이 ‘가짜 법률 용어집’으로 둔갑하고 있다. 이러고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를 향해 사법농단 세력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서 후흑(厚黑)의 진수를 느끼게 된다.

김 지사가 연루된 드루킹 사건에 대한 법원의 재판 과정을 보면 더욱 그렇다. ‘지체된 정의’라는 교과서적 비판은 오히려 진부하다. 사법부가 실체적 진실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려는 최소한의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일반인에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김 지사에 대한 항소심 재판이다.

추미애 법무장관이 당대표로 있을 때 수사 의뢰를 하면서 이번 사건이 불거졌다. 김 지사는 2018년 8월 특검에 의해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5개월만인 2019년 1월 말 징역 2년을 선고하면서 그를 법정구속했다. 그리고 1년 7개월째 항소심 재판이 도돌이표처럼 계속되고 있다. 그동안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각종 법률적인 의미를 제시하면서 재판은 공전을 거듭했고, 재판장은 교체됐지만 우리법연구회 출신의 주심은 바뀌지 않았다.

1심 재판장은 김 지사를 법정 구속한 뒤 사법농단 세력으로 기소됐고, 선고날까지 잡았던 2심 재판장은 인사 때 자리를 옮겨야 했다. 새로운 항소심 재판장이 오자 재판부는 다시 처음부터 재판을 하겠다고 하고, 급기야 118만여개의 댓글에 대해 전수조사를 하라고 특검에 요구했다. 기소를 했던 특검도, 재판을 보는 방청객도 황당했지만 정작 “황당하다”는 소리는 재판부 입에서 나왔다. 올해 안에 항소심 선고가 이뤄질지도 알 수 없게 됐고,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무죄’를 선고할 수 있다는 정치적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민주당 법사위원이 김 지사 구하기에 나선 듯한 발언을 공개리에 하고, 친정부 매체들은 그를 대선 후보군에 넣어 여론조사를 벌이는 건 정상적 법치주의라고 볼 수 없다. 김 지사와 공범으로 조사를 받고 같은 시기에 기소된 사람은 이미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받았는데도 법적 형평성을 얘기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올해 법관 회의에서 ‘국민 눈높이에 맞는 좋은 판결’을 얘기했다. 상대방이 있는 사건에서 좋은 판결이 있을 수 있을까. 형사사건은 피해자가 있기 마련이고, 민사사건도 이해관계를 다투는 사람이 있다. 그럼, 검찰 수사에서 좋은 수사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곤장을 들고 때리면서 좋은 매라고 얘기하면 납득이 갈까. 좋은 판결, 좋은 수사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정의를 위한 공정하고 공평한 판결을 말해야 하는 것이 시대정신에 좀 더 부합할 것이다.

김경수 사건의 재판은 우리의 헌법과 헌법 정신에 맞춰 공평무사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러니 고결해야 할 헌법(憲法)이 ‘법을 권력 앞에 갖다 바친다’는 의미의 ‘헌법(獻法)’으로 한자가 바뀌고 있는 것 아닌가. 재판이 질질 늘어지면서 확증편향의 사례가 사법부로까지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다. 법보다 정권을 염려하는 법관들 때문이다.

박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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