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 칼럼] 또 한 명의 언론인이 소리 소문 없이 구속돼 있다

최보식 선임기자 입력 2020. 8. 7. 03:20 수정 2020. 11. 12.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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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언유착' 혐의 받던 채널A 기자가 구속된 날, 우종창씨도 구속돼..
최보식 선임기자

조국 전 장관이 언론인 우종창씨에 대해 1억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며 “승소할 경우 판결금 중 일부는 시민운동 단체에 기부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 뉴스를 처음 접했을 때 트로트송 제목이 떠올랐다. 왜 우종창씨가 거기서 나오나?

우씨는 월간조선 등에서 20년 넘게 근무했고 현 정권에서 박근혜 탄핵 부당성을 지적하는 유튜브 방송을 해오던 언론인이다. 조국이 최근에 자신과 가족과 관련된 허위 과장 추측 보도한 기사들을 하나하나 찾아 모두 법적 조치할 것이라고 선언했지만, 어쩌다가 우씨가 '손보기 대상 1호'가 됐는지 영문을 몰랐다.

또 놀란 것은 우씨가 소리 소문 없이 이미 수감돼 있었다는 사실이다. 조국의 고소로 형사재판에서 징역 8개월에 법정 구속됐다고 한다. 그날은 공교롭게 '검·언유착' 혐의를 받던 채널A 기자도 구속된 날이었다. 채널A 기자의 구속 건은 톱뉴스였지만, 우씨의 구속은 거의 보도가 안 됐다. 우씨가 언론기관에 소속되지 않은 개인 유튜버여서 관심 대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외골수적인 보도 스타일로 우군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구속되고 1억원 손해배상 소송까지 당하게 된 사연은 이렇다. 2018년 3월 초 그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최서원(최순실)씨 1심 선고 직전인 1월에서 2월 초 사이 국정 농단 재판 주심 김세윤 부장판사를 청와대 인근 한식 음식점에서 만났다는 제보를 받았다"는 유튜브 방송을 했다.

제보의 신빙성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이 때문에 그는 '사실로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이어서 소개하고 그 확인을 위해 지금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지도 다 말씀드리겠다' '이는 제보자의 주장이고 아직 사실로 확인한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우씨는 조국의 답변을 듣기 위해 청와대 대변인실에 취재 협조문을 보냈다고 한다. 유튜브 제작을 위해 요구한 시점까지 답변이 오지 않았다. 촬영이 끝난 시점에 '만남 전화 문자 등 어떤 형태로든 접촉한 적 없다고 한다. 아예 모르는 사이라고 한다'라는 김의겸 대변인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김 대변인에게 연락해 추가 설명을 원했으나 듣지 못했다고 한다.

제작해놓은 유튜브는 다음 날 방영됐다. 조국 측에서 해당 동영상 내용에 대해 정정이나 삭제를 요구한 적 없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서 뒤늦게 우씨를 허위 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형사 고소한 것이다. 재판부는 "제보자 신원은 밝히지 않고 막연한 추측으로 허위 사실을 방송한 것으로 보인다. 언론인으로서 최소한의 사실 확인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며 그를 법정 구속했다.

당시 취재 협조문을 보낸 것으로 사실 확인 노력을 다했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유튜브는 개인의 의견·주장·표현 수단일 뿐이다. 현행법상 언론기관에 속하지 않는다. 사실 확인 책임을 언론기관만큼 엄격하게 물을 수 없다는 뜻이다. 유튜브 내용을 믿고 안 믿고는 시청자의 몫이다. 우씨의 열렬한 팬들은 어떠했는지 몰라도, 거의 전 국민은 그가 이런 유튜브 방송을 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조국이 민정수석 재임 시절 개인 유튜브까지 체크하고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뭔가 변태적인 장면이다.

조국 측 변호인은 "우씨의 명예훼손 행위는 조 수석의 사회적 신뢰도와 지명도 등 인격적 가치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행위였고, 청와대가 박근혜 형사재판에 개입하려 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심각한 내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경우 대부분 공직자는 공신력 있는 설명과 자료 제시, 반론 요구 등의 수단을 써왔다. 정 억울해도 공직의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힘센 공직자가 고소·고발까지 무기(武器)로 삼는 것은 헌법 정신에 맞지 않는다. 이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사전 억제 및 위축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비슷한 취지로 1988년 '국가기관모독죄'가 헌재에서 위헌 결정이 났다. 이는 당시 야당의 제기로 이뤄낸 것이다. 2016년에는 대법원이 '국가기관은 비판과 감시의 대상이기에 형법상 모욕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판결을 했다. 불충분한 정보에 의한 의혹 제기나 비판을 자연스럽게 본 것이다. 조국처럼 정부 권력을 배경 삼아 '내 명예가 훼손됐다'며 하나하나 걸고넘어지면 그게 전체주의 국가가 되는 길이다.

조국은 과거 트위터에서 '공인에 대한 검증 과정에서 부분적 허위가 있었음이 밝혀져도 법적 제재가 내려져서는 안 된다. 공적 인물에 대해서는 제멋대로 검증도, 야멸찬 야유와 조롱도 허용된다'고 했다. 그의 말과 행위는 늘 반대였으니 더 따질 것은 없다.

결국 민주주의와 법치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인 법원의 문제다. 삼십 몇 년 언론에 몸담으면서 이렇게 바닥까지 정치권력에 예속된 법원을 본 기억이 없다. 판사들은 자신의 똑똑함을 정말 부끄러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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