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급류서 8세 구한 20대 경찰, 부친은 11년전 순직 경찰
맨몸으로 급류에 뛰어들어 의식을 잃고 떠내려가던 8세 아동을 구한 20대 경찰관의 아버지가 11년 전 순직한 경찰관으로 확인됐다.〈중앙일보 6일 보도〉
7일 경기북부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5일 급류 속에서 아동을 구조한 의정부경찰서 고진형(29) 경장의 아버지는 고(故) 고상덕(사망 당시 47세) 경감이다. 아버지 고 경감은 지난 2009년 12월 14일 경기 파주시 자유로에서 주말 과속차량 단속에 나갔다. 연속 근무에 지친 부하직원을 배려해서다. 하지만 단속 과정에서 과속 차량에 치여 순직했다. 고 경감의 영결식은 경기경찰청장(葬)으로 치러졌다.
당시 정운찬 국무총리는 숨진 고 경감의 영결식에 권태신 국무총리실장을 보내 유족을 위로했다. 정 총리는 유족에게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소중한 생명을 바친 고인의 숭고한 헌신과 부하직원에 대한 따뜻한 사랑에 경의를 표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위로의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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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경장에 ‘경찰청장 표창’ 예정
이문수 경기북부지방경찰청장은 7일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급류 속에서 떠내려가는 어린이를 구한 고 경장의 의로운 행동은 모든 경찰의 귀감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고 경장에 대한 표창을 경찰청장께 상신했고, 경찰청장이 이를 곧바로 수락했다”고 밝혔다.
앞서 고 경장은 지난 5일 급류에 의식을 잃고 떠내려가던 8세 어린이를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채 급류에 몸을 던져 구조했다. 의정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5일 오후 4시 41분쯤 의정부시 신곡동 신의교 아래 중랑천에서 어린이가 물에 빠져 떠내려간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주변에서 순찰차를 타고 순찰 중이던 고 경장이 즉시 출동했다. 사고 현장을 200m가량 앞둔 골목길에서 차량 정체로 길이 막혀 순찰차가 멈춰 섰다.
고 경장은 지체할 틈이 없다고 판단, 차에서 내려 그대로 중랑천을 향해 내달렸다. 구명조끼를 챙길 겨를이 없어 동료 경찰관에게 구명조끼를 가져올 것을 당부한 뒤 현장으로 뛰어갔다. 중랑천 사고 현장에 도착하니 A군(8)이 허우적거리며 급류에 휩쓸린 채 떠내려가고 있었다. 당시 중랑천은 집중호우로 물이 불어 수심이 어른 키 높이 정도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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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뛰어들었다”
긴박했던 순간, 수영할 줄 아는 고 경장은 급류 속으로 곧바로 뛰어들었다. A군을 당장 구조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울 것으로 판단했다. 구명조끼가 도착할 동안 기다리지 않고 상의 조끼만 벗고는 그대로 물에 들어갔다.
고 경장은 20여 m 정도를 급류를 따라 하류 방면으로 헤엄쳐 내려간 뒤 발이 바닥에 닿자 가슴 높이의 급류 속에서 20여m가량 뛰듯이 내달려 A군을 안아 들었다. 당시 A군은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팔과 다리를 늘어뜨린 채 엎드린 상태로 급류에 떠내려가고 있었다.
고 경장은 A군을 안고 물가로 나왔다. 마침 이를 지켜보던 한 시민이 A군을 건네받으며 구조를 도왔다. 고 경장은 빗물에 젖은 중랑천 바로 옆 산책로 바닥에 의식이 없는 A군을 눕히고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약 1분간의 심폐소생술을 받고 A군은 물을 토한 뒤 숨을 쉬며 의식을 되찾았다. A군은 도착한 엠블런스를 타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고, 현재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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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건져 천만다행”
4년 2개월 전 경찰에 임용된 미혼의 고 경장은 “조금만 구조가 늦었으면 아이가 큰일을 당할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었기에 구명조끼가 도착하지 않았지만, 물속으로 뛰어들었다”며 “아이가 목숨을 건질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최겸 의정부경찰서 생활안전과장은 “사고 11분 전 가족으로부터 ‘A군이 집을 나갔다’는 실종신고가 경찰에 접수된 상태였다”며 “가족은 구조 후 ‘고맙다’며 감사 인사를 전해왔다”고 말했다.
고 경장은 "어릴 때부터 인자하시면서도 경찰 일에 충실한 자랑스러운 아버지를 보며 경찰관의 꿈을 키워 왔다"며 "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순직하셨지만 개의치 않고 군 복무를 마친 후 곧바로 경찰에 입문했다"고 말했다.
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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