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범죄자" 베이루트 수만명 시위, 광장엔 교수대 설치

이병준 2020. 8. 9.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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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베이루트 시내에서 열린 집회 모습. 로이터통신=연합뉴스


폭발이 일어나 최소 157명이 숨지고 5000명 이상이 다친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8일(현지시간) 영국 일간지 가디언 등에 따르면 이날 레바논 국회 인근에 있는 베이루트 ‘순교자 광장’에는 수만 명의 시민이 모였다. 이들은 국회를 포위하고 대통령 퇴진 및 국회의원 사퇴를 촉구했다. 경찰은 최루가스와 고무탄을 쏘며 진압에 나섰고, 시위대는 돌을 던지며 맞섰다. 이 과정에서 경찰 1명이 숨지고 양측 170여명이 다쳤다. 일부 시위대는 외교부 청사를 점거하고 미셸 아운 대통령 초상화를 불태우기도 했다.

집회에 참여한 줄리 워드(24)는 ”이제 더는 못 참겠다“면서 ”의료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지난해 10월부터 우리 사회의 위기가 어떤 영향을 끼쳐 왔는지, 어떻게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지 봐 왔다. 이제는 끝이다“라고 비판했다.

8일 순교자광장 모습. 로이터통신=연합뉴스


지난해 10월부터 레바논에서는 과도한 세금와 경제 침체, 정치 부패 등을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가 수백 일간 이어져 왔다. 이에 사드 하리리 총리가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시위대는 하산 디아브 신임 총리를 인정할 수 없다며 집회를 계속했다.

마찬가지로 이날 집회에 온 장 헬루(24)는 ”대통령은 범죄자고, 우리는 그를 끌어내리기를 원한다. 우리는 지난해 10월에도 이곳에 나와 있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참사가 일어난 뒤에도 저들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광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던 이사 베다위는 ”이번 시위에서 죽는 모든 사람은 순교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레이첼 래디(20)는 지난 7일 폭발에 휘말려 사망한 친구 레이완 음스토의 사진을 들고 집회에 참여했다. 래디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음스토와 나는 10월 집회에도 함께 나왔다. 그는 레바논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던 친구였다. 그 친구는 이제 죽었다“고 했다.

베이루트에 설치된 모형 교수대. EPA=연합뉴스


광장에는 모형 교수대가 설치됐다. 정치인들의 사진이 붙은 카드보드지에 올가미가 씌워졌다. 일부 집회 참가자들이 대통령의 사진을 향해 주먹질을 하기도 했다.

가디언은 집회 도중, 폭발로 사망한 항만 노동자의 어머니로 알려진 한 여성은 ”정의. 우리는 정의를 원한다. 내가 오늘 죽더라도 상관없다. 그들은 내 시신 위에서 우리의 행진을 막을 것이다“고 외쳤다고 전했다.

시위가 격화되자 국회의원 5명은 책임을 통감하고 사퇴했다. 새미 게마옐 의원은 ”새로운 레바논이 낡은 것의 폐허 위에 다시 세워져야 한다“고 밝혔다. 파울라 야코비안 의원도 ”더는 의회의 ‘위증’을 참을 수 없다“며 사의를 표했다. 지난 7일에는 폭발 현장을 방문한 장관들이 성난 군중들에게 쫓겨나기도 했다.

8일 밤, 베이루트에서 폭발 사망자에 조의를 표하기 위해 촛불을 켜고 있다. 로이터통신=연합뉴스

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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