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청소노동자 죽음 1년..휴게실은 어떻게 변했나

탁지영 기자 2020. 8. 9.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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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해 8월9일 서울대학교 제2공학관 남성 청소노동자가 지하 1층 휴게실(왼쪽 사진)에서 숨졌다. 사고 이후 휴게실(오른쪽 사진)은 지상 7층으로 옮겨졌다. 창문뿐 아니라 냉·난방기기가 설치됐고, 크기도 약 5배 커졌다. 탁지영 기자


지난 6일 서울대학교 제2공학관 지하 1층 남성 청소노동자 휴게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1층에서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옆 가건물. 이곳에서 지난해 8월9일 60대 청소노동자 A씨가 점심 시간에 잠을 자다 숨졌다. “휴게실에서 죽음을 맞이한 역설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죄송스러운 마음을 담아 다짐합니다.” 열리지 않는 문에는 학생과 동료 노동자들이 남긴 포스트잇이 붙었다.

A씨가 숨진 지 1년이 지났다. 그간 노조와 학생들은 A씨 죽음의 배경에 열악한 휴게실 환경이 있다며 개선을 요구했다. 고용노동부도 서울대에 이곳을 포함해 청소노동자 휴게실 15곳에 대한 개선 권고 조치를 내렸다. 열악한 휴게실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제2공학관 계단 옆 휴게실은 사고 직후 폐쇄됐다. 학생들이 스터디룸으로 쓰던 건물 지상 7층에 새 휴게실이 마련됐다. 공과대학은 A씨 사망 이후 이곳을 임시 휴게실로 정했다가 지난해 9월쯤 정식 휴게실로 만들었다.

크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가로 1.6m, 세로 2.1m 남짓이던 이전 휴게실에 비해 약 5배 커졌다. 평상에 남성 청소노동자 3명이 눕고도 자리가 남았다. 평상 옆에 책상과 정수기가 놓여 노동자들이 커피믹스를 타 먹곤 했다.

동료 노동자 원호진씨(68)는 “바람 솔솔 들어오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게 가장 좋다”고 말했다. 원씨는 2010년부터 A씨와 함께 제2공학관에서 일했다. 새로 마련된 휴게실에는 창문이 크게 나 있다. 에어컨, 평상 열선 등도 설치돼 있다.

이전 휴게실에는 에어컨은커녕 창문도 없었다. 탁한 공기를 견디다 못한 원씨가 학생들이 버린 환풍기를 주워다 벽을 뚫어 달았다. 벽걸이형 선풍기도 버려진 것을 가져다 설치했다. 환기가 안 돼 장마철이면 곰팡이 냄새가 진동했다. 원씨가 수차례 휴게실을 바꿔달라고 관리팀에 요청했지만 ‘장소가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A씨 동료 노동자들은 사람이 죽어야 바뀌는 현실에 안타까워했다. 제2공학관에서 20년째 일하고 있는 한 여성 청소노동자는 “15년 전 여성 휴게실도 건물 주차장에 놓인 컨테이너 박스였다”며 “계속 옮겨달라고 학교에 요구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음식 냄새가 교수실로 올라온다’는 지적이 나오자 학교 측에서 건물 내부 6층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정성훈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서울대시설환경분회장은 “현재 서울대 내 청소노동자 휴게실 200곳 중 지하 공간은 6곳”이라며 “지하 휴게실도 환기시설을 설치하고 공기청정기를 비치하는 등 개선 조치를 취했다”고 말했다.

서울대 모든 노동자들의 휴게환경이 나아진 건 아니다. 이창수 대학노조 서울대지부 부지부장은 “언어교육원에 있는 생협 느티나무 카페 등은 아직 계단 밑에 휴게공간이 있거나, 창고를 겸해 휴게실을 사용해 정작 쉴 수 있는 공간이 없다”고 말했다. 노조와 서울대 학생단체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은 10일 오전 서울대학교에서 A씨 추모 집회를 연다.

지난 6일 서울대학교 제2공학관 옛 청소노동자 휴게실에 추모 공간이 마련돼 있다. 탁지영 기자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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