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임대차 3법' 부작용..국토부는 알고 있었다

김흥록 기자 입력 2020. 8. 9. 17:35 수정 2020. 8. 10.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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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제 땐 전세 5.5만가구 증발'
국토부, 4년 전 정치권에 보고
정책 문제점 알고도 밀어붙여

[서울경제] 국토교통부가 지난 2015년 말 전월세 임대료 인상폭을 5% 이하로 제한하는 제도를 시행할 경우 5만5,800가구에 달하는 임대주택 공급물량이 줄어드는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학술연구 자료를 여야 정치권에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보고된 연구자료를 보면 제도 시행 후 임대료 상승, 임대주택 공급 감소, 전세의 월세 전환 심화 등 시장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올해 정부가 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한 관계기관 협의 등 이미 지적된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 없이 제도 시행을 몰아붙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9일 한국주택학회 및 국회 등에 따르면 국토부는 2015년 8월부터 ‘민간임대주택시장에 대한 임대료 규제의 효과 등 연구용역’을 실시해 그해 12월8일 국회 서민주거복지특별위원회에 보고했다. 당시 서민주거특위에는 김현미 현 국토부 장관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서울경제가 입수한 당시 연구용역 보고서를 보면 2+2년의 계약갱신청구권과 갱신 시 상한폭 5%로 제한 등 현재와 유사한 제도를 도입할 경우 임대료가 추가로 최대 9.96%포인트까지 오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용역은 한국주택학회가 수행하고 정의철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등이 연구진으로 참여했다.

당시 보고서 내용을 보면 전월세 기간 4년, 임대료 인상 상한 5% 규제를 도입하면 4년 뒤 신규 계약 시 규제가 없었을 때보다 임대료가 더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임대인들이 원래 받을 수 있는 가치와 현재 가치의 격차가 큰 만큼 다음번 신규 계약 때 임대료가 한꺼번에 오르는 논리다. 예를 들어 시장의 규제가 없을 때 자연스러운 임대료 상승률이 5%라면 규제를 적용할 경우에는 4년 뒤 5%의 상승률만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적게는 3.24%포인트, 많게는 4.73%포인트의 추가 임대료 상승이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시장의 자연스러운 임대료 상승률 5%에 추가 상승분까지 포함해 결국 8.14~9.73%의 상승률을 반영한 임대료가 형성된다는 의미다. 연구를 총괄한 정의철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대차시장이 임대인 우위의 시장이거나, 공급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전월세상한제 도입 후 임대료 상승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월세 전환율 규제 ‘5% 상한’보다 더 혼란...임대 줄것” 경고도 임대료 최고 9.96%p 추가 상승...가격 통제 할수록 시장 왜곡 전세매물 ‘0’ 단지 늘고 전세가 올라 세입자 피해 현실화 “당정 예고된 부작용에도 제도 시행...준비부족 아니냐” 논란

◇“전월세 전환율 규제는 상한제보다 더 강한 규제”···임대주택 감소 지적=연구 보고서에서는 특히 최근 추가 규제로 여권에서 논의하고 있는 전월세 전환율 인하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보고서는 “전월세 전환율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임대료를 규제할 경우 5%로 제한된 전월세상한제보다 더 심각한 가격규제 효과가 발생한다”고 우려했다. 가격규제로 시장이 왜곡된다는 것이다.

보고서에서는 10%의 전월세 전환율을 적용한 사례로 분석했다. 지방의 단독주택시장의 경우 법정 상한율(4%)보다 높은 전월세 전환율을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판단해서다. 통상 4억원의 전셋집을 보증금 2억원에 연 2,000만원(전환율 10%)에 임대하는 시장이 형성돼 있을 때, 이를 전환율 5%로 줄이라고 하면 임대인 입장에서는 연 2,000만원이던 임대료가 1,000만원으로 뚝 떨어지는 상황을 맞게 된다. 이에 시장에서는 4억원짜리 전세를 보증금 2억원에 연 1,000만원으로 줄이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2억원·2,000만원을 연 5% 전환율로 역산해 전세 6억원으로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를 두고 “결국 전월세 전환율로 시장을 규제할 경우 지방의 빌라나 단독주택(비아파트) 시장에서 큰 문제점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며 “특히 소득이 없어 비아파트에서 전세로 주거생활을 하는 노년 가구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여권에서는 임대차 3법의 후속 조치로 전월세 전환율을 현행보다 낮추고, 동시에 신규 임대차 계약 시에도 임대료 상한제 5%를 적용하겠다는 입장이다. 당시 보고서에서는 이처럼 가격규제가 강화될수록 시장 왜곡이 심해져 임대주택 공급량이 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연구진은 “만약 4년에 한 번이라도 임대인이 원하는 만큼 충분히 올릴 수 있다면 임대주택 공급은 변하지 않는다”며 “이와 달리 임대료를 충분히 올리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임대주택 공급 자체가 변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실제 임대인이 현재 가치를 100% 반영하지 못하고 95%만 받는다고 가정할 경우 임대주택의 순공급량은 1년 동안 3.34%, 2년6개월 동안 8.36% 감소하는 것으로 계산됐다. 이를 2010년 1·4분기부터 2012년 2·4분기까지 실제 공급량에 대입하면 공급 감소량은 5만5,800가구다.

◇전세 매물 실종, 임대료 급등 등 세입자 피해 속출···현실로 나타나는 ‘시장의 역습’=당시 국토부의 연구 보고서 내용은 상한제 및 갱신청구권 도입과 맞물려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서울 주요 단지에서 전세 매물이 ‘0’인 단지가 속출하는가 하면 전세가 상승률도 가팔라지고 있다. 한국감정원은 8월 첫주 서울의 아파트 전세가 상승률은 0.17%로 58주 연속 상승세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특히 주거 선호도가 높은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의 상승률은 전주 0.24%에서 0.30%로 상승폭을 높였다.

예상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여당의 제도 시행 준비가 부족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의철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부작용이 있더라도 세입자 보호를 위해 제도를 시행할 수는 있다”면서도 “다만 이해당사자들이 함께 시장 구조변화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협의 과정이 없었던 아쉬움이 있다”고 짚었다.

다만 정부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법무부 주관으로 임대차 규제와 관련한 별도의 학술 연구용역을 실시하기도 했다. 해당 연구에서는 2015년 국토부의 연구용역은 부작용이 과장됐다고 지적하며 전월세상한제와 갱신청구권으로 인한 추가 임대료 상승이 1%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다만 법무부 주관 연구에서도 “계약 기간 종료 후 다시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까지도 상한율을 제한한다면 당사자 간 계약의 자유 원칙을 과도하게 해치는 것이 아닌지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흥록기자 ro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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