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복 칼럼] 오만한 원리주의가 나라를 망친다

배명복 2020. 8. 11.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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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세상 복잡성 무시하는 오만
나는 늘 옳다며 귀 닫는 원리주의
욕하면서 닮는 '내로남불' 행태에
국정은 망가지고, 민심도 돌아서
배명복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18세기 영국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던 에드먼드 버크는 철저한 의회주의자이고, 자유주의자였다. 평생을 자유의 투사로 살았던 그가 말년에 만난 것이 프랑스 혁명이다. 사람들은 당연히 버크가 프랑스 혁명을 지지할 줄 알았다. 영국 여론도 이웃 나라의 혁명에 호의적이었다.

버크는 예상을 깨고 프랑스 혁명을 격렬하게 비판했다. 혁명 이듬해인 1790년 출간한 『프랑스 혁명에 관한 고찰』에서 그는 있던 건물을 다 허물어 빈터로 만든 뒤 그 위에 이상적인 정치제도를 하나부터 다시 쌓아 올리는 무모한 시도가 프랑스 혁명이라고 지적했다. 급하게 지은 건물이 견고할 수 없듯이 프랑스는 원래 있던 장점조차 다 잃어버리고 곧 모든 게 무너져 내릴 것으로 보았다. 자코뱅파의 공포정치와 나폴레옹의 독재로 버크의 예언은 현실이 됐다.

보수주의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버크를 갑자기 소환한 것은 지난 주말 뉴욕타임스에서 읽은 칼럼 때문이다. 이 신문 칼럼니스트인 브렛 스티븐스는 ‘에드먼드 버크는 왜 여전히 중요한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버크의 시선을 통해 전 세계에 역병처럼 번지고 있는 우파 포퓰리즘과 좌파 급진주의에 경종을 울렸다. 프랑스 혁명처럼 ‘모든 걸 깨부수고(tear-it-all-down)’, 추상적 이론에 따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난폭한 시도는 좌·우를 막론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가는 멋대로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레고 블록’이 아니라 한땀 한땀 고치고 보태며 완성해가는 ‘태피스트리(직물 그림)’라는 비유가 그럴듯하다. 인간과 사회의 복잡성을 무시한 채 단숨에 모든 것을 바꾸겠다고 덤비는 것은 오만이라고 버크는 주장한다.

버크는 급진적 혁명을 택한 프랑스와 점진적 개혁을 택한 영국의 차이를 이론에 치우친 프랑스인과 경험을 중시하는 영국인의 차이로 설명한다. 경험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힘들게 이룬 것을 걸고 함부로 도박을 하지 않지만, 직접 이뤄본 경험이 없는 이론가들은 물려받은 것을 걸고 위험한 도박에 나서기 쉽다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의 중요한 차이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매너(manners)가 법보다 중요하다”는 버크의 말을 인용해 스티븐스는 트럼프의 잘못을 질타한다. 상대편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나 예의를 생략한 채 자기 생각과 방식대로 함부로 국정을 운영함으로써 미국 정치 문화와 제도에 대한 시민들의 존경심과 신뢰를 바닥까지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시민이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면 먼저 사랑할만한 나라부터 만들어야 하는데, 트럼프는 정반대로 갔다는 통렬한 비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11월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 문제는 우리 정부에서 자신 있다고 장담한다”고 말했다. 인간의 욕망과 사회적 갈등이 응축된 복잡하기 짝이 없는 문제에 대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오만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스물세 차례나 대책이 나왔지만, 부동산 시장은 잡히지 않고 있다. 가용한 수단을 총동원해 시장과 싸우고 있지만, 보다시피 결과는 참담하다. 시장 개입에 따른 부작용을 또 다른 시장 개입으로 틀어막다 보니 이걸 막으면 저게 새고, 저걸 막으면 이게 새는 식이다. 그런데도 사과하거나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소득주도 성장론에서 이미 보여준 대로 ‘누가 이길지 끝까지 가보자’며 버티는 오기에 다름 아니다.

집 없는 서민을 위한다며 앞뒤 안 가리고 무조건 밀어붙여 임대차 3법을 통과시켰지만, 결과는 임대료 폭등과 전세 품귀 현상이다. 이념에 치우친 어설픈 정책이 오히려 서민들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인간과 세상의 복잡성을 생각하면 겸허한 자세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함에도 김현미 장관의 폭주는 요지부동이다. ‘친문(親文)’을 자처하는 사람들조차 부동산 문제에서만큼은 문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많다. 다락같이 오르는 서울 집값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재산이 강탈당하는 느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점령군 진압 작전 펴듯이 밀어붙이는 추미애 장관의 검찰개혁도 거칠기는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들은 추 장관을 보면 칼춤 추는 선무당이 생각난다고 말한다. 전통과 관행을 무시하고, 자기 생각과 입맛대로 조직을 흔들고, 줄 세우기 인사를 하는 것은 법과 규정을 떠나 제도와 인간에 대한 존중심과 예의가 없는 것이다. 176석이란 거대 의석을 무기로 국회 상임위를 독식하고, 소수 야당을 무시한 채 일사천리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집권 민주당의 이해찬 대표나 김태년 원내 대표, 또 말리는 척하면서 사실상 방조하는 박병석 국회의장도 매너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들이 그토록 욕하고 비판하던 보수 정권의 행태와 뭐가 다른가.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자기 생각은 처음부터 옳다고 여기고 다른 사람의 의문이나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가 원리주의라고 정의했다. 지난 정부를 욕하면서 닮아가는 문재인 정부의 오만한 원리주의가 국정을 망치고 있다. 이대로 가면 내년 4월 재보궐 선거는 물론이고 내후년 대선도 위험하다.

배명복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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