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입에 안 맞아" "쓰레기 버려줘".. 민폐 격리자에 공무원 '녹초' [심층기획]
전국 코로나 자가격리자 3만명대
행안부 '생필품 구입·배달 등 적극 지원'
대응 지침에 지나친 요구 거부도 못해
스트레스로 업무 중 불안·두통 등 호소
그래도 이주여성 봉사단 있어 '든든'
광주 광산구, 외국인 격리자 통역 투입
안전보호앱 설치법·준수 수칙 등 안내
공무원들과 지역 확산 막는 첨병 역할
지역 자가격리자는 A씨에게 새벽이나 늦은 밤 가리지 않고 수시로 전화를 걸어왔다. A씨가 격무에 지쳐 전화를 받지 못하면 문자를 남겨 “주고 간 먹을거리가 충분하지 않다”, “약국을 들러야 하는데 당신이 사주면 안 되느냐” 등을 요구했다. 그야말로 개인 비서 부리듯 허드렛일을 시킨 것이다. 공무원들이 최일선에서 감염병 전파를 막아내고 있다. 이런 책임감의 한편에서는 남 모를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일부 자가격리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큼 도를 넘어선 행동들 때문이다.
◆자가격리자 3만명… 이탈자 차단 급선무
전국에서 코로나19 자가격리자 수가 3만명을 오르내리고 있다. 10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이달 2일 기준 전국의 자가격리자 수는 3만352명이다. 해외입국자는 2만7222명(89.7%), 국내 확진환자 접촉자는 3130명(10.3%)이다. 국내 접촉자의 경우 5월에 이태원 클럽, 부천 물류센터, 소규모 종교모임 등 집단감염 발생으로 크게 늘어났다가 다시 감소하는 추세다. 지금까지 격리에서 해제된 44만5915명까지 포함하면 자가격리자는 47만6267명에 달한다.
◆허드렛일까지… 피로감 갈수록 쌓인다
인천 남동구 논현고잔동 행정복지센터의 B(38·여)씨는 얼마 전 본청에 “도저히 관리할 수 없다”며 담당자 변경을 요청했다. 그가 맡았던 50대 후반 남성의 무례함이 본연 업무는 물론이고 가정생활에까지 피해를 준다는 하소연이었다. 이 남성은 지난달 30일 자가격리 직후부터 “즉석식품이 입에 맞지 않는다. 너무 배가 고프니 배달음식을 대신 주문해 달라” 등 계속해 B씨를 괴롭혔다. 이것으로 부족했는지 구청에도 하루 4∼5차례 전화를 걸어 불만을 쏟아냈다.
경기 김포시 또 다른 공무원 C씨는 최근 자신이 전담했던 60대 여성을 경찰에 고발했다. 이 여성은 지난 5월7일 미국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통해 들어왔다. 같은 달 14일 오전 C씨는 휴대전화에 설치된 자가격리 앱을 살펴보던 중 당사자의 GPS(위치정보시스템)가 차단된 것을 확인했다. 다급해진 C씨는 관할 지구대 경찰과 동행해 거주지를 찾았지만 집은 빈 상태였다. 낮 12시쯤 집으로 돌아온 여성은 급한 부동산 계약 건으로 세무서에 다녀왔다고 황당한 해명을 늘어놨다.
◆외국 출신 주민들, 해외유입 차단 첨병으로
“신짜오(베트남 말로 ‘안녕하세요’). 집에 계시죠? 자가격리자 앱은 설치하셨나요? 하루 두 번 체온을 체크해서 앱에 입력하셔야 해요. 집 밖으로 외출하지 말아 주세요. 혹시 몸에 이상 있으면 꼭 담당공무원에게 연락 바랍니다.”
광산구가 지금의 위기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외국인주민 명예통장제도’를 실시하고 있어서다. 관내에는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여성, 고려인 등 외국인 2만1000여명이 살고 있다. 이들의 사회참여를 지원한다는 취지 아래 명예통장제도를 앞서 도입했다. 통역봉사단의 주축도 바로 이들이다. 봉사단은 외국어로 쓰인 자가격리 통지서와 수령증을 만들어 배포하는 등 감염병의 지역 확산을 막는 첨병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광산구 관계자는 “대한민국 대표적 다문화도시의 특성을 살린 정책이 지역사회 통역 능력을 제고하며 코로나19 위기에 빛을 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 장기화… 자가격리자 관리 외주 검토해야”
기모란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 교수(대한예방의학회 코로나19 대책위원장)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전에 돌입한 상황에서 자가격리자 관리를 외주로 주는 방안이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각 지방자치단체 전담공무원이 본연 업무에 소홀하지 않고 피로감을 줄이기 위해 보건매니저 형태의 전문업체를 선정·투입해 체계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자가격리 중요성을 거듭 언급한 기 교수는 코로나19의 경우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나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달리 발열과 기침이 없는 무증상 상태로 바이러스를 전파시킨다고 말했다. 실제 코로나19 확진자 가운데 무증상 감염자가 다수를 차지한다.
기 교수는 향후 자가격리 대상자 기준을 더욱 세분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메르스 사태 때처럼 능동감시자를 추가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확진자와 한 공간에 머물렀어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2m 거리두기 등 방역수칙을 지키면 감염 가능성이 눈에 띄게 작아지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능동감시자는 하루 두 차례 관할기관에 자신의 상태를 보고하는 것은 자가격리자와 같지만, 주변인과 접촉이 가능하고 외출이 허용되는 등 일상생활은 온전히 유지된다. 기 교수는 “지금까지는 전파 확산을 억제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효과 위주였다면 이제 효율성도 고려해야 할 시점”이라며 “그동안 역학조사 자료를 면밀히 분석하는 한편 자가격리와 능동감시의 구분으로 행정효율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천=강승훈 기자, 전국종합 shka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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