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입에 안 맞아" "쓰레기 버려줘".. 민폐 격리자에 공무원 '녹초' [심층기획]

강승훈 입력 2020. 8. 11. 06:03 수정 2020. 8. 1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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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감 쌓이는 전담 직원들
전국 코로나 자가격리자 3만명대
행안부 '생필품 구입·배달 등 적극 지원'
대응 지침에 지나친 요구 거부도 못해
스트레스로 업무 중 불안·두통 등 호소
그래도 이주여성 봉사단 있어 '든든'
광주 광산구, 외국인 격리자 통역 투입
안전보호앱 설치법·준수 수칙 등 안내
공무원들과 지역 확산 막는 첨병 역할
경기도 김포시청 소속 공무원 A씨는 최근에 담당했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자가격리자만 생각하면 속이 뒤틀린다. 운양동 거주자인 40대 후반 남성은 확진환자 접촉자로 분류돼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자가격리자 전담 공무원인 A씨는 해당 남성의 집을 찾아 즉석밥과 김, 카레, 우유 같은 여러 식료품과 체온계, 소독제, 마스크 등이 담긴 구호물품을 전달했다. 외출 금지도 당부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A씨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악몽에 시달렸다.

지역 자가격리자는 A씨에게 새벽이나 늦은 밤 가리지 않고 수시로 전화를 걸어왔다. A씨가 격무에 지쳐 전화를 받지 못하면 문자를 남겨 “주고 간 먹을거리가 충분하지 않다”, “약국을 들러야 하는데 당신이 사주면 안 되느냐” 등을 요구했다. 그야말로 개인 비서 부리듯 허드렛일을 시킨 것이다. 공무원들이 최일선에서 감염병 전파를 막아내고 있다. 이런 책임감의 한편에서는 남 모를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일부 자가격리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큼 도를 넘어선 행동들 때문이다.

◆자가격리자 3만명… 이탈자 차단 급선무

전국에서 코로나19 자가격리자 수가 3만명을 오르내리고 있다. 10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이달 2일 기준 전국의 자가격리자 수는 3만352명이다. 해외입국자는 2만7222명(89.7%), 국내 확진환자 접촉자는 3130명(10.3%)이다. 국내 접촉자의 경우 5월에 이태원 클럽, 부천 물류센터, 소규모 종교모임 등 집단감염 발생으로 크게 늘어났다가 다시 감소하는 추세다. 지금까지 격리에서 해제된 44만5915명까지 포함하면 자가격리자는 47만6267명에 달한다.

자가격리자 관리는 행안부가 총괄지원을 맡고 있고, 각 지방자치단체가 재난관리부서 위주 전담공무원을 지정해 증상 발현 및 격리장소 이탈 여부 등을 상시 관리·감독하고 있다. 올해 2월 중순 신천지 교인들을 중심으로 확진자와 격리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관리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토록 ‘자가격리자 안전보호 앱’을 보급·운영 중이다. 안전보호앱의 경우 해외입국자는 스마트폰이 없는 어린이와 노약자 등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깔아야 한다.
전담공무원들은 해당 앱을 이용해 하루 두 차례 격리자의 건강상태를 파악하고 이동경로 등을 점검하는 동시에 경찰서와 합동으로 불시점검에도 나선다. 그럼에도 A씨의 사례처럼 자가격리자들의 지나친 요구를 마냥 거부하기 힘든 실정이다. 행안부의 코로나19 대응지침을 보면 ‘(자가격리자에 대해 전담 공무원은) 의약품 수령·전달, 생필품 구입·배달 등 지역 여건에 따라 적극 지원하라’고 명시하고 있다. 자가격리자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방법·방식과 상관없이 무조건 적극 협조하라는 얘기다.

◆허드렛일까지… 피로감 갈수록 쌓인다

인천 남동구 논현고잔동 행정복지센터의 B(38·여)씨는 얼마 전 본청에 “도저히 관리할 수 없다”며 담당자 변경을 요청했다. 그가 맡았던 50대 후반 남성의 무례함이 본연 업무는 물론이고 가정생활에까지 피해를 준다는 하소연이었다. 이 남성은 지난달 30일 자가격리 직후부터 “즉석식품이 입에 맞지 않는다. 너무 배가 고프니 배달음식을 대신 주문해 달라” 등 계속해 B씨를 괴롭혔다. 이것으로 부족했는지 구청에도 하루 4∼5차례 전화를 걸어 불만을 쏟아냈다.

이 남성은 자가격리를 시작하고 이틀 뒤 관할 보건소에서 가진 코로나19 검체 검사에서 음성으로 결과가 나오자 “건강상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담배를 사러 외출하겠다”고 B씨에게 전했다. B씨는 이 같은 참기 힘든 상황이 이어지면서 스트레스가 쌓였고 업무 중에 어지럼증이나 불안·두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인천시 한 공무원은 자가격리자로부터 생활쓰레기를 대신 배출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어린 자녀가 함께 생활하고 있어 기저귀를 하루에도 4∼5개를 사용하는데 이를 실내에 두자니 위생상으로 나쁘고 악취도 풍긴다고 했다. 그렇다고 ‘배출 자제 원칙’을 어길 수도 없는 불가피한 상황을 구구절절 늘어놨다. 그는 하는 수 없이 현장에 달려가 민원을 처리해 줬다.

경기 김포시 또 다른 공무원 C씨는 최근 자신이 전담했던 60대 여성을 경찰에 고발했다. 이 여성은 지난 5월7일 미국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통해 들어왔다. 같은 달 14일 오전 C씨는 휴대전화에 설치된 자가격리 앱을 살펴보던 중 당사자의 GPS(위치정보시스템)가 차단된 것을 확인했다. 다급해진 C씨는 관할 지구대 경찰과 동행해 거주지를 찾았지만 집은 빈 상태였다. 낮 12시쯤 집으로 돌아온 여성은 급한 부동산 계약 건으로 세무서에 다녀왔다고 황당한 해명을 늘어놨다.

◆외국 출신 주민들, 해외유입 차단 첨병으로

“신짜오(베트남 말로 ‘안녕하세요’). 집에 계시죠? 자가격리자 앱은 설치하셨나요? 하루 두 번 체온을 체크해서 앱에 입력하셔야 해요. 집 밖으로 외출하지 말아 주세요. 혹시 몸에 이상 있으면 꼭 담당공무원에게 연락 바랍니다.”

광주 광산구 거주자인 현하민펑(41)씨는 결혼이주여성이다. 베트남에서 태어났고 성인이 된 후 남편을 따라 한국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현씨는 최근 하남동에서 자가격리에 들어간 같은 모국 출신의 응웬티미엔(45)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국어가 원활하지 않은 응웬티미엔씨에게 베트남어로 안전보호 앱 설치 및 사용법을 안내하고 자가격리 동안 준수해야 할 수칙 등을 전해 주라는 광산구청 전담공무원의 요청을 받은 것이다.
전화 통화를 마친 현씨는 구청에 연락해 응웬티미엔씨에게서 받은 개인정보를 전달했다.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어려운 베트남 국적 외국인들의 ‘안녕’을 살피고 있는 현씨는 광산구 ‘다국어 통역봉사단’ 소속이다. 구는 해외입국 외국인의 격리·검역·진료 등 여러 분야에서 의사소통 중요성이 높아지자 지난 4월 통역봉사단을 구성해 대응 중이다. 베트남어, 중국어, 몽골어, 러시아어 등 13개 언어로 대화할 수 있는 31명으로 꾸려졌다.

광산구가 지금의 위기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외국인주민 명예통장제도’를 실시하고 있어서다. 관내에는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여성, 고려인 등 외국인 2만1000여명이 살고 있다. 이들의 사회참여를 지원한다는 취지 아래 명예통장제도를 앞서 도입했다. 통역봉사단의 주축도 바로 이들이다. 봉사단은 외국어로 쓰인 자가격리 통지서와 수령증을 만들어 배포하는 등 감염병의 지역 확산을 막는 첨병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광산구 관계자는 “대한민국 대표적 다문화도시의 특성을 살린 정책이 지역사회 통역 능력을 제고하며 코로나19 위기에 빛을 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 장기화… 자가격리자 관리 외주 검토해야”

기모란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 교수(대한예방의학회 코로나19 대책위원장)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전에 돌입한 상황에서 자가격리자 관리를 외주로 주는 방안이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각 지방자치단체 전담공무원이 본연 업무에 소홀하지 않고 피로감을 줄이기 위해 보건매니저 형태의 전문업체를 선정·투입해 체계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기 교수는 10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전담공무원처럼 돌봄노동을 하는 이들은 별도의 고충을 호소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자가격리자는 대면이든 비대면이든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담당공무원이다 보니 그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배출하게 된다”고 전했다.
기모란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 교수
기 교수는 특히 폐쇄된 공간을 견디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과 접촉하지 못하도록 따로 분리된 것에 불안이 큰 이들은 극한 분노로 드러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가격리가 이뤄지는 공간 여건이 무단이탈과도 긴밀한 상관관계를 갖는다고 덧붙였다.

자가격리 중요성을 거듭 언급한 기 교수는 코로나19의 경우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나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달리 발열과 기침이 없는 무증상 상태로 바이러스를 전파시킨다고 말했다. 실제 코로나19 확진자 가운데 무증상 감염자가 다수를 차지한다.

기 교수는 향후 자가격리 대상자 기준을 더욱 세분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메르스 사태 때처럼 능동감시자를 추가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확진자와 한 공간에 머물렀어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2m 거리두기 등 방역수칙을 지키면 감염 가능성이 눈에 띄게 작아지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능동감시자는 하루 두 차례 관할기관에 자신의 상태를 보고하는 것은 자가격리자와 같지만, 주변인과 접촉이 가능하고 외출이 허용되는 등 일상생활은 온전히 유지된다. 기 교수는 “지금까지는 전파 확산을 억제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효과 위주였다면 이제 효율성도 고려해야 할 시점”이라며 “그동안 역학조사 자료를 면밀히 분석하는 한편 자가격리와 능동감시의 구분으로 행정효율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천=강승훈 기자, 전국종합 shka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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