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욕망' 거스른 부동산 정책, 서울 민심이 돌아섰다

박준석 입력 2020. 8. 11. 09:18 수정 2020. 8. 11.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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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때 여당 싹쓸이.. 문 대통령 지지율 40%대로 추락
10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잠실 아파트단지. 뉴스1

부동산 정책 실패로 서울 민심이 들끓고 있다. 서울은 4ㆍ15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49석 중 41석을 독식한 텃밭이다. 총선 직후에도 서울에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60~70%를 넘나들었다. 하지만 최근 부동산 정책 실패와 청와대 다주택 참모들의 ‘강남불패’ 행보, 여당의 행정수도 세종시 이전 선언 등 연이은 악재가 불거지며 문 대통령 지지율이 40%대로 추락했다.


3달 만에 75→48% 추락… 박원순ㆍ윤미향보단 부동산이 결정적

한국갤럽이 지난 4~6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 유권자 중 48%가 ‘문재인 대통령이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잘못하고 있다’는 47%였다. 긍정 평가 비중이 직전 조사인 7월 4주차(38%) 때보다 10%포인트 올랐지만, 전 국민에 대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이 시작된 5월 1주차(75%)와 비교하면 세 달 사이 무려 27%포인트나 지지율이 내려앉았다.

문 대통령 지지율 하락의 출발점은 6ㆍ17 부동산 대책이었다. 당시 정부가 ‘갭 투자(전세 끼고 주택 매입)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전방위적으로 규제를 강화하자, 투기 수요를 억제하는 수준을 넘어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까지 막았다는 불만이 폭발했다. 집값이 나날이 오르는데도, 50대 이상 기득권 세대는 부동산으로 이미 재산을 일궜는데도, 20~30대 무주택자들이 재산을 불리는 길은 막혔기 때문이다.

윤미향 민주당 의원이 연루된 ‘정의기억연대의 회계부정 의혹’ 사태에도 6월 초 60%대를 유지하던 서울 지역의 문 대통령 지지율은 6ㆍ17 대책에 대한 불만 여론이 반영된 6월 4주차부터 51%로 급락했다. 민주당의 한 3선 의원은 10일 “6ㆍ17 대책은 실수요자 역풍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반쪽 짜리였다”고 혹평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서울 지역 지지율 추이. 한국일보

여기에 7월 초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의 ‘강남 아파트’ 사태가 불을 질렀다. 당시 청와대는 “노 실장이 서울 반포 아파트를 매각할 것”이라고 발표했다가 45분 만에 충북 청주 아파트를 매물로 내놨다고 정정했다. 노 실장은 청와대 다주택 참모들의 주택 처분을 지시한 장본인이다. “비서실장이 ‘강남 불패’ ‘똘똘한 한 채’가 정답이란 사실을 몸소 입증했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7월 2주차 때는 총선 이후 처음으로 문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47%)가 긍정 평가(46%)를 앞질렀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이 불거지기 전에 이미 ‘데드크로스’가 나타난 것이다. 이후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행정수도 세종시 이전’ 카드를 꺼내자, 7월 4주차 44%에서 5주차엔 38%로 문 대통령 지지율은 계속 고꾸라졌다. 지난달 28~30일 한국갤럽 조사에선 서울 유권자의 61%가 ‘정치ㆍ행정 중심지를 서울로 유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행정수도 반대 응답이 60%를 넘은 건 전 지역 중 서울이 유일했다. 지역 균형발전을 앞세운 행정수도 카드가 서울에선 악수였던 셈이다.

리얼미터 조사에서도 수치만 다를 뿐 ‘부동산발(發) 서울 민심 이탈’ 추세가 확인된다. 6ㆍ17 대책 발표 전 60% 안팎에 머물던 문 대통령 지지율은 대책 발표 이후 실시된 6월 4주차 조사 때 53.3%까지 하락했다. 청와대 고위직의 다주택자 논란이 불거진 7월 2주차 때는 총선 이후 처음으로 부정 평가(52.7%)가 긍정 평가(42.5%)을 오차범위(±2.5%포인트) 밖에서 앞질렀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윤미향 사태나 박원순 시장 사태 등은 정치 이슈라 대통령 지지율에 미치는 영향이 크진 않다”며 “무주택자 혹은 유주택자로서 정책에 다양한 이해관계를 갖는 서울 시민들은 부동산 이슈에 매우 강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했다.

부동산악법저지 국민행동 회원들이 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 일대에서 부동산 대책과 관련 정부를 규탄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與 “곧 정책 효과 나타날 것”… 당 일각선 ‘글쎄’

민주당이 '입법 독주’ 비판을 무릅쓰고 세입자 보호를 위한 ‘임대차 3법’과 종부세 최고세율을 6%까지 인상하는 ‘부동산 3법’을 강행 처리한 것도 가파른 민심 이탈을 잠재우려는 측면이 강하다. 실제 이달 7~9일 한국갤럽 조사에서 서울 유권자의 50%는 ‘부동산 시장에 대한 규제를 현재보다 강화해야 한다’며 현 정부의 ‘투기수요 억제’ 기조에 공감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향후 부동산 입법 조치의 성과가 나오면 민심이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당내서도 비관론이 적지 않다. 수도권의 한 중진 의원은 “전세 매물 품귀 현상 등으로 세입자와 다주택자 관계 없이 지역구 여론이 너무 좋지 않다”며 “지금껏 국민의 욕망과 배치되는 정책이 성공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좋은 집에 살고 싶다, 내 집을 갖고 싶다는 국민의 평범한 욕망과 어긋나는 부동산 정책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상세한 내용은 한국갤럽 ㆍ 리얼미터 홈페이지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www.nec.go.kr) 참조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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