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 풀린 군비 증강 더이상 안된다

2020. 8. 11.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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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칼럼] 문재인 대통령의 8.15 경축사보다 중요한 것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wooksik@gmail.com)]
나흘 앞으로 다가온 8.15 광복 75주년 경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내놓을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발언이 벌써부터 관심을 끌고 있다. 정부 출범 이래 최악에 빠진 남북관계와 하노이 노딜 이후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새로운 구상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8.15 경축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한미연합훈련 실시 여부 및 '2021-2015년 국방중기계획'이 바로 그것이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는 축소한 형태로 연합훈련을 실시하겠다는 계획을 이미 밝혔고 10일 국방중기계획을 공개했다. 주요 골자는 향후 5년간 무려 301조 원의 국방비를 투입해 대규모 군비증강을 지속하겠다는 것이다.

이게 남북관계 및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미칠 영향은 무엇일까? 지난해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다음날인 8월 16일에 문 대통령의 발언을 가리켜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이라고 비난하면서 "남조선 당국자들과 더 이상 할 말도 없으며 다시 마주 앉을 생각도 없다"고 못 박았었다. 그리고 이후 1년 동안 남북관계는 실제로 이렇게 전개되고 말았다.

▲ 국방부가 2021∼2025년 국방중기계획을 수립했다고 10일 밝혔다. 군 당국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을 방어하고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에 대비하기 위해 감시·정찰 능력을 키운다. 또 북한의 수도권 공격 핵심 전력인 장사정포를 막을 '한국형 아이언돔' 구축을 위한 개발에도 착수하는 등 요격 능력 강화에도 방점을 뒀다. ⓒ연합뉴스

북한이 이렇게 막말을 쏟아낸 데에는 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전에 벌어진 상황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작년 7월 하순에 최신형 무기 도입과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촉구하는 '권언'을 문재인 정부에 보낸 바 있다.

하지만 8월 11일 한미연합훈련이 강행되었고 8월 14일에는 약 291조 원을 투입하는 '2020-2024년 국방중기계획'이 공개되었다. 북한은 이를 두고 연합훈련을 중단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약속과 "단계적 군축"을 추진키로 했던 남북 정상회담 합의 사항이 물거품이 되었다고 판단하기 시작했다. 북한의 대남 근친 증오도 이렇게 커지고 말았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사례로부터 배운 게 없다. 통일안보라인을 개편했지만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국방정책은 그대로이다. 정부 출범 당시 세계 12위로 평가받았던 군사력이 올해 6위로 껑충 뛰어오른 만큼, 이젠 군비증강을 조절할 때도 되었는데 군사강국을 향한 욕심이 끝이 없다.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고 있는 와중에 역대급 수재가 발생한 만큼, 국방비를 하향 조절해 민생 구제에 투입할 법도 한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역대급 군비증강과 관련해 정부는 전시작전권 전환을 위해 필요하다고 해명해왔다. 이 논리도 동의하기 어렵지만, 이번 국방중기계획을 보면 이마저도 공허하게 느껴진다. 전작권 전환 이후에 오히려 군비증강이 더 극심해질 것임을 예고해주는 내용들이 수두룩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사상 최대 규모의 군비증강 드라이브를 계속 걸수록 그 부담은 차기 정부로도 이어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 안팎에선 대규모 군비증강과 관련해 이전 정부에서 결정된 것이기에 철회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보다 국방비 증액률을 2배 가량 높여 왔기에 이러한 해명도 설득력은 떨어진다. 계승한 정도가 아니라 수위를 크게 높여왔기 때문이다.

또한 차기 정부도 비슷한 해명을 해야 할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때 결정되고 추진되어온 군비증강 사업을 철회하기가 어렵다고 말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의 커다란 장애물을 차기 정부로 넘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고가의 무기와 장비일수록 운영유지비도 많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이에 따라 차기 정부는 민생과 기후 변화 대처와 같이 인간안보 증진을 위해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많은 이들은 문재인 정부의 군비증강을 두고 주변국 위협 대처용이라며 지지를 보낸다. 고삐 풀린 군비증강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정치인, 언론, 전문가들도 거의 없다. 하지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국방비를 방치할 경우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날개 없는 추락도 계속될 공산이 크다. 그리고 남북관계의 악화와 군비경쟁 격화는 주변국들의 위협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도 어렵게 만들 것이다.

남북관계를 회복하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개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백 마디 말보다 하나의 의미 있는 실천이 중요한 때이다. 그건 바로 4.27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합의했던 "단계적 군축"에 약간의 성의라도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제재와 같은 국제적 제약과 무관한 것이기에 문재인 정부가 결심하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 정도도 못하면서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를 약속해온 문재인 정부의 진정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wooks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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