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정의 시선] 누가 검찰과 정치의 '야합'을 부추기나

장세정 2020. 8. 13.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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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지검, 검·언 공모 증거 못 밝혀
MBC·KBS 권·언 유착 규명하고
추미애의 '검찰 정치화' 중단해야
장세정 논설위원

중앙일보 법조팀이 단독 입수해 보도한 전 채널A 이동재 기자의 강요미수 혐의 관련 공소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다가 깜짝 놀랐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아낀다는 한동훈 검사장의 이름은 공소장에 수십번 나왔지만, 그동안 집권 세력이 주장해온 기자와 검사장의 소위 ‘검·언 유착’을 입증할 스모킹건은 보이지 않았다.

검찰의 공소장 논리가 아니라 이동재 기자의 시선으로 한번 보자. 그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시가총액이 10조원을 넘었던 코스닥 대장주이자 바이오벤처기업 신라젠을 둘러싸고 초대형 금융사기 사건이 터진다. 문재인 정부 핵심 실세들의 연루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다. 신라젠의 전 대주주였던 이철(수감 중)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대표를 접촉하면 뭔가 깊숙한 정보가 나올 듯하다.

이철 전 대표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만든 국민참여당의 원외위원장 출신이다. 유 이사장은 신라젠 행사에 참석했고 VIK 직원들에게 강연도 했다. 법조 출입 기자라면 이런 이상한 관계와 흐름에 의심을 품는 게 당연하다. 게이트 냄새를 풍기는데도 특종 의욕이 안 생기고 발로 뛰지도 않았다면 게으르거나 무능한 기자다.

이동재 기자는 취재 윤리 한계를 넘나들며 다소 무리하게 취재하다 사달이 난 경우가 아닐까. 특종 취재에 ‘실패’한 그는 지금 범죄자로 내몰려 구치소에 갇힌 신세다.

다시 공소장을 읽으면서 수사팀에 강한 의문이 들었다. 권력형 범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기자가 취재를 ‘기획’했는데 수사팀은 공소장에서 다짜고짜 ‘공모’로 몰아갔다. 영장전담 판사는 이런 정황을 두루 고려하지 않고 영장을 발부해 비판을 받고 있다. 엉성한 억지춘향식 공소장이 나온 배경을 추정해 봤다. 첫째, 수사팀의 역량이 부족했을 가능성이다. 둘째, 뭔가 사심이 개입된 수사를 도모하다 뜻대로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다.

머리를 써야 할 부장검사는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러 가서 격투기 선수처럼 난데없이 몸을 날리더니 결국 침대 위에 드러누운 사진을 찍어 공개하는 옹색한 쇼를 벌였다. 추태도 이런 추태가 없다. 그런데도 수사를 지휘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징계는커녕 보란 듯 유임되고, 차장 검사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눈에 들어 검사장으로 승진했다니 이래서야 검찰 조직에 영(令)이 서겠나.

이제 관심은 ‘권·언 유착’ 진실 규명 쪽으로 쏠리게 됐다. 이철 전 VIK 대표의 지인은 함정을 파놓고 이동재 기자의 취재를 유도한 뒤 파악한 내용을 MBC에 넘겨 ‘제보 공작’ 의혹을 사고 있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와 황희석 최고위원은 지난 3월 말 MBC의 검·언 유착 보도 내용을 사전에 알았다는 의혹 등으로 고발당했다. 급기야 MBC의 의혹 보도를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미리 알았으며 “윤석열과 한동훈을 쫓아내야 한다”는 믿기 어려운 정치 공작 발언을 했다고 민변 출신 권경애 변호사가 폭로했다.

뒤늦게 KBS는 이동재 기자가 구속된 다음 날인 7월 18일 검·언 공모 정황을 확인했다며 갑자기 녹취록을 인용 보도했으나 오보로 드러나 망신당하고 다음 날 정정했다. 그런데 KBS 오보 직후 검찰 간부로 추정되는 제3의 인물이 KBS에 정보를 흘렸다는 이른바 ‘청부 보도’ 의혹까지 제기됐다. 한동훈 검사장은 “KBS 오보 제보자를 밝혀달라”며 고소장을 검찰에 제출한 상태다. 제대로 된 검찰이라면 이제 MBC와 여권 정치인, KBS와 검찰 간부의 유착 의혹을 밝히는 것이 순서다.

지금 검찰과 법무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기이하고 볼썽사나운 이전투구(泥田鬪狗) 배경에는 추미애 장관이 있다. 그가 계속 무리수를 두면서 이른바 ‘검찰 개혁’은 뒤틀리고 검찰과 법무부에 대한 국민 신뢰만 갉아먹고 있다. 그런 그가 검찰 고위 간부들에게 “정권을 쳐다보는 해바라기가 돼선 안 된다”고 주문했다는데, 검사들을 해바라기로 만드는 장본인이 누구인가. 누가 지금 정치와 검찰의 ‘정·검 야합’을 부추기나.

윤석열 총장의 촌철살인(寸鐵殺人) 표현처럼 부정부패와 권력형 비리는 모든 국민이 잠재적 이해당사자이자 피해자다. 검찰의 반부패 수사 시스템과 역량이 정치적 이유로 망가지면 권력형 범죄는 창궐하고 결국 우리 사회와 국민이 피해를 볼 것이다. 부정한 이득을 챙기는 무리와 그들의 뒷배 역할 하는 부패한 권력자들만 웃을 것이다.

김웅 전 검사(미래통합당 의원)는 ‘애완용 검사 시대’라고 일갈했다. 침묵하는 다수의 검사들에게 묻고 싶다. ‘권력의 충견’이 될 것인가, ‘정의의 파수꾼’이 될 것인가.

장세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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