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11만명, 그중 3만명이 성형·피부 진료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입력 2020. 8. 14. 03:05 수정 2020. 8. 1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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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대 오른 의료 인력 체계]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안에 반대해 대한의사협회 주도로 의사들이 14일 파업한다. 전국 의원급 의료기관 네 곳 중 한 곳이 문을 닫고, 앞서 지난 7일 먼저 파업했던 전국 대학병원 소속 전공의(인턴·레지던트)도 다시 집단 휴진에 들어가기로 했다. 응급실과 중환자실, 투석실, 분만실 등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업무에 종사하는 의사는 참여하지 않기로 했지만, 의원급 의료기관이 문을 닫고 상급 종합병원에 환자가 몰릴 경우 진료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3일 서울 신사역 인근 한 건물에 성형외과와 피부과 간판이 빼곡하게 달려 있다. '성형외과' '피부과'라고 전문 과목을 표시하지 않고 '의원' 간판을 단 병원도 대부분 미용 시술을 전문적으로 하는 병원이다. /김지호 기자

13일 보건복지부 집계에 따르면, 전국 의원급 의료기관 3만3836개 중 8365개(24.7%)가 휴진 신고를 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2일 "지역 내 의료기관 30% 이상이 문을 닫으면 의료법에 따라 지자체가 '진료 개시 명령'을 내리게 하겠다"고 했다. 이번 파업은 최근 정부가 2022년부터 10년간 의대 정원을 한시적으로 늘려 총 4000명의 의사를 늘리겠다고 발표한 것이 발단이다. 정부는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의료계는 의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특정 전공 쏠림 현상과 지역별 편차 해결을 위한 의료수가(醫療酬價) 개혁이 필요하다고 한다.

대한의사협회 분석에 따르면, 미용 성형 의료에 종사하는 의사가 전체 활동 의사 11만명 중 3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런 상황이라 필수 중증 의료 분야는 부족하고, 미용 의료 분야는 넘쳐나는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의료계는 "지금의 의료 인력 파행 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정원을 늘려도 미용 의사만 대거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조선일보

올 1월 코로나 사태를 맞았지만 코로나 감염을 관리할 감염내과 전문의는 전국에 200여 명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대부분 대학병원에 속해 있고, 그 밖의 종합병원에는 한 명도 없다. 신종 감염병이 잇따르지만 감염내과 전문의는 한 해 20명 안팎만 배출된다.

필수 중증 의료 분야 의사 갈수록 줄어

경기 안양·과천·의왕·군포시는 모두 합쳐 105만명이 산다. 그런데 이 지역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에는 소아외과 전문의가 한 명도 없다. 안양은 평균 연령이 40세로 서울(43세)보다 젊어 소아 인구 비율이 높은데도 이 지역 유일한 대학병원인 평촌성심대학병원에 소아외과 교수가 딱 한명 뿐이다. 전국적으로 소아외과 의사가 40여 명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330병상 규모인 인천의 A종합병원. 최근 첨단 혈관조영기를 도입하고 뇌혈관 질환 치료에 나섰지만, 몇 개월째 뇌혈관 전문 신경외과 의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응급 시술이 잦은 데다, 의료 분쟁에 휘말릴 우려가 있다며 신규 신경외과 의사들은 뇌 수술 분야를 선택하지 않는다. 한 해 신규 신경외과 의사 80명 중 80~90%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수술 척추 치료 분야로 진출한다. 소아 뇌종양이나 척추 기형 수술을 하겠다는 신경외과 전문의는 한두 명에 그친다.

중환자실서 호흡기나 감염병 환자를 돌보는 '내과', 외상과 암 수술을 할 '외과', 고위험·고령 산모 분만을 살필 '산부인과', 인큐베이터와 미숙아 담당 신생아 전문 '소아과' 등 이른바 필수 의료 '내외산소'를 젊은 의사들이 기피한다.

의사 늘어도 필수 의료 인력은 안 늘어

지난 1997년 신규 외과 전문의는 274명이 나왔다. 당시 전체 의사는 약 6만명이었다. 한 해 신규 전문의(2876명) 10명 중 1명이 외과였다. 지난해 전체 의사는 두 배쯤으로 늘어난 11만명에 이르렀지만, 신규 외과 전문의는 당시의 절반도 안 되는 126명으로 줄었다. 신규 전문의 중 외과 비율도 4.1%로 추락했다.

대한외과학회 이우용(성균관의대) 차기 이사장은 "1990년대는 한 해 지금보다 적은 의사가 배출됐지만 외과 의사는 더 많이 나왔다"며 "왜곡된 의료 인력 양성 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면 의사가 아무리 늘어도 필수 의료 인력 증가 효과를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의료수가 정상화돼야 인력 불균형 개선

필수 의료 분야 의사가 부족한 배경엔 위험하고 힘든 의료 행위를 하는 의사에게 충분한 보상을 주지 않는 의료수가 왜곡이 자리 잡고 있다. 전공별 의료수가는 2017년을 마지막으로 3년째 제자리인 상태다.

몸무게가 1000g 이하(신생아 정상 체중은 3400g 안팎)로 태어난 미숙아의 경우, 소장이 성숙하지 않아 소장 벽이 허물어지는 괴사성 장염이 잘 생긴다. 이를 고치려면 미세 수술로 소장을 꿰매고 음식이 내려가는 소장 통로를 배 밖으로 만들어야 한다. 소아외과 전문의가 보조 의사 두 명,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간호사와 1시간 반에 걸쳐 수술을 한다. 미숙아는 신생아 중환자실에 있어야 하기에 수술 장비와 의료진이 중환자실로 들어간다. 이런 미숙아 괴사성 장염 수술 의료수가가 50만원이다. 신생아 가산을 붙여도 100만원이 안 된다.

반면 의사 한 명이 간호사 한 명 데리고 전신 마취 없이 하는 쌍꺼풀 수술은 100만원 안팎이다. 항문이 막힌 기형 상태로 태어난 신생아 폐쇄 항문의 경우, 괄약근 성형을 통해 항문을 새로 만들어주는 수술을 5시간에 걸쳐 하는 데 의료수가는 250여만원이다. 실리콘 유방확대술 비용의 절반쯤이다. 물론 성형 수술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시장(市場)가격이지만, 수고와 난이도에 따른 비용 보상 엇박자가 심하다 보니, 상당수 의사들이 미용 의료 시장에 몰리고 있다.

최근 사망 관련 의료 사고 배상 액수가 수억 원에 달하기도 한다. 오류에 따른 적절한 보상은 이뤄져야 하지만, 수술 한 번 실수하면 패가망신할 수 있다고 의사들은 걱정한다. 장진우 연세대 의대 신경외과 교수는 "수술비는 통제돼 있는데 의료 소송에 따른 사적 보상금은 가파르게 오른다"며 "선진국처럼 공적 보상 제도를 도입하지 않으면 생명과 직결된 중증 필수 분야 의사를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수가(醫療酬價) 조정

의료수가는 여러 진단·치료 등 의료행위별로 받는 진료비를 뜻한다. 업무량, 진료비용, 위험도 등을 고려해 책정한다.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 이른바 '내외산소' 기피 현상을 해결하려면 수가를 조정해 보상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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