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公 자문계약의 비밀]③'황제 자문계약' 무혐의.."썩어빠진 검찰"

강혜인 2020. 8. 14. 09: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 공기업이 특정 퇴직 관료와 한 달에 무려 천만 원짜리 자문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퇴직 관료는 자문에 응하기로 한 분야에 전문성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특혜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계약에 따라 쓰기로 한 자문보고서는 공기업 직원이 대신 써줬는데 자문료는 그대로 지급됐습니다. 특혜를 넘어 배임 범죄까지 될 수 있는 상황. 이 사건은 그대로 묻혀있다가 3년만에 내부감사에서 적발됐습니다. 하지만 내부감사에서도 검찰 수사에서도 진상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다시 묻혀버렸습니다. 뉴스타파는 우리나라 굴지의 공기업 한국가스공사에서 일어난 이 믿기 힘든 사건의 이면을 추적해 3회에 걸쳐 보도합니다.-편집자 주

관련기사 : 가스公 자문계약의 비밀
① 월 천만 원 자문료...보고서도 대필해줘
② 산업부의 '인사청탁' 있었다
③ '황제자문계약' 무혐의..."썩어빠진 검찰"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와 한국가스공사(이하 가스공사) 경영진, 그리고 가스공사 자회사 KCLNG 순으로 이어진 가스공사-박석환 전 외교부 1차관과의 이른바 ‘황제 자문 계약’ 사건에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박석환 특혜 자문 계약 건을 3년 뒤에 발견한 가스공사 감사실은 내부 감사를 실시해 계약 당시 가스공사 최고 책임자였던 이승훈 전임 사장을 2018년 말 검찰에 고발했다. 당시 가스공사는 서울동부지검에 낸 고발장을 통해 “이 전 사장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철저히 수사해달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검찰은 증거불충분을 사유로 이 전 사장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리고 사건을 종결했다.

검찰 수사에 앞서 내부 감사를 실시했던 가스공사 감사실은 검찰이 증거 자료도 제대로 보지 않고, 사건 관련 핵심 참고인도 부르지 않고 사건 수사를 마무리했다고 주장했다.

서울동부지검, 이 전 사장 ‘증거불충분’ 혐의없음 처분

▲ 검찰 사건 결과 처분서. 이승훈 전 사장에 대해 증거불충분으로 혐의없음 처분한다고 적혀있다.

검찰이 2018년 11월 접수된 고발 사건을 수사한 뒤 무혐의 처분을 내린 건 여섯 달 가량 지난 2019년 5월이다. 검찰은 7쪽 분량의 불기소 의견서에서 “피의자에게 배임의 고의를 인정할 증거가 없고 한국가스공사 내부 징계는 별론으로 하고 달리 피의사실을 인정할 증거도 없다”고 밝혔다.

이 검찰 의견서에는 피의자 이승훈 전 사장의 변론과 김 모 전 기획본부장, 임 모 전 해외사업본부장, 윤 모 전 LNG사업처장 등의 진술이 적혀있다. 하지만 경영진의 지시를 받고 박 전 차관이 작성해야 할 자문보고서를 대신 쓴 가스공사 본사 캐나다LNG사업팀 직원 등 실무 직원들의 진술은 없다.

본사가 박석환과 자문계약을 체결하라고 요구한 것이 부당하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던 가스공사 자회사 KCLNG의 계약 실무 담당 차장 안 모 씨의 진술도 없었다. 검찰은 사건 관련 ‘고발대리인(가스공사) 변호사’의 말을 빌려 “안 씨가 캐나다에서 근무하고 있어 출석이 어렵다”고 적었다. 이 말은 거짓이었는데 검찰이 그대로 받아적은 것이다.(이 부분은 뒤에 자세히 언급한다)

이승훈 전 사장은 검찰 수사에서 “박석환을 공사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해 보라고 지시했을 뿐, 박석환을 대신해 공사 직원들이 자문보고서를 대신 작성해 박석환이 부당하게 자문료를 수령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한 적은 없다”고 항변했다. 검찰은 이 같은 이 전 사장의 진술과 다른 경영진 등의 진술을 종합했을 때 배임의 고의가 입증되지 않는다고 봤다.

증거자료도 제대로 안 본 검찰

▲ 한국가스공사 특별조사단과의 문답에서 당시 감사실 책임자였던 이 모 상임감사위원이 검찰 수사 진행 과정에 대해 진술하는 대목

검찰은 사건 초기부터 수사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내부 감사 당시 감사실 책임자였던 상임감사위원이 수사 종결 이후인 지난해 말 가스공사 특별조사단과 진행한 문답 내용에 따르면, 검찰은 감사실이 감사 과정에서 확보한 증거자료조차 요구하지 않았다.

이 상임감사위원은 해당 문답서에서 “검찰 수사관은 어떤 영문인지 전임 사장의 배임의 고의를 입증할 진술을 할 수 있는 유OO, 안OO, 송OO 등 관련자들을 일절 조사하지 않고 사장의 지시가 정당했다고 주장한 사람들만 골라 조사하고 사건을 무혐의 처분했다”고 적었다.

그는 당시 검찰의 수사 행태를 두고 “검찰은 (고발 직후인) 2018년 12월 18일, 첫번째 고발대리인 조사 시 감사를 통해 확보된 문답서 등 추가 자료를 요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감사실은 2019년 1월 7일, 검찰의 충실한 사건 수사를 독려하기 위해 검찰이 요구하지도 않은 ‘KCLNG 자문계약 관련 사실관계 및 판단’ 자료를 등기로 제출했다”며 “동 자료에는 검찰이 (이 전 사장의) 배임 혐의를 조사하는 데 필요한 감사실의 조사 결과가 총 망라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검찰이 감사 자료를 요구하지 않자 공사 감사실이 자발적으로 자료를 검찰에 제출했다는 것이다. 감사실이 감사 당시 확보했던 직원간의 ‘문답서’, ‘확인서’ 등은 뉴스타파 취재진이 입수해 앞선 보도에서 인용한 자료들이다.

▲ 이 상임감사위원은 검찰 측이 “사장의 지시가 정당했다고 주장한 사람들만 골라 조사하고 사건을 무혐의 처분했다”고 주장했다.

상임감사위원의 진술에 따르면 검찰은 감사실이 등기로 제출한 문건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본 건에 대한 본격적인 관련자 조사는 검찰 담당 수사관이 바뀐 2019년 2월 이후 진행됐다”며 “감사실은 2019년 1월 7일 제출한 자료에 나오는 관련자들에 대해 모두 조사를 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기다렸다. 그러나 2019년 4월 30일 두번째 고발대리인 조사에서도 검찰 수사관은 동 자료를 확인할 수 있는 문답서도 요구하지 않고 끝냈다”고 밝혔다.

당시 박석환 자문 계약 사건 감사에 참여했던 가스공사 관계자는 이 같은 검찰의 수사 결과를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그는 이승훈 전 사장을 검찰에 고발하게된 취지에 대해 “자체 감사인(가스공사 감사실)은 더 이상 (사건의 배경에 대해) 조사할 수단이 없으므로 수사권이 있는 검찰에 고발하여 이를 밝혀달라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배임의 고의를 밝혀낼 책임은 전적으로 검찰의 몫”이라며 이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검찰에 대해 취재진에게 “썩어빠진 검찰”이라고 표현했다.

물밑에서 움직인 ‘전관 변호사’

검찰의 미온적인 수사 태도와 무혐의 결정 이면에는 가스공사 경영진의 이상한 움직임도 숨어있었다. 가스공사는 이승훈 전 사장을 고발할 즈음인 2018년 10월부터 법무법인 태평양 측에 사건 관련 법률 자문을 받았다. 이를 위해 가스공사는 태평양 측에 4900여만 원을 지출했다.

문제는 이 법률 자문이 가스공사 감사실도 모르게 이뤄졌다는 것이다. 태평양 측에 법률 자문을 의뢰한 곳은 가스공사 ‘국내법무부(당시 직제)’였다. 당시 국내법무부는 가스공사 ‘경영관리부사장’ 산하 조직이었다. 당시 경영관리부사장은 임모 씨로, 2015년 ‘해외사업본부장'의 위치에서 이승훈 전 사장의 ‘박석환 자문계약’ 지시를 하위 직원들에게 전달했던 인물이었다. 이 때문에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사건 은폐 의혹’이 일었다.

당시 가스공사 국내법무부의 법무법인 태평양 선임 사실은 박석환 특혜 자문 계약 사건 내부 감사를 진행하고, 사실상 고발을 주도한 가스공사 감사실조차 몰랐다. 이 상임감사위원은 검찰 수사 종결 이후 구성된 이 사건 관련 가스공사 특별조사단과의 문답에서 “가스공사 국내법무부가 태평양을 선임한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고 말했다.

▲ 이 상임감사위원- 특조단 간 문답서. 이 상임감사위원은 “국내법무부의 법무법인 태평양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고 검찰 수사 과정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시기 가스공사 내부 법률자문내역서(송갑석 의원실 제공)에 따르면, 태평양 소속 이 모 변호사는 2018년 10월부터 2019년 3월까지 사건 관련 법률 자문을 가스공사 측에 제공했다. 이 변호사는 2018년 12월에 두 번, 2019년 2월에 한 번, 3월에 두 번 등 자료에 기록된 것만 모두 다섯 번 동부지검에 방문했다. 이 변호사는 특혜 계약 사건을 수사한 서울동부지검에서 형사5부장 검사를 지낸, 이른바 ‘전관’ 변호사다.

▲ 법무법인 태평양 이 모 변호사의 동부지검 방문 내역

이 변호사가 수사 당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검찰 불기소 의견서를 통해 짐작 가능하다. 의견서에는 ‘고발대리인 변호사’가 수사 과정에서 한 진술이 적혀있는데, △KCLNG 전 차장 안 씨가 국내에 없다, △본 건이 혐의없음 사안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내용 등이다.

“고발대리인 변호사(태평양 이 모 변호사)’는 KCLNG의 자문계약 담당자인 안OO은 캐나다에서 근무하고 있어 출석이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하여 안OO, 김OO 등 공사 직원들이 추가적으로 조사를 받는 것은 원치 않고, 본 건이 혐의없음 사안이라고 판단하고 있어 불기소 처분이 되더라도 항고하지 않을 것이지만 공사 노조가 강성이라 고발 취소를 하기는 어렵다는 취지로 진술한다”
- 이승훈 전 사장에 대한 검찰 불기소 의견서에 적힌 내용

이 진술을 두고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송 의원은 “KLCNG 직원 안 차장이 분명 현지법인 근무를 끝내고 (국내에) 돌아와 있는데, (고발대리인 변호사가) 현재 캐나다에 있다고 허위진술까지 해서 (안 씨가) 검찰에 안 나가게 됐다”고 지적했다.

가스공사 경영진이 감사실과는 별도로 사내 법무부를 통해 법무법인 태평양의 ‘전관’ 변호사를 선임해 감사실도 모르는 ‘고발대리인 변호사’로 활동하게 하고, 이 변호사는 검찰 수사팀을 만나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한 것은 가스공사 경영진이 특혜 자문 계약 사건을 마지못해 고발하긴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다른 의도를 가지고 ‘이중 플레이’를 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이 변호사 “공사 얘기 검찰에 전달한 것 뿐”

이 변호사는 뉴스타파 취재진과 전화 통화에서 “검찰 수사관이 이 전 사장에 대해 혐의 입증이 어렵다는 입장을 보여왔다”며 “수사관이 항고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묻길래 (가스공사) 법무팀에 물어봤고, 항고를 하지 않을 거라고 해서 검찰 측에 그대로 전달했다”고 말했다.

직원 안 씨의 소재지에 대해 허위 진술을 한 이유에 대해서는 “(안 씨가) 캐나다에서 근무 중이란 사실은 제가 (검찰에) 알려준 사실은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요지부동 가스공사…“산업부 고발해달란 말 없어”

결국 이 전 사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혐의없음’으로 종결되면서 진상규명의 기회는 허무하게 날아갔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가스공사의 법무법인 태평양 선임과 관련해 사건 축소 의혹이 제기됐다. 궁지에 몰린 가스공사는 다시 이 사건을 특별조사단을 꾸려 조사를 맡겼고, 지난 2월 사건 관련자들을 검찰(대구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문제는 검찰 고발이 한 차례 더 이어졌음에도 가스공사는 사건 진상 규명에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두 번째’ 검찰 고발장에 따르면 가스공사는 사건 진행 당시 법무법인 태평양을 선임했던 임 전 경영관리부사장(자문계약 당시 해외사업본부장) 외에, 본사의 지시를 받고 박 전 차관과 표면상의 자문계약을 맺은 당시 KCLNG 법인장인 유 모 씨만 고발했다.

취재진은 가스공사 측에 서면질의서를 보내 △“자문계약을 지시한 산업부 관련자들을 검찰에 고발해달라”는 당시 상임감사위원의 요구가 있었음에도 왜 임 씨·유 씨 등만 고발된 건지, △자문계약 진상 규명을 위해 별도의 내부 감사, 감사원 감사 등을 요구하거나 진행한 바 있는지, △당시 산업부 관계자를 검찰에 고발할 계획이 있는지 등을 물었다.

가스공사는 답변서를 통해 “산업부와 가스공사는 박석환 전 차관을 2016년 3월 한국가스연맹 사무총장으로 영입하고, 가스공사는 (박 전 차관) 취임 전까지 약 6개월 동안 활용 방안으로 본 건 자문을 검토 후 계약했다”고 답변했다. 또 “특조단에 산업부 관계자의 직권남용 등 조사 요구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특조단이 이 전 상임감사위원과 주고받은 문답서에는 이 전 위원이 진술한 “당시 산업부 관계자들을 검찰에 고발해달라”는 문구가 분명히 확인된다.

▲ 이 상임감사위원 - 특조단 문답서. 당시 산업부 관계자들을 직권남용,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해달라”고 적혀있다.

뉴스타파 강혜인 ccbb@newstapa.org

Copyright © 뉴스타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